한상윤 대전대 한의과대학 교수
한의학교육학회 회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대전대 한의과대학 한상윤 교수(한의학교육학회 회장)로부터 한의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함께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코너를 통해 한의학 교육의 발전 방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의과대학 교수로 임용된지 3년이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 교육에 대해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이 오가는 요즈음이다. 처음 학교에 들어섰을 때의 그 마음을 잊은 적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교육 현실에 부딪친 결과 한의학교육에 대한 생각이 더 강화된 부분도 있고, 그에 반해 상당히 변화된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변화된 생각이 자괴감이나 자존감 하락, 좌절이나 실망으로 귀결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한의학교육학회를 창립하여 여러 교수님들과 논의하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해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더 나은 한의학교육을 위해서는 아직 더 노력하면서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현실 인식을 공유하며 한 걸음씩 움직여보자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학내 구성원들의 무관심과 미참여가 문제
재직 중인 학교에서 교육과정 개편 작업을 진행하는 와중에 모 교수님이 “혁명은 쉬우나 개혁은 어렵다”는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난다.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 의미가 그날따라 색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다.
한의학교육의 개혁을 가로막는 이유는 참 다양할 수 있겠지만 몇 가지 추려볼 수 있겠다. 먼저, 학내 구성원들의 무관심과 미참여 문제이다. 의과대학이나 한의과대학은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서 기본적으로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부분이 있다. 특별한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기존의 익숙한 방식을 고수하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환자도 변하고, 의료인에 대한 기대가 변하고, 학생들이 변하고, 학문은 발전하고 있으므로 한의학교육 역시 적절한 시점에 변화를 추구해야 학문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많은 교수님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 태도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서 최초의 발도르프 학교를 창시했던 루돌프 슈타이너는 ‘교육의 질은 결코 교수자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교육에 있어 교수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는 이 말은 한의대에도 당연히 적용될 수 있다. 한의학교육의 개선을 위한 교수자의 노력과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육의 주체는 교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의대 학생들의 문제는 본인들이 교육 수요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려고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어진 과제와 시험에 매몰되어 여유가 없는 현실도 한 몫 하겠으나, 언젠가부터 한의대는 한의사 면허를 따기 위한 통과 의례이자 학원처럼 여겨져 교육은 어떻게 되든 졸업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태도가 보여 안타까울 때가 많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와 ‘어떻게 학습할 것인가’라는 두 질문에 대한 답변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한의대의 건강한 학풍을 조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육 연구 성과와 사례 등 최신지견 공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의학교육과 한의학교육에 대한 연구 성과와 사례 등을 통해 최신지견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가르침과 배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를 공유하면서 더 넓게 사고를 확장해야 한의학교육의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한의계는 교수자이든 학생이든 이러한 고민에 대해 그동안 너무 무지했고 무관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새로운 지식을 업데이트하고, 우수 교육사례를 공유하며 한의학교육에 대한 연구 성과를 내어놓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한의학교육학회의 역할과 책임이 새삼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의대 교수와 학생들의 무관심과 미참여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도 있긴 하다.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의 한의학교육 인증평가 기준이 그것이다. 역량을 설정하고 각 교과에서 다양한 학습법을 활용한 강의를 구성하고,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학습에 참여하도록 규정하였다.
모든 한의대가 교육에 대한 인증평가를 받아야 하고,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필수 조건을 제시한 것은 한의학교육의 양적, 질적 성장에 일정 정도 기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증 기준이 본래의 목적대로 잘 수행되고 있는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한의대에서 현실적으로 교육에 있어서 주객이 전도되어 오히려 인증평가를 준비하다 마음먹은 대로 교육이 안 되어 결과적으로 교육의 질이 하락하는 경우는 없는지 확인해야 할 것이다.
강한 인증 기준에 부합하려는 노력이 교육 현장의 실질적인 변화와 개선을 가져오기 보다는 기준만 충족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으로 흘러 교육의 내실이 흔들리거나 특정 몇몇의 교원 이외에는 오히려 교육에 대한 무관심을 부추기게 되는 계기로 작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야 한다.
한의학교육 개혁을 어렵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학교와 학과의 의지와 지원에 대한 문제를 들 수 있다. 앞서 기술한 한의학교육 인증평가 기준에 따라 각 한의대에서는 한의학교육실을 설치하고 담당 전임교원을 채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의학교육실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역할 분담이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전임교원 1인 체제의 한의학교육실이라는 기구는 그 역할에 한계가 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한의학교육실 운영 방침이나 규정을 신설한다 해도 추가 인력이 배정되지 않는다면 교육 현장에서는 실질적으로 효용이 없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의학교육실, 제대로 된 역할 수행 필요
한의학교육실은 한의대에서 시행하고 있는 기초와 임상 교육을 모두 아우르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역할이 매우 막중함에도 불구하고 그 운영 방법이나 인력 활용 면에서는 각 한의대가 안이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교육과정 개편 작업 이외에는 한의학교육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피상적인 인식, 혹은 한평원의 인증평가 작업과 관련된 보고서 작성과 같은 행정문서작업을 하면 된다고 믿는 분위기 속에서는 한의학교육실이 뿌리내리고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는 한의학교육실의 운영 초기이기 때문에 여러 문제가 드러날 수 있는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의학교육실에 대해서는 추후 따로 지면을 할애하여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한의학교육실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교원 충원, 교육 환경 개선, 학생 지원에 대한 여러 제도 마련과 시행 등 한의학교육 전반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임상 역량이 강화되며 임상실습 시간이 크게 증가하였음에도 실습 환경이나 기자재가 제대로 확충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임상술기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관련 기자재가 필수이므로 학교와 학과가 교육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여 좋은 환경에서 양질의 한의학교육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수한 인재들이 한의학을 선택하여 임상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있고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교육과 연구에 헌신하고 있다. 현재까지 잘 이어져 온 한의학을 앞으로도 훌륭하게 계승하고 발전시킨다는 마음으로 한의학교육이 변화하고 개선되기를 희망한다. 쉽지 않은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