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윤 대전대 한의과대학 교수
한의학교육학회 회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대전대 한의과대학 한상윤 교수(한의학교육학회 회장)로부터 한의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함께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한의학 교육의 현재와 미래Ⅱ’ 코너를 통해 한의학 교육의 발전 방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요즘 대학가는 어딘지 모르게 분주하다. 방학이 지난 2학기 개강 초의 약간 들떠있는 분위기와 맞물려 내년 대학생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수험생들의 수시모집 지원이 한창 진행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의과대학 정원 증원이 뜨거운 이슈가 되어 상위권 수험생들이 의, 치, 한의예과 등 메디컬 계열 학과에 얼마나 더 지원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수시모집 접수를 마감한 결과, 전국 12개 한의과대학의 경쟁률은 27.18대 1로, 작년 25.71대 1에 비해 소폭 상승했다고 한다. 그리고 예상대로 의과대학에는 가장 많은 수험생들이 지원했다고 한다.
학교마다 전형이 다양하고, 전형 요소의 비율이 다르기 때문에 수험생들은 오랜 시간 고민하여 가장 가고 싶은 학교 혹은 합격 가능성이 높고 다른 수험생들 사이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학교로 지원했을 것이다. 이뤄질 수 없는 바람이지만 의자(醫者)를 꿈꾸는 모든 수험생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수많은 수험생 사이에서 우수 인재 선발 책무
많은 수험생들이 지원하면 학교 교수 입장에서는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학생들이 그만큼 들어오고 싶어 하는 곳이 우리 학교라는 생각에 흐뭇한 자부심이 들다가도, 입학 전형에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다면 공정하게 전형 과정을 진행해야 할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더군다나 수많은 수험생 사이에서 보다 더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야 하기 때문에 주어진 요소 어느 하나도 허투루 지나칠 수 없게 된다.
어찌 보면 수능 점수나 내신 성적으로만 당락이 결정되는 전형은 학생이든 교수든 편하다. 성적으로 줄을 세워 정해진 인원만큼 선발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소개서나 논술, 면접 등 다양한 요소로 학생을 선발할 경우에는 신경 쓸 것이 많아진다.
문제 출제에 있어서는 일단 참신해야 하고 기존의 교재에 중복된 내용은 없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출제 의도에 맞게 학생들이 답을 하도록 문제 수준이 너무 어려워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쉬워 변별력이 없어서도 안 된다.
답안 채점은 더욱 고통스러울 수 있다. 우수 답안과 그렇지 못한 답안에 합리적인 차등을 두어 점수를 벌려야 하고, 비슷한 답안의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장시간 이어지는 전형 일정에서 기준이 흔들려 결국 입학 전형의 합리성과 공정성이 무너질 수 있다.
이처럼 많은 노력 끝에 해마다 신입생이 입학하게 되는데,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고자 하는 노력이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새로운 전형을 도입하거나 평가 요소를 다각화하는 등 입학 전형에 대한 연구와 변화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연구와 변화의 뿌리가 바로 각 학교에서 설정한 인재상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재상은 어떤 학생을 우수하다고 볼 것인가 하는 기준이 됨과 동시에 그 학교에서 추구하는 교육 목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한의과대학의 인재상은 유행처럼 번져 거의 모든 학교에서 설정해 놓았음에도, 실제 학생 선발부터 졸업까지 관통하는 교육의 핵심적인 방향타 역할을 하는지 의문스럽다.
다면인적성면접, 우수학생 선발에 장점
입시에 지원한 학생들을 단순하게 줄 세워 선발하기보다는 우리 학교는 어떤 인재를 원하고 있고 그에 맞춰 교육하고 있으므로 여기에 부합하는 학생들이 지원해야 한다는 능동적인 입학 전형이 마련되어야 하고, 바로 그 지점에서 각 학교의 차별화가 드러나야 한다는 생각이다.
각 학교의 교육 철학과 목적에 부합하면서도 우수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새로운 입학 전형으로 다면인적성면접(multiple mini-interview)과 같은 방식을 들 수 있다.
이 면접은 한 학생이 여러 스테이션을 돌면서 각 스테이션마다 주어진 문제에 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학생의 가치관, 문제 해결력, 인성, 의사소통 능력, 리더십 등 말 그대로 다양한 측면에서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캐나다에서 처음 개발된 이래로 세계적으로 확산된 이 면접 방식은 국내에도 여러 의과대학에 도입되어 비중 있게 활용되고 있다. 학생부나 자기소개서를 기반으로 하는 다소 경직된 면접이 아니라 딜레마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는지, 평상시 윤리의식은 어떠한지, 다른 사람들과 팀워크를 이룰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검증을 강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러 연구에서 이러한 면접을 거쳐 입학한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학업 성취도가 높았으며 사회성이 높아 대학 생활에 대한 적응 역시 잘한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한의과대학 교육의 변화로 우수 인재 양성
한의과대학의 학생 선발 역시 이러한 방식을 구상하고 도입하여 각 학교에서 희망하는 인재를 선발할 필요가 있다. 의료인으로서 바람직한 자질을 갖춘 학생의 선발이 곧 역량과 직결되고 결국 우수한 의료인의 배출로 이어지게 되므로, 어떤 학생을 선발하여 교육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성적만 우수한 학생, 의과대학에 진학하지 못해 할 수 없이 한의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많아진다면, 개인으로서도 불행한 일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결코 한의계에도 전혀 이롭지 않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매년 신입생들을 보면 그들의 창의성과 명석함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렇게 뛰어난 학생들이 학교 교육을 받으며 결국 획일화되고 평범해지는 것은 아닌지 자조적으로 교육을 돌아보게 된다. 좋은 인재를 선발해서 그 우수성이 더욱 빛을 낼 수 있도록 한의학 교육 역시 변화해야 할 것이다. 벌써부터 내년 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