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7일 (토)
대한한의사협회 제30·31회 임시이사회(11.29~30)
2025년 12월 27일 (토)
문저온 보리한의원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공연 현장에서 느낀 바를 에세이 형태로 쓴 ‘시선나누기’ 연재를 싣습니다. 문저온 보리한의원장은 자신의 시집 ‘치병소요록’ (治病逍遙錄)을 연극으로 표현한 ‘생존신고요’, ‘모든 사람은 아프다’ 등의 공연에서 한의사가 자침하는 역할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초대받은 행사장을 들어서며 그가 말할 것이다. “문 선생은 어디 있나요?” 행사 준비로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나를 발견하지 못한 그는 행사장 들머리에 줄지어 서 있는 화환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꽃을 뽑아낼 것이다. 붉은 꽃과 흰 꽃과 꽃송이가 큰 것과 작은 것을 고루 섞어서 한 움큼의 꽃다발을 만들어 손에 쥘 것이다. 그리고 한참 뒤에 만난 나에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어디 있었어요? 한참 찾았네. 저기 있는 화환에서 꽃을 좀 가져다 써도 되냐고 물어보려 했지.” 아이처럼 웃으면서, 한 다발의 꽃을 내 눈앞에 들어 보이면서.
“혼자 숨 고를 시간이 필요해요”
7년 전 일이다. 나는 선생에게 행사 축하 무대에서 ‘꽃과 한지’를 공연해 주십사하고 청했다. ‘한지’를 하셔도 좋고 ‘꽃과 한지’를 하셔도 좋다고 했다. 내가 선생의 ‘한지’ 공연을 보고 반해 버린 뒤로 두어 계절이 지난 뒤였는데, 행사를 기획하면서부터 선생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먼 길을 와 주실지 확신이 없었고, 한참 전에 만난 나를 기억하실지 조차 몰랐다. 무엇보다 예술 공연 무대가 아니었다.
선생을 모시기 위해 자료를 검색하다 보니, 선생은 이미 ‘한지’만이 아니라 ‘꽃과 한지’를 무대에서 펼치는 중이었다. 나야 물론 어느 것이든 상관이 없었다. ‘선생이면 된다. 선생의 마임이면 된다.’
선생은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모자를 쓰고 야윈 걸음걸이로 터벅터벅 행사장으로 들어섰다. 공연을 위한 전용 극장도 아닌 대강당 마룻바닥을 몇 안 되는 조촐한 조명이 천장에 달린 채 비추고 있었다. 선생이 메고 다니는 가방에 공연의 모든 소품이 들어있었다. 강당 한쪽에 있는 출연자 대기실을 확인하고 조명 스태프들과 말을 맞춘 선생이 내게 걸어와 이렇게 이야기한 것을 기억한다.
“공연이 끝나면 잠시만 여기 있다가 나갈게요. 아무도 안 들어오도록 부탁드릴게요. 혼자 숨 고를 시간이 필요해요.”
목이 꺾이며 후드득 꽃잎이 떨어진다
공연을 보면서 나는 그 말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응축과 폭발, 고요와 발악 사이를 끊임없이 누비는 마임은 눈물 같은 한숨과 위로가 펼쳐지기 전까지 팽팽한 긴장을 무대와 객석에 쏟아놓았다.
창백한 조명 아래 중국식 옷 하나를 걸친 선생이 맨발로 걸어 나온다. 커다란 한지 한 장이 무대 앞쪽에 펼쳐져 있다. 예의 그 꽃다발이 한지 위에 놓인다. 맨손과 맨발과 맨머리로 선생은 허공을 가르며 쓰다듬으며 돌고 걷는다. 몸을 숙여 천천히 꽃다발을 들어 올린다.
붉고 희고 노란 꽃들이 거꾸로 붙들려 올라간다. 거문고 소리가 점점 급박하게 밀려온다. 꽃을 마주한 선생은 천천히 꽃으로부터 향기를 데려온다. 커다란 팔짓과 손짓으로 향기를 코끝에 데려가던 선생이 한 손 한 손 꽃대를 올려 잡다 갑자기 꽃의 목을 비튼다. 목이 꺾이며 후드득 꽃잎이 떨어진다.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가 ‘헙’ 소리를 낸다.
목을 조르듯이 쓰다듬다가 꽃잎을 뜯어 흩뿌리다가 선생은 머리 위로 치켜들어 꽃다발을 구겨버린다. 피와 살이 튀듯이 꽃다발은 구겨지며 부러지며 형체가 없어진다. 절규하듯 무릎을 꿇어앉는 선생의 머리 위로 계속해서 꽃의 부스러기들이 쏟아져 내린다.
희고 조용한 한지 위에 꽃이 한가득 떨어져 있다. 선생은 몸을 구부리고 머리를 숙이고 꽃의 잔해를 본다. 두 손바닥을 코끝에 대고 손에 묻은 향기를 맡는다. 두 손에 얼굴을 묻는다. 그는 우는가? 슬픔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선생의 얼굴. 두 팔을 허공으로 펼쳐 올리며 선생은 무릎 꿇고 포효한다. 사람의 말이 되기 이전의 소리. 다만 생물의 소리 같은 것이 선생의 목을 긁으며 쏟아진다.
하늘을 향해 팔을 모아 선생은 울부짖는다. 기도하듯 울부짖던 선생의 상체가 한지 위로 힘없이 늘어진다. 느리게 튕기는 둔탁한 거문고 소리. 그는 엎드린 채 꽃의 시신을 끌어안는다. 양팔을 벌려 한지의 끝을 잡고 서서히 들어 올린다. 어르듯 춤추듯 넘실댄다. 온몸으로 출렁댄다. 넋을 띄운 한 척의 배 같은 한지를 안고 휘돌던 선생은 문득, 한쪽 손을 놓아 꽃을 쏟아버린다......
객석은 숨 막힐 듯 고요하다가 탄식으로 물결쳤다. 눈앞의 무대 위에서 아름다움이 생성했다 이내 소멸했다. 사랑이 생겨났다 이내 파괴되었다. 애정이 고통으로 변하고 분노가 슬픔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다 놓아버렸다.
파괴해서라도 손에 넣으려는 욕망을 생각
한 다발의 꽃을 하나의 사람으로 바꿔 선생의 손에 쥐어놓고, 나는 공연을 보는 내내 사랑과 슬픔과 인간의 애증을 생각했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골똘히 생각했다. 내가 소유할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해 생각했다. 파괴해서라도 손에 넣으려는 욕망을 생각했다.
그 끝에서 결국 다다를 수밖에 없는 허망함과 깊은 고독에 대해 생각했다. 선생은 아름답고 슬프고 아프고 고독해 보였다.
화환에 꽂혀 있던 꽃은 선생의 손에서 무대 위로 옮겨졌다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그날 꽃은 꽃대로 하나의 예술이 되었다가 사라졌다. 부서져 형체가 사라졌지만 무대에서 은은히 풍겨오던 꽃냄새와 허공에서 뼈처럼 부러지던 꽃대와 산산이 한지 위에 떨어져 놓이던 꽃의 조각들은 눈동자에 새겨지고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그날 그 꽃은 존재로서의 꽃만이 아니었다.
행사장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기웃거리길래 자리를 안내해드렸다. “조금 있다가 재미있는 공연을 할 거야. 거기 서 있지 말고 여기 앉아서 봐.” 내 옆자리에서 ‘헙’ 소리를 내던 그 아이는 그날 무엇을 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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