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해진 래소한의원장
<우리동네한의사>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제철에 맞는 음식을 한의학적 관점으로 접근한 ‘텃밭에서 찾은 보약’을 소개합니다. 안전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권해진 원장은 텃밭에서 가꾼 식재료를 중심으로 한의약과의 연관성 및 건강관리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마라탕을 무슨 맛으로 먹는 건지 모르겠어.” 남편이 딸에게 하는 말입니다. “아빠! 계속 먹으면 맛있어!” 딸아이는 요즘 마라탕에 푹 빠져 있습니다.
“경상도에서 제피(초피나무 열매)나 방아 잎을 추어탕에 꼭 넣어 먹는 것처럼 요즘 애들은 마라탕을 먹는 것 같아!” 제가 남편에게 아이 편을 들며 말했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아이의 식성이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에 먹던 음식은 커서 먹으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경상도가 고향인 저희 부부는 어릴 적부터 방아 잎을 먹었던 터라 그 향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고수 잎은 이상해서 태국음식 먹기를 꺼리고, 마라향은 자극적이어서 딸아이와 마라탕 식당을 가본 적이 없습니다.
방아라는 이름이 경상도 사투리라는 것은 한의대에 가서 처음 알았습니다. ‘배초향(排草香)’이 원래 이름이더군요. 아직도 그 단어가 어색합니다. 그야 배초향이라는 단어를 입으로 말할 일이 없으니까요. 집에서는 당연히 ‘방아 잎’이라고 말하고, 한의원에서 약재로 쓸 때는 한약재 명인 ‘곽향’이라고 부르니 말입니다.

“우리 텃밭에서 자라는 ‘곽향’은 당연히 배초향(방아 잎)”
‘곽향(藿香)’과 배초향이 다른 약재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본초학 책에서는 광곽향과 배초향을 다른 식물로 봅니다. 광곽향은 아열대 기후에서 자라고 배초향은 우리나라 각지에서 자생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두 식물 모두 꿀풀과로 생김새 또한 아주 유사합니다. 아열대에서 자라는 광곽향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향이 줄어들고 잎의 모양이 살짝 바뀌면서 우리 토질에 맞게 자란 듯 보입니다. 기후 차이에 따라 식물이 다르게 자라는 현상은 많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나라 배초향을 광곽향의 대용 한약재로 씁니다.
배초향, 곽향 두 이름에 들어가는 ‘향(香)’은 식물의 향이 강하다는 의미입니다. 중국산 광곽향은 향이 강하고 약효 또한 우수합니다. 국내산 배초향은 향이 광곽향에 비해 약해 약효는 덜 하지만 음식에 많이 이용됩니다.
그래서 ‘약재는 광곽향, 식재료는 배초향’ 이런 구분이 생기기도 합니다. 저희 텃밭에서 자라는 ‘곽향’은 당연히 배초향(방아 잎)입니다.
“민물고기 비린내, 잡내 잡아주는 방아, 부추전에 넣어도 좋아요”
처음 텃밭을 시작할 때 어머니가 고향 맛을 느끼고 싶으셔서 방아 씨를 뿌렸습니다. 매해 그 자리에서 방아가 자라고 씨가 떨어지고 다시 방아가 자라서 이제는 따로 씨를 뿌리지 않아도 항상 그 자리에서 여름이면 고개를 내밉니다.
6월에서 7월로 넘어갈 때 쯤 시원한 냇물에 발을 담그고 딱 민물 매운탕이 먹고 싶어질 때가 방아 잎을 따 먹기 좋은 시기입니다. 매운탕에 넣으면 민물고기의 비린내, 잡내를 잡아줍니다. 저희 집은 부추전에 방아 잎을 넣어 먹기도 합니다. 방아는 어린잎을 따서 식재료로 사용하지만 약재로 쓸 때는 꽃이 피기를 기다렸다가 꽃과 잎, 줄기 모두를 사용합니다.

“동의보감에도 곽향의 다양한 약효가 나와 있어요”
동의보감에는 곽향이 “성질이 약간 따뜻하고 맛은 매우며 독이 없다. 풍수독으로 몸이 붓는 데 주로 쓰이는데, 악기(惡氣)를 쫓고 위로는 심하게 토하며 아래로는 설사가 심한 곽란을 멎게 한다. 구토를 멎게 하며 감기 등을 일으키는 풍한사(風寒邪: 풍사(風邪)와 한사(寒邪)가 겹친 것. 일반적으로 오싹오싹 추우면서 열이 나고 온몸이 쑤시는 증상이 있다)를 발산시키는 데 으뜸인 약이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풍한사를 발산시켜주니 감기약으로 충분히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향을 내는 정유 성분은 소화불량 증상 완화에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니 감기 증상이 있고 속이 불편할 때 쓰기에 딱 좋은 약재입니다.
이맘때 소화도 안 되면서 두통에 감기처럼 열이 나기도 하다면서 한의원에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덥다는 생각에 환기 없이 오랫동안 에어컨 바람을 쐬어서 생기는 냉방병 증상 때문입니다. 냉방병 치료에 많이 사용되는 ‘불환금정기산(不換金正氣散)’이라는 탕약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약재가 바로 곽향입니다.
자연은 때마다 우리 몸에 필요한 식물을 키워내 줍니다. 곽향이 딱 필요한 요즘 곽향은 하늘을 향해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이면 꽃까지 펴서 눈도 즐겁게 해줄 겁니다. 이번 여름에는 에어컨은 피하고 방아 잎 넣은 매운탕 드시면서 여름을 이겨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