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우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한의원의 인류학 :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 저자
정(正)하지 않은 봄
환절기가 계속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5월 초까지, 긴 환절기를 경험하고 있다. 환절기는 절기[節]가 바뀌[換]는 마디의 기간인데, 환절기가 길어지니, 마치 그 자체가 하나의 계절이 된 듯한 느낌이다. 장기간의 환절기 속에서 봄이 봄답지 않다. 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니고, 이 계절을 불러야 할 적당한 이름이 없는 것 같다. 뭔가 섞여 있고, 뒤죽박죽이다. 일교차가 15도, 20도나 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초겨울 기온부터 이른 여름 기온까지를 하루에 경험한다.
기온뿐만 아니라, 날씨에 봄기운이 없다. 날씨는 솜씨, 맵씨, 마음씨처럼 “씨”를 사용하여 그날의 기운의 모양새를 의미하는, 일기(日氣)의 우리말 표현이다(이전 연재글 <인류세의 한의학> 3 “기후의 의미” 참조). 우리가 사람들을 대하며 그 마음“씨”의 질적 양상을 느끼듯이, 일기에도 느껴지는 그 날의 기운의 모양새가 있다. 긴 환절기의 이 봄에는, 하루의 기의 모양새에 생(生)하는 기운이 없다. 오히려 수렴하고 저장하려는 모양새의 기운이 주가 되어 있다. 가을 같은 봄이다. 입하가 지나도록 봄다운 봄이 없다.
돌아보면 올봄은 평상시 봄과 많이 다르다1). 초봄에 뜻하지 않은 고온으로 꽃들이 때 없이 만발하였다. 벚꽃 축제를 준비하던 지자체 중에는, 때를 놓쳐 벚꽃 축제를 취소한 곳도 있었다. 벚꽃 개화시기에 잡아 놓은 축제 기간에 벚꽃이 이미 다 져버린 것이 이유였다. 코로나로 인해 취소되었던 꽃 축제들이 올봄에는 이미 낙화한 꽃들 때문에 취소되기도 한다. 꽃들은 일찍 피었다지고, 다시 긴 환절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올봄의 날씨들이다.
올봄의 날씨는 단지 기후만의 문제는 아니고, 몸의 문제이기도 하다. 긴 환절기에 감기가 유행하고, 아픈 사람들이 많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많이 아프다. 봄은 봄답지 않고, 사람들은 아프다. 답지 않다는 것은 때에 맞는[正] 흐름을 이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正)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봄은 정하지 않고 사하다. ‘삿되다’라는 표현이 적절한 상황이다.
정하지 않은 기후와 아픈 몸
행동이 바르지 못한 것을 말할 때 사용되곤 하는 ‘삿되다’라는 표현에는, “사기(邪氣)”, “정기(正氣)” 할 때의 사를 사용한다. 사(邪)에는 기울어져 있다는 뜻이 있다. 쏠려 있다는 뜻이 있다. 사기는 정(正)하지 않고 기울어지고 쏠려있는 기운이다. 그러므로 정기와 반대다. 봄이 봄다운 봄은 정하다고 말할 수 있다. 봄기운이 봄기운 답지 못한 기운은 삿되다고 말할 수 있다. 기운이 반듯하지 못하고 쏠려있으니, 거기에 사기(邪氣)가 자리를 잡는다. 정한 봄이 아니니, 우리 몸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봄 기후는 정하지 않고, 몸은 아프다.
기후위기도 기본적으로 정하지 않은 기후의 문제다. 고온의 시기가 일찍 시작되고 오랫동안 지속된다. 길어진 열기의 시간만큼 증대한 뜨거운 기운은 땅을 마르게 한다. 때 아닌 가뭄이 나타난다. 가뭄이 되는 속도도 전에 없이 빠르다2). 땅을 마르게 한 습기는 다시 모여서, 지역을 옮겨 다니며 폭우로 내린다. 한 나라의 국토 1/3이 빗물에 잠기기도 한다.
정(正)하지 않은 기후에 몸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발표된 유엔 산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6차 종합평가보고서는 기후변화에 수반된 건강문제를 심각하게 지적하고 있다(이전 연재글 <인류세의 한의학>18 “몸의 기후학 II” 참조). 기후위기 속 몸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기후 따로 몸 따로의 논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기후는 기후고, 몸은 몸이라면, 기후위기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된다. 몸을 몸 밖과 열심히 분리하는 생각의 방식은 기후위기를 영속하게 한다. 근대 이후 몸은 주체가 기거하는 장소로서 더 열심히 바깥과 분리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몸은 언제나 몸 밖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한의학의 논리를 통해 몸과 기후의 연결성을 보여주는 책이 최근에 출간되었다. 『딸에게 들려주는 바람(風) 이야기』(김홍균 2022, 한국한의학연구원)는, 풍(風)과 한(寒)을 중심으로 기후와 몸이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음을 다년간의 연구와 임상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러한 논의는 단지 외감만의 주제가 아님을 그 책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사회와의 관계 속에 몸의 상황이 존재하며 그 상황에서 외감에 노출되는 몸의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즉, 우리가 기거하는 사회적 환경과 몸, 그리고 외감이 철저한 연결 속에 있고 그 와중에 다양한 생리 병리 현상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특히, 외감이 외감으로 머물러 있지 않다는 지적은 반드시 되새겨 보아야 할 내용이다. 즉, “어떤 사기가 몸에 오래 머물면 그것과 싸우기 위한 몸의 에너지가 많이 소비된다. 그 에너지의 소비는 다시 정기의 손실을 가져오게”(p.55) 되는 방식으로 외감과 몸은 깊은 연관 속에서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최근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코로나 후유증을 통해 보고되고 있다.

『상서론(傷暑論)』이 요구되는 시대
환절기는 길어지고 일교차는 크다. 최고, 최저 기온의 차이가 크니(심하게는 20도까지 되니) 바람도 쎄다. 바람에 접하는 시간이, 날들이 길어진다. 낮 동안의 온기를 생각하고 얇게 입은 옷은 바로 저녁에, 밤에 한기에 노출되게 한다. 풍한이 가까이 있다. 환절기는 길어지고 사람들은 아프다. 정하지 않은 봄의 와중에 기대하지 않은 외기에의 노출은 사람들을 아프게 한다.
한의학이 집중하는 것은, 바이러스든 사기든, 그것이 몸과 만났을 때이다. 몸 밖의 육기보다는, 몸에 들어와서 드러나는 기운에 의료적으로 더 관심을 가진다. 한의학에서 육기를 인식하는 것도 이미 몸에 들어왔을 때, 특히 육음으로서 병리적 현상을 드러낼 때이다(김홍균 2022). 서양의학은 바이러스의 종류에 더 관심이 많겠지만, 한의학은 사기들이 몸에 들어왔을 때, 그때부터가 중요하다. 『딸에게 들려주는 바람(風)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듯이, 그 기운들이 몸에서 드러나는 정황에 관심을 가진다. 또한, 그 기운들이 변화하는 전변의 과정이 중요하다. 이와 같이 몸 안에서 드러나는 기의 상황(즉, 기후(氣候))의 변화에 주목하는 것이 한의학의 접근 방식이다. 한의학이 가진 관심의 방향성은 기후위기 시대에 적지 않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기후변화를 통해 미증류의 열기가 지구상의 생명들에 닥쳐오고 있다. 기후변화 속 장기간 동안의 고온의 열기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의료의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동아시아의학에서 『상한(寒)론』이 지금까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면, 이제는 『상서(暑)론』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요구되는 시대다. 『상한론』이 단지 “한”만을 다루지 않듯이, 『상서론』 또한 서만을 위한 논변이 아닐 것이다. 기후위기 속 열기가, 가뭄[燥]과, 홍수[濕]와 생각하지 못했던 강한 태풍[風]을 만들 듯이, 여타 육기와의 관계 속에서, 변화 속에서, 『상서론』을 논의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
기후위기의 시대는 지구사와 인류사가 만나는, 전에 없던 시대라고 한다. 이 만남을 인지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기후위기의 핵심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구사와 인류사는 몸을 매개로 연결될 수 있다. 몸 안팎을 넘나드는 동아시아의 기후, 육기 개념이 이에 기여할 수 있다(이전 연재글 <인류세의 한의학> 13 “육기의 관계” 참조). 몸의 문제는 기후의 문제다. 기후의 문제는 몸의 문제다.
지구사와 인류사를 연결하는 것은 단지 학문적 논의의 문제는 아니고, 일상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구사와 인류사를 연결하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관념적인 일만도 아니다. 지금 당장 살기 위해 연결해야 하는 과제다. 지금 세대의 말년과 미래 세대에 기후 재앙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 꼭 연결해야 하는 과제이다(다음 연재 글, “몸의 기후학 IV”에서 계속).
1) “평상시 봄”이라는 말을 쓰기가 조심스럽다. 봄이 봄 같았을 때가 언제였던가? 기후위기 시대의 뉴노멀이라고도 할 수 있을, 봄답지 않은 봄이 일상이 된 형국이다.
2) 기후학자들에 의하면 “급속 가뭄(flash drought)”이라고 불러야할 가뭄이 일반화 되고 있다고 한다. 다음 기사 참조. “As World Warms, Droughts Come on Faster, Study Finds” (뉴욕타임즈 4월 13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