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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8일 (일)

‘초음파’, 지금의 한의사에게 주어진 감사한 책임감

‘초음파’, 지금의 한의사에게 주어진 감사한 책임감

한의학 웰빙 & 웰다잉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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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혜 경희대학교 산단 연구원

(전 강동경희대한방병원 임상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경희대 산단 연구원의 원고를 싣는다.


지난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원심 판결을 뒤집고 한의사가 초음파를 활용한 것에 대한 의료법 위반 여부를 무죄로 선고하였다. 다시 말해, 한의사도 진료 중 초음파를 사용할 수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 

한의학의 전신이 ‘동의보감’이 전부인 마냥 취급받는 일부 여론의 분위기와 다르게, 대법원의 판결문에는 지난 십 수 년 간 한의계가 현대한의학으로서의 도약을 위해 힘써온 행위들이 무죄 선고의 근거 중 일부로 반영된 것은 굉장히 감격스러운 일이다. 


“영상의학과의 판독을 마냥 기다릴 때 많아”


필자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올해 ‘한의사는 맥을 짚어서 암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내냐’라는 비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질문을 수없이 들어온 사람으로서 더 감사한 변화라고 생각하고 있다(지금 당장 암 환자에게 초음파를 사용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한의계에 현대한의학이 발전할 수 있는 호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는, 과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번 판결이 주는 책임감 또한 인지해야 한다. 초음파 프로브를 쥐고 있는 한의사로서 환자 앞에서 뱉을 말의 책임을 감당해낼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암 환자는 보통 이변이 없으면 평균적으로 3개월에 한 번씩 암의 경과 평가를 위해 CT를 찍는다. 대부분 환자들의 경우 검사 당일에 컨디션을 물어보면 ‘전 날 한숨도 못 잤다’라고 말했다. 

잔존해 있는 암이 있건 없건, 항암치료에 대한 반응이 좋건 안 좋건, 검사를 받는 날이면 매번 새로운 선고를 받는 기분이라며 엄청나게 긴장을 하곤 했다. 

CT를 찍으면 영상 자체는 당일에 연동이 되지만 영상의학과 전문 판독이 완료되기 까지는 일주일이 걸린다. 몇몇은 검사 당일보다도 그 일주일을 기다리는 것이 더 피 말린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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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기기 진단권 있는 것에 대한 책임감


초조함을 못 이기는 환자를 위해 의대 병원 교수님께 경과 설명을 조금 일찍 요청 드리면, 당신들께서는 이미 연동되어 있는 영상 한 장 한 장을 천천히 넘기시며 이미 처음부터 끝까지 다 확인하셨음에도 영상의학과의 판독을 기다리고 환자를 보겠다고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는 체계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 환자 덕에 답답함은 일순 사라졌다. 그 환자는 평소와 같이 CT 결과를 설명들은 뒤 ‘암과는 별개로 요새 달리기를 했더니 근육통이 생겨서 소염진통제도 같이 처방해 줄 수 있냐’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상한 낌새를 느낀 교수님들은 이미 판독이 끝난 영상을 다시 분석했고, 그 결과 2mm도 안 되는 작은 뼈 전이가 있었다. 알고 봐도 쉽게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병변이었다. 전이를 조기 발견한 덕에 환자는 일찍 치료 받을 수 있었고 나중에는 완전 관해로 진단받았다. 

만약 이미 영상에 버젓이 기록되어 있었음에도 ‘크기가 너무 작다’는 이유로 모든 의료진이 놓치고, 환자는 다음 검사를 할 3개월 간 달리기를 계속했더라면 어떤 사고가 일어났을지 모를 상황이었다. 이때가 내가 처음으로 의료 영상 기기에 대한 처방 및 진단권이 있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간접적으로 느꼈던 순간이다.

물론 초음파에 대해서는 의과에서도 이러한 중복된 과정을 거치지 않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처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의과도 안 그러는데 우리가 왜 해야 하나’라며 쉽게 가려고 하기보다, 마음가짐만큼은 방어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어떨지에 대해 조심스럽게 제언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초음파 상에 이상이 확인될 경우 다음 스텝에 대한 조절을 오롯이 본인들 권한 안에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므로 우리와는 상황이 다소 다르다. 


“현대한의학의 진료 현장 차분히 구축”


다시 말해서 어떤 질환을 확실히 진단함에 있어 초음파만 사용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문 현대 의료 체계에서, 이제 프로브를 쥘 수 있는 허락을 맡은 우리가 앞으로 거쳐야 할 시행착오를 생각한다면 책임감을 남다르게 가지고 엄숙하게 시작했으면 한다. 

오늘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힘써주신 많은 분들에게 본 칼럼을 통해 정말 감사하다고 공개적으로 전하고 싶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걸어온 분들의 노고가 합쳐져서 일으킨 변화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지금의 대중이 우리에게 바라는 현대한의학의 진료 현장을 구축하기 위한 스텝을 차분히 잘 밟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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