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대한바둑협회 제8대 회장에 당선된 서효석 편강한의원 대표원장에게 바둑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 및 향후 활동 계획을 들어봤다.
지난 50년 동안 각종 폐 질환 연구에 몰두한 끝에 편강탕을 창방하는 등 한의의료로 환자들을 돌봐 온 서효석 원장은 경희대총동문회 부회장, 한중의료우호협회 공동대표, 한국기원 이사, 남북의료협력재단 이사 등을 역임한 바 있다.
Q. 대한바둑협회장에 당선됐다. 소감은?
매우 기쁘다. 그동안 바둑이라는 벗과 인생의 고락을 함께하였고, 현재 공인 ‘아마 6단’으로 오랜 세월 한의 대표로 보건복지부장관배 바둑대회에 참여한 인연이 있다. 꾸준히 바둑을 두다 보니 한국기원 이사가 되었고, 한국기원 이사로서 바둑에 관해 논의하다 보니 대한바둑협회 회장직까지 맡게 됐다.
한의사이기 전에 누구보다 바둑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수많은 바둑대회를 개최하고, 후원하며 대한민국 바둑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4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바둑 인구가 최근 30~40년 동안 컴퓨터 게임에 밀려 자꾸만 줄어드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이제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나서게 됐다. 현재 700만 명에 불과한 국내 바둑 인구 수를 800~900만 명으로 늘리고 싶다.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Q. 바둑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부친께서 책방을 40년이나 운영하셨는데, 한 고객이 책을 잔뜩 외상으로 가져가곤 책값을 못 갚아 돈 대신 좋은 바둑판을 들고 왔다. 그때만 해도 어려운 시절이라 그것을 받아든 아버지는 주변의 복덕방 영감을 초청해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 어깨너머로 저절로 바둑을 배우게 됐다.
그렇게 바둑과의 인연이 시작돼 한의사가 된 뒤에는 직장 대항 바둑대회에 참가하면서 바둑에 대한 열의를 높였고, 대회에 지속적으로 나가서 명예를 걸고 싸우다 보니 자연히 실력도 늘게 됐다. 지금껏 공식 대회의 승수는 57전 54승 3패를 기록 중이다.
무엇보다 바둑을 두면 재미가 있고, 깊은 이치를 궁리하는 습관이 생겨 좋았다. 어떤 걱정이 있을 때 진지한 바둑 한 판 두고 나면 그 근심이 줄어드는 것을 경험했다. 한 판의 바둑에서도 여러 가지 인생의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바둑 자체를 인류가 발명한 최상의 걸작품이라고 생각한다.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보건복지부장관배 바둑대회에서 기왕전 챔피언인 약사회 주장을 상대로 초반에 축을 착각하여 큰 손실을 입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역전승을 거둬 우리 한의사 팀이 우승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Q. 바둑협회 회장직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는?
한때 한국의 바둑 인구는 1500만 명에 달했으나, 지금은 700만 명에 불과하다. 예의와 상생을 배우고, 건전한 여가 선용과 치매 예방은 물론 집중력과 창의력, 지구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는 바둑은 현대의 잔인하고 경쟁적인 온라인 게임 중독을 막는데 탁월한 해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9줄 바둑은 미로처럼 어려워 많은 사람들이 즐기기에는 어려운 한계가 있다. 누구나 쉽게 1시간이면 배울 수 있는 13줄 바둑을 초등학교, 중학교에 보급하여 급감하는 바둑 인구를 역전하여 지금보다 100만 명 더 늘리고 싶다.
나아가 해외에는 ‘쉬운 바둑, 쉬운 한글, 쉬운 한방’ 이 세 가지를 한국의 자랑으로 내놓고 싶다. 이것을 ‘쓰리 케이(3K: Three Korea)’라 명명하여 쓰리 케이 운동 본부를 세계 각 대도시에 설치하여 우수한 한국의 세 가지 문화를 AI 바둑판과 함께 현지에 보급하고 싶다.
그 청신호로 사우디아라비아가 42조의 예산을 들여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마인드 스포츠 중 하나로 바둑을 육성하기로 하였는데, 그것은 마치 사막에 바둑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불모지인 사막에 바둑의 뿌리를 내려 크게 키우려면 온갖 정성과 비용이 들지만, 이미 바둑을 4000년 동안 즐겨온 우리는 물만 주면 쑥쑥 자라는 묘목들이 자생적으로 자라고 있다. 이 묘목들을 키워 숲을 이루는데 사우디의 천분의 일 비용인 정부 예산 400억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인류가 창조한 최고의 두뇌 스포츠인 바둑의 진정한 가치를 재정립하여 정부를 설득, 좀 더 많은 예산 확보에 힘써 국내 바둑 인구의 저변 확대는 물론 전 세계에 보급하여 지구촌 어디에서나 바둑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면,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바둑이라는 공통 언어로 소통하며 남녀노소 누구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Q. 앞으로 임상가로서의 활동 방향은?
이제까지 대면 진료에만 묶여 있었기 때문에 신규 환자 진료가 어려웠는데, 이제 본격적인 화상 진료의 시대가 열렸다. 해외에 거주하는 외국인 및 중국인 환자 진료에 더욱 큰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Q. 취미 생활을 정의한다면?
취미는 제2의 인생이다. 직업 이외의 무언가에 몰두하면 새로운 인생이 열린다. 사실 편강의 획기적인 원리 개발도 바둑을 두면서 많이 이뤄졌다. 책을 읽는 것보다 오히려 바둑을 두면서 상대가 장고(長考)할 때 문득문득 낮에 대화했던 환자를 생각하다 보면 뜻밖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했다.
근심 걱정이 있을 때도 바둑 한 판 진하게 두고 나면 그 걱정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무엇보다 바둑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을 깊이 있게 사귈 수 있던 것이 큰 장점이다. 꼭 바둑이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자신에게 맞는 취미 하나를 갖게 되면 인생이 훨씬 즐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