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도래와 생활양식 변화 등으로 증가하고 있는 만성·퇴행성질환 치료 및 관리에 한의약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공공의료원 내 한의진료과 설치를 통해 국민들에게 보다 양질의 한의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만성·퇴행성질환의 예방·치료를 위한 농어촌지역 및 중소도시 지역 주민의 한의약 수요 증가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한의의료서비스가 대부분 민간 부문에서 제공되고 있는 만큼 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협)에서는 저소득층·장애인·노인인구 등 의료소외계층의 한의의료서비스 수요를 공공보건기관에서 충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한의의료에 대한 높은 국민만족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 통계청이 실시한 의료서비스 유형별(병의원·치과병의원·한방병의원) 국민만족도(13세 이상)에 따르면 세 유형 가운데 한방병의원은 2008년도에 가장 높은 만족 응답률(55.2%)을 나타냈고, 2008년부터 2020년까지 가장 낮은 불만족 응답률(평균 7.6%)을 보이는 등 한의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들의 만족도는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이와 함께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17년 한방의료이용 및 한약소비 실태조사’에서도 한의의료에 대한 전반적 만족도는 76.2%로 집계됐고, 한의외래진료에 대한 전반적 만족도는 86.5%, 한의입원진료에 대한 전반적 만족도는 91.3% 등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향후 한의의료 이용의향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서도 일반국민은 84.2%, 외래환자는 96.4%, 입원환자는 91.8%로 답하는 등 제도적인 보완을 통해 의료선택권이 보장된다면 더 많은 국민들이 한의의료를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의협은 의료취약계층에 대한 효과적인 만성·퇴행성질환 예방·치료를 위해서는 지역 공공의료원 내 한의진료과 설치·운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요청하고 있다. 즉 국민들의 선호도가 높은 한의진료를 제공함으로써 의료선택권을 보장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더불어 표준 한의진료 모델 및 한·양방 의료의 협력지원 시스템 개발도 도모할 수 있다는 것.
안덕근 한의협 홍보이사는 “한의학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특징에 맞게 발전해온 의학인 만큼 치료 근거들을 기반으로 꾸준히 데이터를 쌓아오고 있으며, 이같은 데이터들은 공공의료원 내 한의과 설치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근거들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공공의료원은 물론 공공의료 전반에 한의학이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울산·대전·충북 등 공공의료원 내 한의과 설치에 공감대 형성
그러나 아직까지 공공의료원 내 한의과의 설치는 미진한 상황이다. 실제 보건복지부 지역거점공공병원 알리미 통계선터 진료과별 개설 현황(2020년 12월말 기준)에 따르면 한의과가 설치된 공공의료원은 전체 43개소(지방의료원 37개소+분원 2개소+적십자병원 6개소) 중 5개소(12%)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처럼 공공의료원 내 한의과 설치는 부족한 반면 한의진료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요구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며, 이같은 지역주민의 목소리를 대변해 지방의회에서도 공공의료원의 한의과 설치에 대한 요구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상옥 울산광역시의원은 ‘울산광역시의회 제226회 제3차 본회의’에서 현재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 울산공공의료원 내 한의과 설치를 통해 시민들에게 다양한 의료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우리만의 우수한 의료기술인 한의학에 좀 더 귀를 기울여 울산공공의료원 내 한의과가 신설돼야 함에 큰 공감을 하고, 한의학이 사회적 감염병과 고령화에 따른 만성질환 등에도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대전광역시의회 홍종원 행정자치위원장도 지난해 9월 개최된 ‘제261회 임시회 제4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취약계층의 건강권을 보장하는데 있어 다양한 의료선택권이 주어져야 함에도 불구, 현재는 의과 위주의 정책으로 치우쳐 있는 실정”이라며 “한의진료과는 수요만큼 정책 반영이 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가 있어, 설립 예정인 대전의료원 진료과목에 반드시 한의진료과를 설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지난 1월에는 충청북도 이상욱 의원이 ‘충청북도 한의약 육성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배경에 대해 지역 어르신들의 건강관리 차원에서 한방 주치의제도의 확대, 공공의료서비스에서 한의 영역 강화 등을 현실화하기 위함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대부분의 공공의료서비스에서 한의약의 역할이 제한적임을 지적하고, “이번 조례안을 통해 충북에 있는 공공의료원에도 한의과를 설치해 지역 어르신들의 건강관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의과·의과 협진을 통해 치료 효율성 크게 높일 수 있어”
한편 지난 10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에 보건의료인들은 윤 당선인에게 올바른 보건의료정책 추진에 따른 안정적인 의료기관 운영 기반을 조성해 국민의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앞서 윤 당선인은 지난달 13일 한의학정책연구원 오수석 원장에게 한의협의 ‘한의학 5대 공약안’ 정책 자료집을 전달받고, 깊은 관심을 표한 바 있다. 특히 한의협은 ‘한의학 5대 공약안’ 가운데 가장 선행돼야 할 과제로 한·양방 의료간 심각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을 꼽았다. 즉 한의의료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규제들을 혁파하고, 한의의료의 보장성 강화를 통해 국민들이 공평하게 의료선택권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한·양방간 협진이 원만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미 많은 의학 전문가들이 한·양방 협진이 공공의료의 혁신 방안으로 자리잡아 고령화에 따른 만성질환자들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진행한 의·한 협진 시범사업의 (2단계)평가 결과에서도 치료기간과 치료비용, 내원일수 등이 절감되는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협진환자와 비협진환자의 성향점수매칭을 활용한 치료성과 분석 결과 △등통증 △기타 추간판장애 △안면신경장애 △요추 및 골반의 관절 탈구·염좌 △뇌경색증 △편마디 등 6개의 모형의 경우 적게는 2일에서 많게는 36일 치료기간이 줄어들었으며, 총 치료비용 최대 18만8000원까지 감소되는 효과를 보였다.
이와 관련 이승언 한의협 보험/국제이사는 “한의학의 효과 그리고 수요와 관련된 모든 통계를 살펴보면 향후 도래할 것으로 생각되는 질병을 대비하기 위해 한의치료가 필수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초고령사회 등 미래를 대비해 한·양방 협진과 지역단위 건강 진료시스템이 가동된다면 분명 국민들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위한 시발점으로 공공의료원 내 한의과 설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