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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23일 (화)

[시선나누기-5] 말과 손톱

[시선나누기-5] 말과 손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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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저온 보리한의원장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공연 현장에서 느낀 바를 에세이 형태로 쓴 ‘시선나누기’ 연재를 싣습니다. 

문저온 보리한의원장은 최근 자신의 시집 ‘치병소요록’(治病逍遙錄)을 연극으로 표현한 ‘생존신고요’, ‘모든 사람은 아프다’ 등의 공연에서 한의사가 자침하는 역할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아이

아이는 내 앞에서 수줍어했다. 

내 앞이라 그런 것인지, 아이의 본래 천성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두 가지가 섞인 것인지 몰랐다. 묻는 말에 배시시 웃고 고개를 숙이고, 다시 눈길을 돌리며 소리 없이 웃고, 고개를 숙였다.

손톱을 보여 줄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가 가장 심했는데, 책상 위로 두 손을 올려 열 손가락을 잠시 꺼내놓더니 얼른 감추어 버렸다. 놀라 동그래진 내 눈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아이의 손가락 끝에는 손톱이랄 것이 없었다. 

뭉그러진 듯한 손가락 끝은 핏물이 밴 살갗이 너덜너덜했다. 뿌리 쪽으로 이삼 밀리 정도 되는 손톱의 흔적이 겨우 보였다. 열 손가락이 모두 그랬다. 보는 내 눈이 아팠다. 

옆에 서 있는 엄마의 말로는 열 개의 발톱도 똑같다고 했다. 

‘가능한가? 발톱을 입으로 가져가 열 개를 몽땅 물어뜯는 게?’ 

나는 놀랐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아이가 그렇다고 하지 않는가. 말없이. 배시시.

아이의 깊은 불안과 고독을 내가 함부로 말하거나 건드리거나 만져줄 수 없다는 절망감이 내 안에서 일었다.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에게 나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겠지만, 지금 너를 만나고 있는 이 시간 전부, 내 마음 전부를 오롯이 너에게 기울인다.’

나는 이런 마음이 아이에게 전해지기를 바랐다. 그리고 아이와 눈을 맞춘다. 말을 묻고, 짧은 말을 듣고, 웃음을 받고, 웃어준다. 별 소용없을 몇 마디 부탁도 한다. 부탁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아이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아이는 어떻게든 자라리라.’

믿는다. 믿어준다. 믿는 데에도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문저온2.jpg

 

◇배우

배우가 무대에 있다. 

홀로 붉은 조명을 받으면서 몸을 뒤틀고, 구른다. 긁으며, 뒹군다. 일그러진 얼굴로 제 손톱을 물어, 뜯어, 뽑는다. 뽑을 때, 뽑아서 뱉을 때, 손톱이 바닥에 떨어지는 희미한 소리가 낯설게 귀를 때린다. 나는 움찔, 움찔한다.

배우가 다시, 몸을 일그러뜨려 발톱을 물어, 뜯어, 뽑는다. 

간절히, 간절히도 손톱과 발톱을 물어뜯어 뽑을 때, ‘아이의 깊은 불안과 고독’이라고 했던 나의 언어는 여지없이 흔들렸다. 

어른, 치료자로 건너다보던, 안타깝게 관찰하고 안전하게 내려다보던 나의 짐작과 시선이 바닥에 처박혔다.

바닥에서, 문자로 걸러졌던 고통이 날것의 통증으로 몸을 찔렀다. 

그랬다. 고통이, 몸을, 찔렀다. 

존재 자체가 겪어야 하는 통증을 맨몸으로 꺼내놓는 일이라니. 눈앞에 펼쳐 들이미는 일이라니. 배우는 말 없는 마임 배우여서 더욱이 통증은 조용한 벼락처럼 떨어졌다. 

실존의 고통. 고통의 현시. 배우의 몸은, 언어를 넘어서 직면하게 되는 이 구체성은 존재와 감각, 존재와 의식의 거리를 지우고, 덧칠을 걷어내고, 인간을 바로 보게 한다. 그럴 때는 보는 눈이 아프지 않다. 눈이 아플 새가 없다. 통째로 내가 고통 속에 있다.


◇손톱

특수분장사가 만들어준 손톱이 망가지고 분실되어서, 배우는 인조손톱을 다시 샀다고 했다. 핏물을 들이느라고 인조손톱에 붉은 매니큐어를 칠하고 있었다. 객석에서 조명 아래서 보아 크게 차이 나진 않을 것이나, 무시할 수 없는 디테일이란 게 있다고, 나는 이쑤시개 끝으로 한 올 한 올 핏줄기를 그려 넣자고 했다. 

리허설이 끝나고, 무대가 열리기 전, 잠깐의 평온한 적막 속에서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간이 특수분장’을 한다. 열 손가락을 펼친 사진 위에 핏물 밴 손톱을 장난스레 얹어보고, 이거 예술이네, 감탄하며 즐거워하며 다시 사진을 찍는다. 공을 들이는 일. 사람 사이 기꺼운 마음으로 정성을 들이는 일. 사소한 아름다움을 만들고, 발견하고, 귀하게 여기는 일. 이 모든 일들이 순간순간 일어난다.

아이는 말 대신 손톱을 뜯었다. 뜯으면서 소리 없이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파도 같고 벼락같은 말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아이는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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