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윤미 한의사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육아와 한의학, 인문학 등의 분야를 오가며 느꼈던 점을 소개하는 ‘육아에서 찾은 소우주’를 싣습니다. 대전시 중구 보건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저자 박윤미 한의사는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를 졸업한 후 뒤늦게 대전대 한의대를 졸업하고 중고등학생에게 한의 인문학을 강의하며 생명과 건강의 중요성을 나누고 있습니다.
고1 막내가 학기 초에 “고등학교에서 진짜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수업시간에 들어오시는 선생님마다 ‘지방 일반고에서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는 방법은 수시 밖에 없으니 내신에 올인해라. 그래서 알고 보면 네 옆의 친구가 다 경쟁자다’라고 하셨다는 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었던 모양이다. ‘선의의 경쟁’이란 것도 있다면서 위로해줬지만, 마음 한구석이 씁쓸했다.
우리 아이들 셋은 전부 일반고를 다녔다. 나도 한때 특목고나 자립형사립고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세 아이 모두가 선행학습을 강력하게 거부하는 바람에 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 지방 일반고의 3월 학부모 총회에 가면 학교로부터 한결같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정시는 수도권 일반고나 재수생들 벽이 높아서 여기선 넘볼 수 없고 특별전형이나 논술 전형은 특목고 출신만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지방 일반고는 오직 수시밖에 길이 없는 얘기도 덧붙였다. 맞는 이야기인 것 같긴한데,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모든 학우를 경쟁자로 보고 살아야 하는 아이들이 안쓰럽다.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는 요인은?
하버드대에서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75년간 종단연구(동일한 연구대상을 오랜 기간 계속 추적하면서 관찰하는 연구)를 실시했다. 이는 인류 역사상 행복에 관한 가장 긴 연구라고 한다. 742명을 대상으로 시작했는데 현재 60명이 생존한 상태이고 연구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이 연구의 4회차 담당자인 정신과 의사 로버트 월딩어 박사에 따르면 그 답은 지극히 간단했다. ‘친밀하고 좋은 인간관계’였다.
예로부터 동양은 공동체를 중시해왔고, 개인 자체보다 개인이 맺고 있는 여러 층의 ‘인간관계’로 한 개인을 규정하는 편이었다. 반면 서양은 ‘관계’보다 ‘개인’을 앞세우는 문화였다. 그런데 새삼 미국 유수 대학인 하버드에서 행복의 조건을 ‘인간관계’라고 결론 내리다니 아이러니하다. ‘관계’가 행복을 위한 핵심 요소라는 사실을 서양문화권에서도 뒤늦게 동의한 것 같다.
그렇다면 ‘친밀하고 좋은 인간관계’는 누가 만들어 줄까? ‘관계’는 마트나 쇼핑몰에서 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인사를 주고받는 것도 서툴고, 실수에 대해 사과할 줄 모르고, 나도 모르게 상대에게 상처 주는 언어 습성이라도 있다면 누구든 피하고 싶을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피하면 외로워진다. ‘친밀하고 좋은 인간관계’의 정반대 상황이 벌어진다.

◇경쟁심으로 평생 살게 하기보다 ‘덕’ 가르쳐야
결국 자신의 인품이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기반이다. 이를 적절하게 표현한 논어 속의 한 문장이 있다.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 즉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논어 속엔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할까를 염려하라’ 등등 인간관계의 황금률이 가득 담겨 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덕’을 가르쳐야 할 때이다. 어쩔 수 없는 생존 경쟁 속에서 단기간 등수 경쟁을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이런 경쟁심이란 잣대로 평생을 살아간다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밝을 수 있을까.
다행히 우리에겐 ‘덕’을 논하고 가르칠 수 있는 뛰어난 교재들이 수두룩하다. 그것도 수 천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숱한 인재들이 해설해 놓은 고전들이다. 요즘 ‘한류’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대중음악, 영화, 음식, 패션 등이 전 세계적으로 소비되고 있는데, 우리네 철학이야말로 한류의 근간이 아닐까 싶다.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는 행복의 버팀목으로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