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수기 원장
- 그린요양병원, 다린탕전원 대표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불경 <수타니파타>
뿔, 예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았다. 상상의 동물 대부분이 뿔을 가지고 있다. 동양의 전설인 용도 뿔이 있었다. 뿔이 없다면 용은 뱀일 뿐이다. 뿔은 남성성이며 힘의 상징이었다. 조상들에게 뿔은 진귀한 진상품이자 공예품이나 약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동물의 뿔은 크게 네 종류로 나뉜다. 먼저 통각(洞角)이 있다. 소나 염소와 양의 경우다. 가지가 없고, 속이 텅 빈 공간이 있는 구조다. 뿔의 표피가 돌기를 싸고 있는 모양이다. 나이테처럼 각륜(角輪)이라 불리는 흔적이 남는다.
지각(枝角)은 사슴처럼 뿔에 가지가 있는 것이다. 1년에 한 번씩 뿔갈이를 한다. 골각(骨角)은 기린에서 볼 수 있다. 두개골의 연장이기 때문에 골각이라 부른다. 피부가 감싸고 있는 형태인데 끝부분만 털이 나 있다. 마지막으로 표피각(表皮角)이 있다. 케라틴 섬유로 구성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코뿔소이다. 뿔이 콧잔등에서 자란다.
뿔과 한의학, 스토리가 많은 편이다. 뿔의 약재로서의 가치를 일찍이 깨달았다. 한약의 특징이 무엇인가? 바로 같은 기운이나 생태에서 그 약성을 찾고 효과를 구하는 것이다. 일명 동기상구(同氣相求)의 의론이다. 같은 뿔이어도 각각의 성질에 따라 효과를 구분한다. 예를 들면 녹용과 서각이다.
최고의 선물은 ‘보약’, 이제는 아련한 추억의 전설
녹용(鹿茸), 성장기의 사슴뿔이다. 양기의 표상이다. 독맥의 혈이 모이는 곳이다. 당연히 양기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탁월하다. 성장과 스테미너 및 보양에 응용되는 이유이다.
뿔이 성장하는 데는 많은 영양소가 필요하다. 다양한 성장인자와 호르몬이 집중된다. 필수 영양소를 모두 함유하고 있다. 연구결과 면역력 증강, 근육강화, 여성 호르몬 조절, 성기능 강화, 성장촉진 등에 효과가 입증되었다.
서각(犀角)은 대표적인 음기 약물이다. 표피각, 즉 피부 털 등이 각질화 되어서 뿔이 되었다. 따라서 한의학적으로 찬 성질의 약이다. 성질이 매우 차다. 달빛이 비치는 폭포수로 비유한다. 수(水)와 관계된 약물이다. 청열, 양혈, 해독, 지혈의 명약이다. 너무 진귀해서 끌로 밀어서 분말로 사용했다.
보약이 씨가 말랐다. 언제부터인지 한약 판도에 대한 평가다. 한약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모두가 연례행사처럼 <녹용이 든 보약>을 한 제씩은 복용했었다. 최고의 선물은 <보약>이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의 전설이 되었다. 이유는 많다. 건강식품의 잠식, 제도권과 사보험 시장에서의 배제, 한의학 폄하와 왜곡 등과 코로나 사태까지, 한약시장은 점점 위축되고 있다. 문제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머리에서 뿔 날만큼, 이제 울분하고 포효하자”
현재 첩약건강보험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시행초반부터 찬반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앞으로 많은 개선이 필요한 것은 맞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첩보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아니 하고 싶어도 못했다. 병원은 제외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필자의 피해의식에도 불구하고 첩보시범사업은 끝까지 가야만 한다고 본다. 첩약시장의 위축을 더 이상 방관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이왕 시작되었으니 결과를 기다려 보자. 시행된 첩보가 한약 부활의 불씨가 되길 기대해 본다.
한약 먹어 봤어? 녹용은? 경옥고나 공진단은? 당근 먹어봤다고? 얼마나? 한 알, 아니면 몇 봉지? 그래가지고 무슨 한약 타령? 아니 자신이 먹어보지 않고 환자에게 뭔 추천을? 한약 처방 많이 내고 싶다고? 그럼 원장 본인부터 한 달만 먹어봐, 그리고 그 느낌 그 효과를 체험해 봐! 그리고 그 확신으로 환자에게 권해봐. 어느 선배님의 일갈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띠의 새해다. 봄기운이 가깝다. 뿔이 자라난다. 뿔은 힘의 상징이다. 뿔에서 위안과 희망을 찾자. 그 동안 위축된 현실에 화가 난다. 머리에서 뿔이 날만큼, 하여 이제 울분하고 포효하자. 우직하게. 단호하게, 강하게! 땅 한번 크게 차고, 달려보자. 뿔난 무소들처럼, 뿔 난 한의학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