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구사회 등 선진국에서는 의료인 면허 규제를 정부가 하기보다 시민사회를 통한 제3의 기구가 관장하고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면허 규제가 의료인을 위해서라기보다 시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난 1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의학과 문화의 만남’을 주제로 열린 제36차 대한의사협회 종합학술대회에서는 학술프로그램의 첫 세션으로 ‘자율규제 국제 심포지엄’이 진행됐다.
‘의사 자율규제의 국제적 동향’을 주제로 첫 번째 발제를 맡은 휴마연 차우다리(Humayun Chaudhry) 세계의사면허기구연합회 사무총장은 “전세계적으로 자율 규제에 대한 흐름은 업계의 성숙도와 배타적 경험을 인정하는 추세”라며 “정부가 규제 기능을 전문성을 갖춘 기구에 위임하는 것을 뜻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오늘날 미국 모든 주의 의사 면허 기구는 면허나 징계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의사와 함께 참여하고 있다”며 “면허기구에서 하는 주요 역할은 대중 보호”라고 설명했다.
서양에서는 ‘공유된 규제’ 또는 ‘적정 개입 규제’라고 하는데 자율규제의 개념이 전문직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시민을 보호하는 개념이라는 게 핵심이며, 이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협업해 시스템을 만들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이러한 협업시스템 하에서는 정부와 전문직, 시민들 간의 신뢰가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적정 개입 규제’는 2009년에 나온 개념으로 미국을 비롯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 등 서구 국가들이 대부분 활용하는 테마다. 그는 “한국에서도 새로운 규제 방식을 고민한다면 이 개념을 고려해 볼 것을 추천한다”며 “위험을 적정하게 평가해 균형적으로 전문성이 함께 발전하는 프레임 워크를 구축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최소한의 규제력을 위한 원칙으로 면허 징계 시 고려하는 사항과 관련해 균형성, 일관성, 대상, 투명성, 책임성, 민첩성 등을 꼽았다.
‘민첩성’이라는 원칙이 중요한 이유와 관련해서는 “미국의 경우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데 규제 당국은 인공지능이 의료현장에서 도움이 되면서도 기계가 틀려 실수할 경우 누구를 징계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며 “인공지능 TF를 만들어 활용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데 미래를 내다보고 변화를 예측하며 적응하는 것과 관련된 개념이 바로 민첩성”이라고 부연했다.
플로어에서는 “한국에서는 의료인에 대해 행정적인 것은 물론 형사적 책임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서구에서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휴마연 차우다리 사무총장은 “미국의 경우 규제 기구가 이런 일들을 자율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형사로 넘어가는 일 자체가 별로 없다”며 “징계로 처리될 게 아니라 공중의 보호를 위해 바로 처리돼야 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소수의 케이스만 형사 고소되고 있다”고 답했다.
두 번째 발제로는 낸시 휘트모어(Nancy Whitmore) 대표가 캐나다 온타리오주 의사면허기구의 역할에 대해 소개했다.
온타리오주는 캐나다에서 가장 큰 주로, 의사면허기구(CPSO, College of Physicians and Surgeons of Ontario)가 면허를 부여,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의사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며 형법상 범죄 행위나 반복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당 문제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한다고 한다.
낸시 휘트모어 대표는 “모든 의사들은 CPSO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며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신속한 불만 처리 프로세스가 기구의 핵심 기능”이라고 전했다.
심포지엄 전 앞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는 비의료인의 진료, 불법 광고 등 배타적 전문성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정부도 규제와 행정력 위주로 통제하고 있다”며 “의료선진국은 의료인 면허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배타적 전문성을 인정하고 인도네시아와 태국 등도 선진적으로 면허를 관리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면허 관리 기구 설립에 대한 논의를 서둘러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