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간행된 『대한한의학회지』 제10호에는 「鍼灸學術大會 日本·中國」이라는 제목의 座談會가 열렸다. 이 토론회는 1971년 진행된 日本과 臺灣(당시 自由中國이라고 부름)의 침구학 관련 학술대회를 통해 진행된 학술적 교류에 대한 것이었다.
이 좌담회는 사회자 洪淳用(당시 대한한의학회 이사장), 참석자 李鍾海(삼중한의원 원장), 丁海哲(금강한의원 원장), 李鍾馨(대한한의학회 이사), 李憲格(이대한의원 원장), 鮮于基(수동한의원 원장), 黃敬植(황경식한의원 원장), 梁貞玉( 양정옥한의원 원장) 등이었고, 정리자는 金秉雲(대한한의학회 이사)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좌담회에 대해서 “1971년도 지나가고 새해 벽두를 맞이해서 오늘 저녁 특별히 해외적으로 활동하시고 돌아오신 여러 선생님들을 모시고 우리 한의학회가 외국에 가셔서 하신 학술활동에 관해 여러 면을 좀 알아보기 위해서 모였습니다”라고 크게 설명문을 붙이고 있다.
아래에 좌담회 석상에서 이루어진 토론을 토론자별로 요약정리한다.
1972년 ‘대한한의학회지’ 제10호에 나오는 침구학술대회 관련 좌담회 기사.
○ 사회자 洪淳用: 작년 한해 동안에 대내외적으로 큰 수확이 있었다. 지난 일년 동안 일본과 대만에 갔다 오신 분들께서 한분씩 침구학술대회를 중심으로 말씀해주시기 바란다.
○ 李憲格: 일본에서는 과학적으로 기계를 이용한 연구와 동물실험을 활용하는 것이 인상깊었다. 大阪에서 모리야마라는 학자가 토끼의 복부에 절침을 해서 엑스레이로 1주일간 관찰한 발표는 인상이 깊었다. 또한 수많은 학자들이 전기학적 결과를 주로 이용함을 보고 신경과 전류의 관계를 연구에 중점을 삼는다는 것을 느꼈다.
○ 鮮于基: 나는 『難經』 75難을 주제로 발표를 하였다. 이것은 木實金虛한 때에 瀉火補水하라는 理論으로서 69難에서 虛則補其母하고 實則瀉其子하라는 理論과 맞지 않는데, 그것에 대해서 그 안에 있는 子能令母實하고 母能令子虛하라는 그 子와 母는 무엇을 가르키느냐는 것을 내 나름대로 규명한 것이다. 나까야마 선생의 침마취술을 나에게 시술하도록 해보니 좌측 족삼리혈에 시침과 저주파를 해서 복부를 마취시키는데, 반대측인 右側腹部가 약간 마취되는 것을 느꼈다.
○ 梁貞玉: 일본 학술대회에서 학술적 깊이를 떠나서 신문, 라디오 등 메스콤의 깊은 관심이 인상깊었다. 천여명의 학술대회 참여자 가운데 원폭투하의 영향으로 인하여 불구자가 많았다. 여러 방문을 통해 침구치료를 신뢰하는 일본 환자들의 모습을 목격하였다. 또한 나까야마 선생의 鍼麻醉術에 대한 발표가 인상깊었다.
○ 黃敬植: 침구에 대한 교육시설을 방문하면서 많은 인상을 받았다. 학회의 발표는 실험논문을 제외하고 대부분 임상적 경험을 통계적으로 처리해서 그대로 발표한 것이었다.
○ 李鍾海: 작년 丁海哲 先生과 함께 대만에 침구학술대회에 참석하였다. 대만중의사회와 서울시한의사회가 오는 3월에 자매결연을 맺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술대회에서 丁海哲 先生이 中風에 대한 학술논문을 발표하였다.
○ 丁海哲: 臺灣의 吳惠平 先生이 중심이 되어 『鍼灸世紀』라는 제목의 학술잡지가 간행되고 있다. 吳惠平 先生이 진행한 鍼灸學術大會인 鍼灸節에 참석하였다. 중국약물학회와 중의사협회의 정기총회가 합동으로 열렸을 때 거기에 참석하였다. 본인은 이 자리에서 「임상적으로 본 중풍증 치료」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