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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7일 (수)

“한국 한의학의 기원을 올바로 정립하자”

“한국 한의학의 기원을 올바로 정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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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철 교수 / 원광대 한의과대학



잘못된 의학사 정리로 한의학 역사성 훼손



知聰의 국내 의학서 日本전수 논란 일어



한국 의학의 기원과 발달과정은 고대사회로 거슬러 올라가며, 동이족이 중심이 되었던 고조선시대부터 침술을 포함한 의학이 기원하고 발달했을 것이란 추정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한의학의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직접적인 의서와 의료기구와 같은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 한의학의 기원은 자연히 중국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의학이 한의학에 영향을 주는 중국 의서들의 유입 시점을 언급한 내용이 1954년 ‘한국의학사’에서 다뤄지게 된다. 그 내용은 “高句麗 平原王 3년(隋文帝天嘉 2년, 서기 561년)에 中國江南에 건국한 吳의 사람 知聰이 ‘內外典’, ‘藥書’, ‘明堂圖’ 等 164卷을 가지고 高句麗를 거쳐 日本(欽明主 22年)에 귀화하였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知聰이 전한 ‘內外典’, ‘藥書’ 및 ‘明堂圖’는 당시 漢土의 중요한 醫藥書로서 中國으로부터 먼저 高句麗에 전해진 것이 다시 日本으로 건너간 것이다”라고 언급돼 있다.



이와 같은 국내 학자의 주장에 근거하여 지난 50여년간 국내 한의학계는 이를 그대로 수용하여 각종 한의학의 기원과 유래를 다루는 문헌 및 자료에 수록하고 있으며, 현재 한의과대학 교재에도 수록되어 학생들에게 이 내용을 교육시키고 있다. 결국 이 내용을 근거로 국제보건기구에서 침술의 기원과 전파에 관하여 침의 기원과 발전은 중국에서 비롯되었으며, 이후 6세기에 한국을 비롯한 일본 등에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知聰에 관한 역사적 진실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통하여, 이상과 같은 知聰이 한·중·일 의학 교류에 대한 역할이 잘못된 것임을 인식하게 되어 이에 소개하고자 한다.



김두종은 富士川 游의 ‘日本醫學史’(1904년)와 이능화의 ‘朝鮮醫藥發達史’(1931년)를 통해 ‘한국의학사’를 저술하게 된 동기를 받게 된다. 그 중 이능화의 글을 살펴보면, “고구려 초기에는 의술을 알지 못하여 중국을 통해 의술을 습득하게 된다”고 언급하면서 비록 知聰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고구려 고유 의술의 부재를 논하게 되면서 김두종 선생은 1946년에 ‘日本으로 건너갔던 우리 三國時代 의학(이르는 바 韓醫方)’을 통해 知聰이란 인물이 561년(欽明天皇 22년)에 일본장수 大伴狹手彦이 고구려 정벌에서 승리하면서, 고구려로부터 日本으로 귀화하였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김두종의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日本醫學史’와 ‘日本書紀’를 근거하였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富士川 游가 지은 ‘日本醫學史’에서는 知聰이란 인물은 562년(欽明天皇 23년 8월)에 일본으로 의서들을 가지고 귀화하였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지만, 知聰이 고구려를 경유한 내용과 大伴狹手彦의 고구려 정벌설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아울러 ‘日本書紀’에 기록된 561~562년 사이의 내용을 찾아보면, 일본이 고구려를 침략하여 정벌하였다는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만, 知聰이 언급되고 있지는 않다.



일본 고대 사료에서 知聰의 존재는 ‘新撰姓氏錄’(815년)에 처음 등장한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欽明天皇(539~571년) 시기에 吳나라 君主 照淵의 손자인 ‘知聰’이 ‘大伴’과 ‘比古’ 일본인을 따라 ‘內外典’, ‘藥書’,‘明堂圖’ 등 164卷의 서적과 佛像 一軀, 伎樂調度 一具를 일본 조정에 바친 공로와 함께, 孝德天皇(645~654년) 시기에 그 자손 ‘善那使主’가 천황에게 우유를 바친 공로를 인정받아 ‘和藥使主’란 성씨를 하사받았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新撰姓氏錄’에서 知聰과 관련한 정확한 연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당시 상황에서 高句麗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에 관련한 내용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知聰과 관련한 내용이 100여년의 시기에 걸쳐 설명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저명한 의사학자인 三木 榮은 그의 저서 ‘朝鮮醫學史及疾病史’(1955년)에서 매우 새로운 내용을 자신의 생각으로 보여주고 있다. 知聰이 백제에 귀화하였던 인물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것이 中國醫學이 한반도 남쪽을 경유하여 醫藥書가 日本으로 수입된 최초의 기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당시 의약서와 의료기술은 백제시대의 의료기술이 위주가 되었을 것이라 추정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三木 榮의 주장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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