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 이전 한의학 속의 해부학(Ⅱ) - 본격적인 해부의 시행
동양에서 시행된 해부 프로세스 분석 결과, 의사 및 화공을 동원해 그 결과를 기록함으로써 해부 지식 습득을 중요하게 여겨
한의학의 해부 프로세스- 측량, 묘사, 명칭 등의 해부 지식들이 외과, 법의학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되었고, 일부 수술 시행에서도 중요한 학술적 기반 마련
인체 구조에 대한 해부 지식은 분명히 임상에서의 활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한의학에서도 전통적으로 외상을 치료하는 외과 부문이나 일부 복강 내 수술을 시행하였던 경우에 기본적인 해부 지식이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해부라는 행위 자체는 해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순수 학문적 목적으로 인체를 해체하고 관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동양에서는 이러한 공식적인 해부의 시행과 기록이 많지는 않다.
현재까지 문헌적으로 알려진 것으로는 「漢書」「王莽傳」의 기사와 북송 范鎭의 「東齋記事」에 보이는 歐希範의 해부기록, 晁公武의 「郡齋讀書志」 後志에 나오는 「存眞圖」의 해제에 보이는 崇寧 연간의 해부기록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에서 蘭學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해부가 유행하기 시작하여 야마와키 도요(山脇東洋)가 「藏志」(1759년)를 지은 것 등은 역사적 배경이 조금 다르다.
「王莽傳」에서는 太醫와 尙方, 백정을 시켜 죄인을 해부한 후 五臟을 측량하고 혈맥의 노선을 확인한 기록이 나오며, 歐希範의 해부 기록에서는 도적인 歐希範 일당을 붙잡아 배를 가르고 역시 의사와 畵人으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하였는데 오장의 실제 위치, 모양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였고 특히 嗽 등 특정 질병이 있던 사람의 장부가 병리적으로 변화된 양상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이 그림은 현재 「歐希範五臟圖」로 전해진다. 崇寧 연간의 해부기록도 역시 泗州 郡守인 李夷行이 도적을 저자에서 형을 집행할 때에 의사와 畵工을 파견하여 격막을 열어 그림을 그리게 한 것이다.
동양에서 역사적으로 시행되었던 해부의 과정을 현대 해부 프로세스에 비교하여 보면, 우선 현대의학의 해부 프로세스는 표준화된 분류는 없으나 크게 규정, 습득 및 관련규정, 준비, 목표, 기록, 처리, 활용 등 7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규정은 해부 관련 규정이나 법규를 말하며, 습득 및 관련규정은 cadaver의 습득, 허가 긍에 대한 규정이나 법규를 말하며, 준비는 실제 cadaver의 준비 과정으로 제례 등까지 포함하고, 목표는 해부를 시행하는 목적과 순서, 선행지식 등을 말하고, 기록은 해부 과정에서 관찰된 정보들을 어떻게 기록하였는가에 대한 것이며, 처리는 해부 이후 cadaver의 처리와 학습 내용에 대한 평가를 포함하고, 활용은 해부를 통해 얻은 지식을 어떻게 활용해 나가는지에 대한 것을 말한다. 위에서 말한 본격적인 해부 기록 이외에 해부 프로세스를 유추할 수 있는 기타 문헌자료들을 함께 검토하여 동양에서 이루어졌던 해부의 프로세스 복원을 시도해 보았다.
7가지의 분류를 다시 규정, 해부, 목적, 의례의 4 분류로 간략화 하여 살펴본 결과 우선 규정에 대해서는, 적군의 포로나 극형을 받은 죄수, 또는 전쟁에서 연고가 없는 시신 등을 대상으로 해부를 시행하는 것이 당시 cadaver를 습득하는 가장 합법적인 절차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대에 당시 권력을 잡은 王莽이 太醫와 尙方을 시킨 것,「歐希範五臟圖」의 경우 吳簡이 宜洲의 관직에 있으면서 의사와 畵工을 동원한 것, 楊介가 「存眞圖」를 편찬할 때 군수가 의사와 畵工을 파견한 것 모두 공식적인 행정 집행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공식적인 절차를 밟게 되면 해부를 일반에서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리는 효과가 있고 참여한 의관도 해부 지식을 습득하여 의학적 권위를 가질 수 있다. 그밖에 법의학에서는 당연히 관직에 있는 검시관이 공식적으로 이를 진행하였다.
해부 과정에 있어서는, 우선 의사는 기존 지식을 바탕으로 관찰 내용을 검증하고 의사의 지도에 따라 화공이 그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해부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칼로 절개를 하는데, 「扁鵲列傳」에 나오는 兪跗의 기록처럼 체표부터 가장 깊숙한 곳까지 해부를 진행하며, 이 과정에서 割, 解, 訣, 結, 搦, 揲 爪 등 동작을 설명하는 표현이 나온다.
해부가 아닌 수술의 경우에는 처음에 마취약을 쓰고, 이후에는 해부 작업과 비슷하며 다음으로 병리적 산물을 절제하고 내부와 외부로 봉합을 하는 과정들이 추가된다. 봉합 후에는 잘 아물게 하는 약을 바르고 상처가 아무는 예후도 제시하고 있다.
해부를 통하여 얻어낸 지식들은, 내부 장기와 구조를 측량한 것, 혈맥의 노선을 확인한 것, 장기와 구조의 모양을 확인한 것, 문자 기록이 아니라 그림으로 그린 것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인체에 대한 기본 지식 중에서 부위 명칭과 관련된 용어는 「內經」에 이미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후 의서를 통하여 계승된 것과 법의학 분야에서 표준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의서에 기재된 것은 주로 경락, 경혈의 위치를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것과 외과 치료 및 수술을 목적으로 쓰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列子」에 나오는 개흉술은 흉부 구조에 대한 사전 지식을 필요로 하며, 「資治通監」에 나오는 뼈를 뚫거나 벌리는 외과술들도 역시 뼈에 대한 기본 지식 없이는 불가능한 시술이다.
해부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순수하게 인체의 내부를 알고 싶은 의학적 호기심에 있었을 것이다. 또한 「王莽傳」의 기록에서 太醫가 해부에 참여한 것으로 보아 해부 지식은 당시에 매우 고급에 속했음을 알 수 있으며, 이와 같이 다수의 의사를 참여시킨 것은 지식을 공개하여 공유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또한 해부를 마치고 이로써 병을 치료할 수 있겠다고 말한 것은 해부 지식이 직접적으로 치료에 사용되었음을 의미하는데 아마도 수술과 외과치료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법의학의 부검은 오래전부터 시행되어 왔는데 그 목적은 해부와 달리 사인을 규명하는 데에 있었다.
관련 의례에 대해서는 「洗冤集錄」과 「新註無冤錄」 중에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나 법의학의 통상적인 처리 과정이며, 「藏志」에 일부 제문이 포함되어 있으나 일정한 제례가 정해져 있지 않아 그 기록이 드물다.
동양에서 시행된 해부의 프로세스를 분석해 본 결과, 해부의 빈도가 많지는 않았으나 관료에 의하여 공식적인 절차를 바탕으로 의사 및 화공을 동원하여 해부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기록함으로써 해부 지식 습득을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으며, 그러한 측량, 묘사, 명칭 등의 해부 지식들이 외과, 법의학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되었고, 일부 수술 시행에서도 중요한 학술적 기반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