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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7일 (수)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47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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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꿈, 한의학도의 꿈” 청년시절 洪元植 敎授의 꿈



“언젠가 나는 몇몇 知己들 앞에서 ‘韓國에서 學問을 하겠다는 것처럼 奢侈스런 생각은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여 詭辯論者라는 명예스럽지 못한 別號를 받았다. 그때 나는 이 말이 詭辯이 아니고 眞正이라는 것을 納得시키기에 무진 애를 쓰며 辯論을 했지만 ‘그 辯論도 詭辯으로 規定함’이라는 多數의 橫暴에 그만 慘敗를 當하고 말았다. 그후 여러번 論爭을 별렸으나 번번히 묵살만 하더니 이젠 아예 얘기를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는 이 친구들을 愚昧하다고 規定하고 以心傳心으로 깨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이 問題를 再論하는 것을 締念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엉뚱한 要請을 받았다. 왜 어리석고 奢侈한 학문의 길을 걷느냐는 것이다. 西洋에선 怒한 젊은이(angry young man)들이 社會問題라고 한다. 이 젊은이들의 怒한 不滿이란 모든 社會組織에 부족함이 없다는 이를 테면 現代 文明에 대한 염증이라는 것이라 하니 우리네 사회와는 각도가 너무도 먼 얘기다. 무한한 熱情의 放出口를 찾지 못하여 怒한 젊은이들이 東洋學問에 精進하기 시작하지도 이미 오래이라고 한다. 近者에 歐美로 留學하는 學生이 많은 것은 韓國의 近代化를 위하여 必要不可缺한 일이겠으나 그것이 묏돼지를 잡으려다 집돼지 놓치는 어리석음의 現出이어서는 안되겠다. 이러한 주제없는 老婆心의 變形이 漢醫學을 한다는 자만이라고 하겠고 이 속에 무진장의 사치가 숨어 있다는 幻像 아닌 信念의 마력이 漢醫學을 하는 변명이 될 것이다. 東西古今을 통하여 偉大한 文明의 業績치고 情熱에 넘치는 젊음의 지성과 피눈물나는 努力의 代價가 아닌바가 없었다. 여기에 東洋文化를 이어받은 젊음의 의무가 있는 것이다. 漢醫學은 결코 時代的 遺物로서 骨董品化되기를 願하지 않는다. 時代的 感覺에 맞추어 丹粧하고 그윽한 東洋美를 誇示하는 것 그것은 漢醫學의 꿈이요, 漢醫學徒의 꿈이다.”



이 글은 1964년 11월15일에 나온 『漢方의 벗』 제2호에 나오는 洪元植 敎授(1939~2004)의 “나의 꿈”이라는 제목의 기고 글이다. 『漢方의 벗』은 1964년 8월15일에 한의계의 각종 현안과 한의학계의 연구들을 실어 대중들에게 알리려는 목적으로 출발하였다.



1호에는 보건사회부장관 吳元善, 대한한의사협회장 金定濟, 대한의학협회장 任明宰의 卷頭辭가 나오며, 이어서 申佶求, 동양의과대학장 李鍾奎, 蔡仁植, 朴性洙, 韓東錫, 李基淳, 李殷八, 姜孝信, 崔健熙 등 기라성같은 한의계의 인물들이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글이 나온 1964년 무렵 東洋醫科大學은 학교의 진퇴문제로 부심하였다. 1961년 5.16 군사혁명이 일어난 후 문교부에서 신설한 大學施設基準令은 이 대학에게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1962년 3월6일 교육에 관한 임시특례법 제3조 2항의 學校整備令에 의해 1학년생의 모집이 중지된 것이다. 게다가 같은해 3월20일자 醫療法(법률 제1035호) 개정공포로 인해 이 대학은 설립의 근거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한의계의 갖은 노력에 힘입어 1963년 12월16일 東洋醫科大學은 6년제 한의과대학으로서 정식인가를 얻어내게 되고 이에 따라 희망에 찬 시작을 열게되었다. 그러함에도 1964년에 접어들어도 학교시설의 기준미달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당시 洪元植 敎授는 東洋醫科大學에 26세의 젊은 나이로 助敎로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의 길을 걷고자 작심한 소장파 학자 洪元植 敎授는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거취로 인해 생겨나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고, 이러한 고민은 이 글에 배여나온 것이다.



그는 이 시기 세계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東洋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며, 東洋學 가운데 韓醫學이 그 실마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는 말미에 다음과 같이 자신의 꿈을 피력하고 있다.



“漢醫學은 결코 時代的 遺物로서 骨董品化되기를 願하지 않는다. 時代的 感覺에 맞추어 丹粧하고 그윽한 東洋美를 誇示하는 것 그것은 漢醫學의 꿈이요, 漢醫學徒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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