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속초23.6℃
  • 구름많음31.9℃
  • 구름많음철원30.6℃
  • 구름많음동두천31.0℃
  • 구름많음파주30.7℃
  • 구름많음대관령24.5℃
  • 구름많음춘천32.2℃
  • 구름많음백령도27.3℃
  • 맑음북강릉23.4℃
  • 맑음강릉25.5℃
  • 맑음동해25.1℃
  • 구름많음서울31.7℃
  • 구름많음인천29.5℃
  • 구름많음원주32.7℃
  • 맑음울릉도26.9℃
  • 구름많음수원31.5℃
  • 구름많음영월32.6℃
  • 구름많음충주31.8℃
  • 구름많음서산31.2℃
  • 맑음울진24.7℃
  • 흐림청주32.7℃
  • 흐림대전30.4℃
  • 구름많음추풍령28.9℃
  • 구름많음안동33.0℃
  • 구름많음상주31.8℃
  • 구름많음포항27.5℃
  • 흐림군산26.9℃
  • 구름많음대구31.3℃
  • 흐림전주29.7℃
  • 구름많음울산26.5℃
  • 구름많음창원26.9℃
  • 흐림광주27.4℃
  • 구름많음부산27.3℃
  • 구름많음통영24.7℃
  • 비목포22.7℃
  • 구름많음여수23.2℃
  • 비흑산도19.7℃
  • 흐림완도21.7℃
  • 구름많음고창28.2℃
  • 구름많음순천22.6℃
  • 흐림홍성(예)31.1℃
  • 구름많음31.1℃
  • 구름많음제주24.9℃
  • 구름많음고산22.7℃
  • 흐림성산22.5℃
  • 비서귀포22.8℃
  • 구름많음진주26.4℃
  • 흐림강화28.4℃
  • 구름많음양평30.9℃
  • 구름많음이천32.8℃
  • 구름많음인제32.0℃
  • 구름많음홍천31.0℃
  • 구름많음태백26.2℃
  • 구름많음정선군31.3℃
  • 구름많음제천31.2℃
  • 흐림보은29.4℃
  • 흐림천안30.6℃
  • 흐림보령28.4℃
  • 흐림부여29.5℃
  • 구름많음금산28.4℃
  • 흐림30.6℃
  • 흐림부안27.5℃
  • 흐림임실28.2℃
  • 구름많음정읍28.0℃
  • 흐림남원27.4℃
  • 흐림장수27.3℃
  • 구름많음고창군26.7℃
  • 구름많음영광군27.6℃
  • 구름많음김해시29.6℃
  • 흐림순창군27.3℃
  • 구름많음북창원28.4℃
  • 구름많음양산시29.9℃
  • 흐림보성군23.4℃
  • 흐림강진군23.2℃
  • 흐림장흥23.7℃
  • 흐림해남22.6℃
  • 흐림고흥23.5℃
  • 구름많음의령군28.9℃
  • 흐림함양군29.2℃
  • 흐림광양시23.9℃
  • 구름많음진도군24.0℃
  • 구름많음봉화29.5℃
  • 맑음영주31.5℃
  • 맑음문경31.8℃
  • 구름많음청송군30.0℃
  • 구름많음영덕25.2℃
  • 구름많음의성31.7℃
  • 구름많음구미31.0℃
  • 구름많음영천29.7℃
  • 구름많음경주시29.7℃
  • 구름많음거창29.0℃
  • 구름많음합천30.5℃
  • 구름많음밀양29.9℃
  • 구름많음산청27.8℃
  • 구름많음거제26.0℃
  • 흐림남해24.0℃
  • 구름많음29.3℃
기상청 제공

2026년 06월 17일 (수)

김남일의 儒醫列傳 120

김남일의 儒醫列傳 120

B0112009021736123-1.jpg

醫術로 堂上官까지 오른 儒醫



1487년 7월 12일자 『成宗實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金興守는 醫術로 지위가 堂上이 된 것이 이미 그 분수를 넘었는데, 이제는 同知가 되기도 하고 僉知가 되기도 하여 장상 줄에 끼었으므로 名器가 지극히 외람되니, 改正하여 朝廷을 높이소서.”



이것은 성종 20년 司諫院正言인 趙球가 당시 醫官出身인 金興守가 堂上官에까지 올라가 高官의 부류와 같이 된 것에 대해 지나침을 간언하는 것이었다. 醫官出身으로 堂上官에 올라간 것은 당시의 조정 분위기에서는 파격인사였기 때문이다.



金興守에 대한 기록은 성종년간에서부터 중종 때까지 나온다. 그리고 철종년간에 작성된 『太醫院先生案』에도 그에 대해 “昌原金興壽資憲知樞”라고 기록되어 있은 것으로 보아 그는 昌原金氏이며 관직이 資憲大夫 僉知中樞府事까지 올라간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의술이 뛰어나 1488년(성종 19)에 堂上醫官에 올라가게 되었고, 1489년에는 세자의 瘡疹을 치료하여 이 공적으로 말 한필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僉知中樞府事에 오르게 된 것은 1491년이다. 1494년에는 우의정이었던 許琮의 치료를 전담하였고, 그 해에 嘉善大夫로까지 오르게 되었다. 이렇듯 그는 단순히 醫官으로서만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라 높은 견문과 학식으로 당시 조정에서 실력자로 인정받은 것이었다.



1498년(연산군 4) 가을에는 尹弼商, 洪貴達, 鄭眉壽 등과 함께 『救急易解方』을 편집하고, 다음해에 언해까지 하여 출판하였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 오늘 인기기사
  • 주간 인기기사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