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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7일 (수)

김남일의 儒醫列傳 108

김남일의 儒醫列傳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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鍼醫로서 이름을 떨친 儒醫



‘備邊司謄錄’의 숙종 15년 기록인 1689년 윤 3월12일에 權聖徵의 鍼術이 정묘하다고 하니 軍職에 붙여 本院에 소속시키기를 청하는 內醫院의 청원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여기에서는 또 權聖徵이라는 인물이 누대에 걸쳐 鍼을 활용한 집안 출신으로서 鍼에 뛰어난 인물로 기술하고 있다.



權聖徵의 생몰연대를 밝혀주는 구체적 기록이 없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위의 기록은 그의 젊은 시절의 기록이기에 그가 젊은 시절부터 鍼醫로서 이름을 떨쳤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렇듯 權聖徵은 젊은 시절부터 鍼으로 이름이 난 인물이었지만 관직이 높아지면서 시련이 시작되었다. 각종 의학적 책임에 대해 御醫로서 총체적 책임을 지워 각종 처벌을 감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처벌 후에 그의 능력과 공적이 인정되어 여러 차례 복권되게 되었다.



그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 ‘備邊司謄錄’, ‘承政院日記’ 등의 자료를 분석해 보면 그의 인생은 수많은 질곡이 있었다. 숙종 27년(1701) 숙종비 민씨가 죽게 되자 御醫로서 죄를 입어 관직이 박탈되었고, 1710년에는 왕의 치료를 잘못하여 처벌되었다.



그럼에도 1714년에는 공을 인정받아 관직이 올라가게 되었다. 그의 치료에 대한 공로는 크게 인정되어 이후로 숙종과 경종의 치료를 담당하게 되었다. 영조 때에 이르게 되어서는 孝章世子의 치료에 책임을 지고 변방에 유배되었다가 영조 6년(1730) 용서가 되어 다시 등용되게 되었다.



이렇듯 鍼醫로서 수대에 걸쳐 궁중에서 봉직하면서 인생의 우여곡절 속에서도 당대의 名醫로 이름을 떨친 權聖徵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기억되어야 할 儒醫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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