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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7일 (수)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20)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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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1년 후인 1946년 ‘조선일보’ 4월17일자에는 눈에 띠는 사설이 게재되었다. “漢醫學再檢討”라는 제목의 이 사설은 일제시대 전시기 동안 일제에 의해 자행된 한의학 말살정책으로 거의 사멸의 상황에 처해있던 전통의학 한의학을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글이다. 이 사설이 나오게 된 데에는 당시 활동하고 있었던 2000여 한의사들이 건의문을 작성하여 군정당국에 건의하였기 때문이다. 사설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朝鮮漢醫士會는 궐기하였다. 재남조선 2000여명 漢方醫의 총의로써 (1)漢醫士로 명칭 개정 (2)限地 限年制 철폐 (3)공인단체 승인 (4)국립전문대학 설립 (5)公營病院에 漢方科 倂置 (6)약초 재배 장려 (7)漢醫士 국가시험제 등 7項目을 當局에 건의하고 그 실현을 기하게 되었다 한다. 건의내용을 一瞥컨대 그 어느 것이나 적절치 않은 것이 없고 오히려 晩時之嘆이 없지 않다.



듣건대 同會에서는 건의에 止치 않고 보건에 遺漏가 없게 하기 위하여 수종의 사업을 계획 중이라 하니 적극적 활동을 비는 동시 軍政當局도 軍政實施 이후 특히 保健厚生方面에 힘쓴 바 많은 터이니 4000여년의 장구한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공헌이 많았던 漢醫學에도 지도와 시설을 不惜키를 바라는 터이다.



생각건대 西洋醫學이 수입되기 반세기전까지는 漢方醫뿐이었고 宣敎師側에서 朝鮮사람에게 주로 외과적 시술로 대중의 호평을 전하기도 하였으니 오랜 전통과 고집에서 洋醫에 대한 신뢰는 그리 크다 하기 어려운 것이 있었다.



특히 내과부문에 있어서는 漢藥治療가 효율이 많은 때문에 漢方은 압박과 천대를 받으면서도 지금도 엄연한 존재와 번창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倭賊治下 朝鮮에 洋醫가 많이 퍼지었지만 그 목적이 朝鮮사람의 보건을 위한다기보다 저희들의 치료를 위한 데서 나온 것인 만큼 저희들이 싫어하는 漢醫를 우대할 리 만무하고 漢醫學을 비과학적이라 하여 맹목적으로 탄압을 내려 왔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말기에 至하여 西洋藥劑의 수입이 두절되자 새삼스럽게 漢方醫學에 대한 인식이 커져서 약초 재배, 大學에 漢方課 설치 등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방방곡곡에 퍼진 漢醫로 朝鮮사람의 의료기관으로서 그 기능을 일층 발휘했었고 都市 역시 약초 부족의 歎은 있었을 망정 洋醫에 대한 의존도를 능가하는 실정이었다. 해방과 아울러 漢方醫도 오랜 屈辱과 忍從에서 벗어나 정당한 요구와 주장을 하게 된 것을 기뻐하는 바이어니와 이 기회에 있어 일언코자 하는 것은 漢方醫 자신의 자각을 촉하는 동시에 그 연구에 일층 박차를 가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醫는 仁이라는 말을 떠나서라도 좀더 대중을 위한 醫療報國에 헌신함이 있어야 한다. ‘진단은 洋醫 치료는 漢藥’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이것은 진단술의 미숙과 불철저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도 新生面을 개척하여 단순한 開業醫의 입장을 떠나서 不絶한 연마와 성의있는 시술로 일층 대중을 파악함이 있어야 하겠다는 점을 강조해 둔다.”



이 짤막한 사설은 일제시대 한의학과 한의사들이 어떤 입장에 처했었는가를 보여주는 간결한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글이다. 첫째, 일제시대에 한의학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높은 치료술로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 일제가 서양의학을 주류의학으로 세운 것이 조선인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선 거류 일본인의 건강보전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라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셋째, ‘진단은 洋醫 치료는 漢藥’이라는 洋診漢治(洋診韓治)의 방향에 대해 반대하고 한의학 본연의 발전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넷째, 태평양 전쟁 등으로 인하여 서양의학보다 한의학의 수요가 더 높아졌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때 한의사들에 의해 제기된 주장들은 여전히 현재에도 해결이 요구되는 사안들로서 문제를 환기할 필요가 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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