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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7일 (수)

김남일의 儒醫列傳 107

김남일의 儒醫列傳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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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학식으로 당대의 칭송을 받은 儒醫



1866년에 나온 洪直弼의 문집인 ‘梅山集’에는 영조에서부터 순조년간에 궁중에서 활동한 한명의 御醫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丁希泰가 바로 그이다.



‘梅山集’에는 15인의 인물의 전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丁希泰가 醫家로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丁希泰는 정조부터 순조년간에 궁중에서 활동한 醫家로서 학식과 인품이 뛰어나 당대에 주목을 받는 인물이었다. 항상 독서를 좋아하였으며 특히 易學에 정진하였는데, 그가 죽은 후에 士大夫들이 매우 애석하게 여겼다고 한다.



丁希泰는 氣血, 經絡, 骨髓, 陰陽, 表裏를 근본으로 병의 근원을 파악하였는데, 脈理에 특히 정통하여 진단 후에 약물을 사용하면 큰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성격이 강직하여 권력에 아부하지 않았고, 이러한 성격으로 인하여 정조 때의 首醫인 康命吉과 부딪치기도 하였다. ‘承政院日記’와 ‘日省錄’ 등 역사기록에도 丁希泰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丁希泰는 중심에서 역할을 해내는 御醫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충실하게 入直하는 역할을 해내는 인물로 그려내고 있고, 그의 공적으로 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의 의술에 대한 평가를 이야기할 때도 “精明하다”는 평가를 하는 장면이 ‘承政院日記’에 기록되어 있다.



丁希泰는 당시에 뛰어난 학식이 있었던 인물로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강직하게 세상을 살다간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환자를 진료함에도 老少, 貧賤을 가리지 않았고, 명예를 쫓지 않았다. ‘梅山集’의 저자 洪直弼은 丁希泰를 높이 평가하여 “良醫”라고 칭송하고 있다. ‘醫藥同參先生案’에는 “禮山丁希泰士賢丁巳 通政”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으로 볼 때 그는 醫藥同參으로 활동하였으며, 1797년에 정 3품인 通政大夫까지 관직이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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