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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6일 (화)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2)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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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南 一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수년전 필자는 국제학술대회 공식발표석상에서 日本의 어떤 醫史學者가 다음과 같이 발언하는 것을 듣고 황당해 했던 기억이 있다.



“일본에 보관되어 있는 ‘醫方類聚’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어디에도 조선에서 만들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 그의 발언이었다. 이 발언을 단순히 그 학자의 농담 반인 개인적인 견해로만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좀 더 곰곰이 되씹어보면 일본의 한국 한의학에 대한 입장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착잡하였던 기억이 난다.



조선은 1875년 일어난 운양호 사건을 계기로 하여 이듬해에 일본과 丙子修好條約을 체결하게 되는데, 이때 日本은 조약체결을 기념해서 예물로 ‘醫方類聚’를 가지고 온다. 이 때 가지고 온 ‘醫方類聚’는 壬辰倭亂 때 적장 加藤淸正이 1592년 전쟁 초기에 漢陽에 쳐들어와 약탈하여 日本의 多紀家에서 보존하고 있었던 것을 근세에 喜多村直寬이 복간한 聚珍版인 것이다(안상우의 ‘『醫方類聚』에 대한 의사학적 연구’, 2000, 경희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참조함).



임진왜란 때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자국이 문화적으로 열등하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조선의 문화재와 서적들을 약탈해가고, 학자들과 도공들을 끌고가서 자신들의 발전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이 ‘醫方類聚’를 약탈해가서 이를 소중히 여기고 다시 간행한 사실은 이들이 얼마나 조선의 문화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는가를 나타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강제로 문호를 개방시키는 조약을 체결하면서 일본에서 再刊한 ‘醫方類聚’ 2帙을 예물로 가지고 온 것이다. 이것은 잃어버린 물건을 원본은 아니지만 재간본이나마 주인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갸륵한 마음의 발로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더 근본적으로 이들이 조선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야욕에 비추어 본다면 반드시 그렇게만 볼 수 없는 구석이 있다.



일본에서는 1874년에 이미 西鄕隆盛이 征韓論을 태정대신 三條實美에게 제출하여 조선에 대한 야심이 커지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운양호 사건은 이러한 야욕에 따라 터뜨린 것이었다. 조선에서는 ‘醫方類聚’가 귀중한 醫書이지만, 그 원본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약탈되고 인몰되어 그 실체를 찾기 어려운 상태였다. 일본이 丙子修好條約의 예물로서 ‘醫方類聚’ 재간본을 가지고 온 것은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고도의 제국주의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일본은 1854년 개항한 이후로 明治維新을 거쳐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사회를 지향하여 선진국의 대열로 진입하였다고 자인하면서 그동안 조선에 가졌던 문화적 열등의식을 청산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제국주의 국가의 상징인 약소국에 대한 침략과 약탈 그리고 피정복민에 대한 은전(恩典)이라는 공식을 그대로 적용시키기에 ‘醫方類聚’는 더 없이 좋은 본보기라고 계산하였던 것이다.



약탈해간 原本은 그대로 일본 궁내성 도서관에 보존하고 그 再刊本을 조선에게 선물로 줌으로서 침탈국의 문화재를 약탈해간 침략국의 힘을 상기시키면서 이를 잘 보존하여 다시 돌려준다는 퍼포먼스를 하여 일본이 너희보다 열등했던 과거의 일본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너희보다 우월한 선진국 일본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醫方類聚’의 반환문제는 프랑스의 외규장각 도서 반환문제보다 높은 수준에서 다루어져야 할 시급한 문제라고 본다. 이를 위해 국가적인 기구가 구성되어 체계적으로 접근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일본이 이때 예물로 가지고 온 ‘醫方類聚’는 현재 연세대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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