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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6일 (화)

김남일의 儒醫列傳 85

김남일의 儒醫列傳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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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치료를 위해 醫術을 연마한 右議政



1534년에 內醫院提調가 “安玹은 藥理에 精하다. 전에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金孫萬應膏를 만들었는데 惡瘡의 毒을 없애고 膿을 제거하는데 효과가 좋다”고 말한 기록이 있다.



같은 해에는 王의 병세가 점점 심해질 때 兵曺參議 安玹이 천거되어 內醫院에서 근무하면서 治療에 同參케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 언급된 安玹은 1521년(중종 1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가 된 후에 승정원주서·병조정랑을 거쳐 1533년에는 사헌부지평에 올라간 당대의 실력 있는 젊은이였다. 그가 1534년 궁중에서 여러 차례 천거되어 의학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이렇듯 그의 인생에서 하나의 전기였다.



1541년 陳慰使로 明나라에 다녀와서 우승지가 되었고 중종이 말년에 숙환으로 고생할 때에는 승지로서 의약에 밝아 항상 시종하였다. 명종이 즉위하자 이조참의에 제수되었고, 이후에 전라도 관찰사·경상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면서 청렴결백한 인물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1558년에는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하여 관직의 최고점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특히 형제간의 우의가 좋기로 소문이 났었고, 의학에 뛰어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공사에 공변되고 검소하여 집안이 청빈하였다.



그가 의학 연구에 힘쓴 것은 순전히 활인을 통해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기에 이를 알아본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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