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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7일 (수)

김남일의 儒醫列傳 72

김남일의 儒醫列傳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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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文으로 이름을 떨친 풍류가



성공하는 사람의 특징을 꼽는다면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말한다. 자신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이를 비관하지 않고 노력하는 자만이 성공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에 공통적 진리인 것이다. 고려 중기 한 시대를 풍미했던 李仁老도 그러한 사람이 아닌가 한다.



그의 집안은 고려 전기의 3대 가문의 하나였던 경원이씨였고 여러 대에 걸쳐서 문벌을 형성해 왔지만 일찍 부모를 여의고 의지할 데 없는 고아가 되고 말았다. 이에 華嚴僧統인 寥一이 거두어주어 공부시켜 유교경전과 제자백가를 두루 공부하게 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여 시와 글씨로 이름이 났다. 그러나 19세 때 무신의 난으로 佛家에 귀의하여 피신하기도 하였다. 이후 25세에 太學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29세에 진사과에 장원급제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文克謙은 그의 능력을 눈여겨 보고 翰林院에서 詞疏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그는 翰林院에서 14년간 詔勅을 지으면서 여가로 詩詞를 지어 詩文으로 이름을 떨쳤다. 당시 林椿, 吳世才 등과 ‘竹林高會’를 이루어 활동하면서 詩作을 하였다.



그의 저술로 ‘銀臺集’, ‘雙明齋集’, ‘破閑集’ 등이 있는데, 현재 ‘破閑集’만 전해지고 있다. 이 ‘破閑集’에는 養生과 本草에 대한 내용이 다수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평소에 醫藥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당대 최고의 儒學者로서 儒家의 덕목인 爲民을 위해 기초적인 의학지식을 겸비한 것은 당시 풍조에서 일반적인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李仁老의 醫學에 대한 연구는 전혀 없기에 앞으로의 연구가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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