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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3일 (토)

김남일의 儒醫列傳 39

김남일의 儒醫列傳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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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출신으로 醫書編纂의 한길로





몇 일전 우연히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1942년경 杏林書院에서 간행된 醫書宣傳用 팜플릿인 ‘醫書總目錄’에서 다음과 같은 ‘三方撮要’라는 의서의 선전문구를 발견하였다.



“『三方撮要』(十二卷十二冊, 孝宗朝命撰)

本書는 孝宗이 尤翁宋時烈을 命하샤 八域內의 名醫를 朝堂에 招致하시고 各自의 經驗한 鍼灸藥等의 百千萬言을 講究蒐輯하신 絶世의 珍本으로서 三方이라 命名하신 것은 每病證마다 病原及治療法을 논한 것에 이여. ①處方 ②鍼灸 ③單品(鄕藥療法)을 無漏詳述하엿슴으로써이라 한다. 此書를 編成하신 孝宗의 宸慮는 恒時北伐(北京征伐)의 大志를 품으시고 一朝有事之秋를 當하야 第一에 處方藥材의 輸入이 杜絶되더라도 第二의 鍼灸療法과 第三의 單品으로 넉넉히 國民衛生에 支障이 업슬것을 保障코저 하심이라 한다. 그런데 本書의 稿는 已成하엿스나 및처 印行을 못하옵시고 千古의 恨을 품으신 그대로 仙馭가 賓天하셧슴으로 깊이 秘苑에 深藏되여 世에서 아는 者가 드물엇섯는데 距今三十餘年前에 宮中某要人의 손을 것처 九重深處를 나와 某藏書家의 厚誼로 本院에서 圖得케 된 것이니 可謂千古의 秘籍이오 海內의 孤本이라 하겠다. (秘藏古版醫書叢刊第三輯으로 本院에서 印行豫定)”



이것은 효종의 명령에 따라 宋時烈이 醫書를 편찬한 기록으로 그 실물이 현존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분명한 증거이다. 그러나 이 책이 이후에 간행되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아마도 이때가 태평양전쟁기간이었고 해방 후 혼란스러운 사회상과 이어지는 6.25전쟁 등은 이 책의 출판을 불가능하게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宋時烈은 1633년 생원시에 장원급제한 후로 출세가도를 달려 효종의 북벌책을 주도하기도 하였고 효종이 서거한 다음에 慈懿大妃의 服喪로 일어난 제1차 禮訟에서 승리하여 현종이 즉위한 다음에 숭록대부에 특진되고 이조판서에 판의금부사를 겸임하였다. 1674년 仁宣王后가 죽어 제기된 제2차 禮訟에서 南人에게 패배하여 실각당했다. 이후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으로 남인들이 실각하고 서인들이 재집권하여 노론의 영수가 되었다.

이렇듯 儒學者로서 정치의 최일선에 있었던 宋時烈이 ‘三方撮要’라는 醫書의 著者로 ①處方 ②鍼灸 ③單品(鄕藥療法)을 수집하여 정리하였다는 것은 그가 의학을 다년간 연구하였던 경력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그는 동시기에 의학에 뛰어났던 宋浚吉과 친척지간으로 李珥라는 같은 선생밑에서 동문수학하면서 의학적 학식을 쌓아나간 것이다. 이 책이 간행된 효종년간은 북벌론이 대두되어 민족자존심이 가장 극에 달한 시기로 이 시기에 완성된 ‘三方撮要’는 아마도 민족전통의학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宋時烈의 열정을 느끼게 하는 자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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