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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3일 (토)

김남일의 儒醫列傳 28

김남일의 儒醫列傳 28

金正國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醫人으로, 자가 國弼, 호가 思齋이다. 그의 아버지가 예빈시참봉을 역임하였고 어머니가 군수의 딸이었다는 것만 보아도 그의 집안은 문신의 집안이었다.



그는 사림파의 거두 김굉필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2세에 부모님을 여의고 이모부 댁에서 자라면서 1509년에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벼슬의 길에 올랐다. 1518년에는 황해도관찰사, 1537년에는 전라도관찰사가 되었고, 1540년에는 예조, 병조, 형조참판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시문집인 ‘思齋集’과 ‘性理大全節要’, ‘歷代授受承統立圖’, ‘村家救急方’ 등이 있다.



金正國은 金安國의 동생이다. 김정국은 1517년 기묘년에 파직되어 高陽 시골집에 돌아와서 號를 恩休라고 지었다. 두 형제는 마음이 너그럽고 학문이 깊어 당시 사람들은 이들 두 형제를 세상에 흔하지 않은 사람[二難]이라 하였다고 한다. 형인 金安國은 일찍이 백성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에 도움을 줄 ‘瘡疹方’ 등의 醫書들을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였고, 1525년에는 여러 醫書 내용 가운데 이용하기 쉬운 처방들과 상비약들을 중심으로 ‘分門瘟疫易解方’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러한 형의 뜻에 동감하고 의학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드디어 말년인 1538년에는 ‘村家救急方’이라는 구급의서를 편찬하여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노력의 결실을 맺게 된다. 이 책은 많은 처방들 가운데 민간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처방과 향촌의 경험 많은 노인들이 효력을 보았던 경험방들을 채집하여 만든 것이다.



이 책은 그가 高陽 芒洞의 村家에 있을 때 지은 것을 전라도 감사로 있을 때 南原에서 간행한 것이다. 앞부분에는 本草部가 있어 약재 200여종을 소개하고 있고, 그 다음으로 大方科, 婦人門, 小兒門의 三部로 나뉘어져 여러가지 치법을 기록하고 있다. 大方科에서는 평상시에 늘 볼 수 있는 병증 70여종에 대한 치료법을 기록하였고, 婦人門에서는 질병 24종, 小兒門에서는 24병증의 치료법을 설명하고 마지막에는 溺水, 自縊, 中毒 등의 구급치료법을 부기하였다.



그는 이러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이 책이 백성들을 건강한 삶으로 이끄는 데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 책의 간행을 서둘렀는데, 이것은 그가 성리학자이면서 정치가로서 이 나라 백성들에게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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