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속초24.9℃
  • 맑음17.6℃
  • 맑음철원17.4℃
  • 맑음동두천19.2℃
  • 맑음파주17.8℃
  • 맑음대관령19.1℃
  • 맑음춘천18.0℃
  • 구름많음백령도18.6℃
  • 맑음북강릉25.0℃
  • 맑음강릉25.4℃
  • 맑음동해26.2℃
  • 맑음서울21.1℃
  • 맑음인천20.8℃
  • 맑음원주18.8℃
  • 맑음울릉도23.9℃
  • 맑음수원22.3℃
  • 맑음영월17.5℃
  • 맑음충주19.7℃
  • 맑음서산21.9℃
  • 맑음울진24.0℃
  • 맑음청주21.3℃
  • 맑음대전20.5℃
  • 맑음추풍령19.8℃
  • 연무안동20.4℃
  • 맑음상주20.0℃
  • 맑음포항23.4℃
  • 맑음군산20.4℃
  • 맑음대구22.9℃
  • 맑음전주22.6℃
  • 맑음울산23.7℃
  • 맑음창원22.9℃
  • 맑음광주21.3℃
  • 맑음부산24.0℃
  • 맑음통영20.9℃
  • 맑음목포20.9℃
  • 맑음여수20.3℃
  • 맑음흑산도19.9℃
  • 구름많음완도22.0℃
  • 맑음고창20.8℃
  • 맑음순천19.0℃
  • 맑음홍성(예)20.2℃
  • 맑음19.1℃
  • 맑음제주23.3℃
  • 구름많음고산22.7℃
  • 맑음성산22.7℃
  • 맑음서귀포24.7℃
  • 맑음진주20.8℃
  • 맑음강화19.6℃
  • 맑음양평18.8℃
  • 맑음이천19.6℃
  • 맑음인제16.9℃
  • 맑음홍천17.6℃
  • 맑음태백21.4℃
  • 맑음정선군15.2℃
  • 맑음제천18.0℃
  • 맑음보은18.0℃
  • 맑음천안19.2℃
  • 맑음보령22.4℃
  • 맑음부여18.1℃
  • 맑음금산18.1℃
  • 맑음19.6℃
  • 맑음부안21.0℃
  • 맑음임실18.4℃
  • 맑음정읍21.8℃
  • 맑음남원19.8℃
  • 맑음장수16.9℃
  • 맑음고창군20.8℃
  • 맑음영광군21.5℃
  • 맑음김해시23.0℃
  • 맑음순창군19.7℃
  • 맑음북창원23.5℃
  • 맑음양산시24.1℃
  • 맑음보성군20.1℃
  • 맑음강진군19.7℃
  • 맑음장흥20.5℃
  • 구름많음해남22.2℃
  • 맑음고흥21.0℃
  • 맑음의령군21.3℃
  • 맑음함양군19.1℃
  • 맑음광양시21.5℃
  • 구름많음진도군21.9℃
  • 맑음봉화18.2℃
  • 맑음영주20.1℃
  • 맑음문경20.7℃
  • 맑음청송군19.7℃
  • 맑음영덕24.4℃
  • 맑음의성20.5℃
  • 맑음구미21.8℃
  • 맑음영천21.1℃
  • 맑음경주시22.7℃
  • 맑음거창18.7℃
  • 맑음합천19.9℃
  • 맑음밀양21.0℃
  • 맑음산청19.2℃
  • 맑음거제22.1℃
  • 맑음남해21.0℃
  • 맑음23.4℃
기상청 제공

2026년 06월 13일 (토)

김남일의 儒醫列傳 13

김남일의 儒醫列傳 13

B0112006042138823-1.jpg

金南一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조선 최고 전염병치료전문 儒醫



조선시대의 학자들은 기본적으로 醫學에 조예가 깊었다. 당시 통치이념이었던 성리학은 조선 식자층들의 관념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특히 의학이 성리학적 이념상 아버지인 군주가 자식인 백성들을 건강한 삶으로 이끌어주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도구라고 생각하였기에 널리 권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金安國은 본래 趙光祖, 奇遵 등과 함께 金宏弼의 문인이었으므로 사림파의 선도자였다. 그는 1501년에 생진과에 합격하고 2년 후에는 별시문과에 합격하여 승정원의 박사, 부수찬, 부교리 등을 역임하면서 관료로서의 길을 달렸다. 그가 일반 백성들의 경제생활과 교양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실천적인 성리학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것은 1517년 경상도관찰사로 파견되면서부터이다.



그는 이 때에 각 향교에 ‘小學’을 권하고, ‘農書諺解’, ‘蠶書諺解’, ‘二倫行實圖諺解’, ‘呂氏鄕約諺解’, ‘正俗諺解’ 등 백성들의 경제생활과 교양을 위한 한글판 언해서를 출간하고, 백성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에 도움을 줄 ‘벽온방’, ‘瘡疹方’ 등의 醫書들을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였다. 비록 그가 기묘사화로 파직되어 잠시 경기도 이천으로 가서 후진양성에 힘쓰기도 하였지만, 1532년에 다시 등용되어 중앙 요직을 두루 섭렵하였다.



그는 1542년에 함경도에서 瘟疫이 크게 유행하자 왕명을 받아 朴世擧, 文世璉, 柳之蕃, 李倜, 鄭樞, 洪世河 등과 함께 瘟疫에 대해 나온 여러 醫書 내용 가운데 이용하기 쉬운 처방들과 상비약들을 중심으로 ‘分門瘟疫易解方’을 편찬하였다. ‘分門瘟疫易解方’은 1525년에 편찬된 ‘簡易·瘟方’의 60여개의 처방에 40여개의 처방을 첨가하고 이를 鎭禳, 不相傳染, 服藥, 勞服 등 4門으로 나누고, 여기에 藥名과 採取法을 첨가하고 언해를 붙여 간행한 것이다.



이렇듯 金安國은 당시 사회문제였던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해 醫書를 편찬하고 이를 보급하는 데에 힘썼다. ‘分門瘟疫易解方’은 조선중기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해 조정에서 간행하여 전국으로 유포시킨 의서이다. 한글로 언해를 단 것은 일반인들이 쉽게 응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이것은 전염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것이 매우 실제적일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醫師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만만치 않은 요즘 시기에 金安國과 같은 儒醫가 했던 전염병 퇴치를 위한 노력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할 것이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 오늘 인기기사
  • 주간 인기기사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