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연구개발사업 평가위원의 자세란…”
개인 의견·건의사항 등 평가자란 상세 기록
국가 R&D 융합과학 대세… 전문성 향상 필요
“수고하셨습니다.” 평가위원장은 박수를 치며 수심자를 향에 인사를 하였다. 다른 평가위원들도 자연스럽게 함께 박수를 치고 있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된 평가는 마치 자문위원 활동 같았다.
올 가을 모 기관의 평가에서 필자가 겪은 일화이다. 과기부 유관기관인 한국과학재단이 있는 대전에 가서 위원들과 함께하는 평가회의를 시작으로 교육부, 환경부, 산자부 등의 유관기관 평가를 다녀보았지만 그날 평가는 참으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날의 분위기를 주도했던 위원장님은 필자가 익히 알고 있던 원로 교수님으로 박학다식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면서도 상대를 존중하고 위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어 지적을 받는 수심자들이 오히려 감사의 뜻을 표할 정도였다.
당일 우리 평가팀 말고 서너 개의 다른 평가위원회가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 팀의 진행을 주관하던 기관 직원은 평가를 종료할 즈음 수심자들이 평가를 받고 나갈 때 평가위원들이 박수를 치며 격려하는 모습에 대해 언급하며 건의할 계획임을 밝혔다.
일반적으로 규모가 큰 과제의 경우 1차는 서면평가로, 2차는 발표평가로 이루어진다. 2차에는 패널들을 위촉하여 질의응답을 하게 된다. 패널선정의 기준이 엄격하여 그 공정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패널은 해당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지만 요즈음 융합과학이 대세인 만큼 공학, 생물학, 물리학, 의학 등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언젠가 의료기기 분야의 패널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공학 분야의 문외한인 필자로서는 질문하기가 조심스러웠다. “제가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어서 질문 드리는데…”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 수심자가 나가고 나자 기관 직원이 슬며시 다가와 “전문가가 아니라는 말씀은 삼가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부탁하였다. 이유인 즉 선정에 떨어진 수심자들이 전문가도 아닌 사람을 패널로 위촉했다는 불평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과제를 신규 선정할 때 이루어지는 평가가 아닌, 단계평가나 최종평가도 패널평가를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단계평가에 참가한 패널 중에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과제가 선정되었는가 에서부터 과제수행 기관이나 연구 방향 등의 원초적인 문제까지 심각하게 분석하고 방향을 바로잡고자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 해당사업의 예산 확보과정, 과제공모 시의 기술제안요청서 (RFP : Request For Proposal), 선정 당시 과제 지원경쟁률 등 우리가 고려해야할 것들이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다.
단계평가 위원으로서 아무리 평가과제에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된다 해도 중간에서 그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오히려 분위기 모르고 헛발질하는 격이 되거나 그 헛발질에 본인이나 본인의 연구 분야가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차라리 자신의 의견과 건의사항을 평가자 의견란에 상세히 적어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선에서 참고 넘기는 것이 좋다고 본다.
과제 선정을 전후하여 수행할 기관을 방문하여 현장평가를 하기도 하는데, 과제 수행기관의 시설 등을 점검한다는 의미보다는, 주로 해당 기관장의 지원의지 등을 확인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유도하기 위한 협력적 압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 대학의 설립자이자 총장이셨던 분의 전공은 교육학인데, 현장평가 시 교육학 전공 총장님께서 현장평가 위원들 앞에서 전문적인 공학 용어를 사용하여 과제의 목적과 연구방법 등을 설명하며 국가지원을 역설한 사례는 많은 평가위원 교수들에게 감동적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
현장평가 위원으로 위촉될 경우, 시간의 손실이 크다는 문제점은 있지만 방문 대학의 세부적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므로 참여하는 것을 적극 고려하였으면 한다. 현장평가에서 선정과제를 탈락시키는 경우는 아주 희박하므로 조금은 느긋하게 임하는 것이 좋겠다.
평가위원으로 활동할 경우, 우리의 자세를 제 경험을 토대로 간략히 소개해보았다. 필자와 다른 경험과 의견을 지닌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쌓일수록 평가자와 수심자가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 도닥여 주고 이끌어주는 관계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