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속초28.1℃
  • 맑음28.4℃
  • 맑음철원27.7℃
  • 맑음동두천29.6℃
  • 맑음파주29.3℃
  • 맑음대관령24.6℃
  • 맑음춘천29.3℃
  • 구름많음백령도20.1℃
  • 맑음북강릉28.7℃
  • 맑음강릉29.6℃
  • 맑음동해26.9℃
  • 맑음서울30.7℃
  • 맑음인천26.8℃
  • 맑음원주30.0℃
  • 맑음울릉도26.3℃
  • 맑음수원29.6℃
  • 맑음영월30.4℃
  • 맑음충주30.1℃
  • 맑음서산28.9℃
  • 맑음울진24.7℃
  • 맑음청주30.4℃
  • 맑음대전30.5℃
  • 맑음추풍령29.2℃
  • 맑음안동30.7℃
  • 맑음상주32.0℃
  • 맑음포항29.7℃
  • 맑음군산26.8℃
  • 맑음대구30.8℃
  • 맑음전주31.5℃
  • 맑음울산27.8℃
  • 맑음창원27.6℃
  • 맑음광주30.0℃
  • 맑음부산25.1℃
  • 맑음통영25.0℃
  • 구름많음목포27.3℃
  • 맑음여수26.1℃
  • 구름많음흑산도22.2℃
  • 구름많음완도29.0℃
  • 맑음고창29.8℃
  • 맑음순천27.8℃
  • 맑음홍성(예)30.6℃
  • 맑음29.6℃
  • 흐림제주25.6℃
  • 흐림고산24.1℃
  • 흐림성산25.1℃
  • 흐림서귀포26.5℃
  • 맑음진주28.0℃
  • 맑음강화26.0℃
  • 맑음양평28.7℃
  • 맑음이천29.6℃
  • 맑음인제28.4℃
  • 맑음홍천30.3℃
  • 구름많음태백26.4℃
  • 맑음정선군29.7℃
  • 맑음제천28.0℃
  • 맑음보은28.9℃
  • 맑음천안29.2℃
  • 맑음보령26.5℃
  • 맑음부여29.9℃
  • 맑음금산31.2℃
  • 맑음29.4℃
  • 맑음부안28.2℃
  • 맑음임실29.4℃
  • 맑음정읍31.0℃
  • 맑음남원30.1℃
  • 맑음장수28.4℃
  • 맑음고창군29.1℃
  • 맑음영광군28.9℃
  • 맑음김해시28.2℃
  • 맑음순창군30.1℃
  • 맑음북창원30.9℃
  • 맑음양산시30.3℃
  • 구름많음보성군27.4℃
  • 구름많음강진군28.0℃
  • 맑음장흥26.5℃
  • 구름많음해남28.2℃
  • 구름많음고흥27.2℃
  • 맑음의령군30.2℃
  • 맑음함양군30.3℃
  • 맑음광양시29.9℃
  • 구름많음진도군25.2℃
  • 맑음봉화28.4℃
  • 맑음영주29.3℃
  • 맑음문경29.7℃
  • 맑음청송군31.5℃
  • 맑음영덕27.6℃
  • 맑음의성30.8℃
  • 맑음구미31.5℃
  • 맑음영천30.8℃
  • 맑음경주시30.8℃
  • 맑음거창29.9℃
  • 맑음합천30.3℃
  • 맑음밀양32.3℃
  • 맑음산청29.7℃
  • 맑음거제26.9℃
  • 맑음남해27.4℃
  • 맑음27.8℃
기상청 제공

2026년 06월 13일 (토)

한의학 개척자 6 金 定 濟 (1910~1988)

한의학 개척자 6 金 定 濟 (1910~1988)

B0072006062750568-1.jpg

김정제 선생의 호는 雲溪다. 1910년 8월16일 황해도 신계군 마서면 갈현리 623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운계선생은 어릴 때 어머니께서 병환이 있어 건강이 좋지 못하여 한약을 써보고 양의에게도 진료해 보았으나 양의사는 어쩐지 신통치 못한 것 같아서 어머니 병환을 치료하자면 내가 직접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 한의학에 입문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17세 때에 황해도 송림시에 동양의학원을 찾아가 황해도 평안도에서 명의로 알려진 金泰希 선생에게서 한의학을 전수받고 의생시험에 합격하여 한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황해도 사리원시에서 한의원을 개설하여 진료중 그의 스승인 金泰希 선생이 은퇴하면서 경영하던 성제국한의원의 운영을 인계받았다. 이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남쪽 군산으로 피난을 가서 진료를 하였다.

1956년에 서울로 상경하여 가장 번화한 종로 네거리 옛날 신신백화점 건너편에 聖濟局漢醫院을 개설하였는데 당시 선생의 나이는 52세였다.



운계 선생님을 처음 만나 뵙게 된 것은 필자가 서울 성동구에서 개원하고 있을 때다. 1962~1963년도에 서울시한의사회 대의원, 대한한의사협회 대의원으로 청년 한의사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는 전화기가 아주 귀하였다. 운계 선생님으로부터 인편으로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성제국한의원으로 방문하여 처음으로 만나게 됐다.

첫 인상은 성품이 온화하여 인자하고, 자상하시다는 것을 느꼈다. 미소로 친절하고, 반갑게 맞아 주신 것이 인상에 남는다. 그때에 기독교신자인 것을 알았다.



1963년 11월6일에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소재 동양의약대학 강당에서 제8회 임시 대의원총회의 대한한의사협회 회장 보선에서 제6대 회장으로 김정제 선생이 당선됐다. 임시총회에서는 전형위원의 공천이나 입후보자 없이 대의원들의 자유 투표에 의해 최다 득표로 회장에 선출됐다.



5.16직후 한의사 배출교육기관의 폐쇄로 한의학 역사 중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정부는 대학의 시설기준 미달을 이유로 각종 학교령에 의한 東洋醫藥學校로 강등시켜 졸업생들이 한의사국가고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조차 박탈, 일대 위기에 직면했다.

한의계가 가장 어려울 때 대한한의사협회장인 김정제 선생은 이를 대처하기 위해 군정요로와 절충과 건의로써 의료법 개정을 추진하여 종전의 4년제 동양의약학교를 6년제 東洋醫科大學으로 개칭하고 예과2년, 본과4년의 6년제 醫科大學으로 1964년부터 신입생을 모집하게 되었다.



동양의과대학이 경희대학교와 통폐합되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현재의 6년제 한의과대학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김정제 회장의 숨은 공로가 있었던 것이다.



동양의약대학이 경희대학교로 합병되자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의 교수로 취임하여 후학들의 교육에 힘쓰기 시작하였다. 1977년에는 의과대학 한의학과가 한의과대학으로 개편되면서 초대학장에 취임하였고, 부속한방병원장도 겸임하였다.



1973년에는 사재를 들여 동양의학연구원이라는 재단법인을 설립하여 초대 이사장에 취임, 한의학 연구에 이바지했다. 창립발족식은 1973년 9월26일 정오 서울 워커힐에서 국내외 귀빈과 의료계 인사와 제3차 세계침구학술대회 참석자 전원을 초청하여 성대하게 거행했다.



1975년에는 계간 학술지 東洋醫學의 발행인으로 2006년까지 발간되고 있으며 동양의학 1975년 11월 창간호부터 1998년 9월까지 10권으로 합본제작도 하였다. 그동안 발행인은 김정제 이사장, 김병운 이사장, 현재는 김덕호 이사장(인애가 장수한방병원장)으로 이어오고 있다.



올해에 김정제 선생님의 유고집인 ‘동의임상요람’을 새롭게 증보하여 ‘신증보 동의임상요람’이라는 제목으로 동양의학연구원에서 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1965년 8월19일 대한기독한의사회가 창립되어 초대회장에 김정제 선생이 취임하였다. 기독교를 믿는 한의사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학술교류, 국내외 의료봉사를 통한 신앙생활의 실천과 믿음의 전파를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1982년 1월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 코리아나 호텔 22층에서 토요학술강좌를 실시하여 왔는데 비회원까지도 참석해 성공적인 모임이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첫 강좌는 김정제 회장의 강의로 동의보감 임상강좌로 많은 회원들로부터 호응을 받았다.



1982년도에는 동양의료선교회를 결성하여 해외선교의료봉사에도 나서 방글라데시, 필리핀에 진료봉사단을 파견하였다. 의료선교활동은 이정재 목사(성지원한의원장), 박창곡(전대한여한의사회장), 김일중(서울성산한의원장) 등 다수 회원이 참가하였다.

대한기독한의사회는 초대회장에 김정제, 2대회장에 홍순용, 3대회장에 김현제, 4대회장에는 라기성씨가 회장을 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한기독한의사회는 1965년 출범한이래 40여년간 학술활동과 해외의료봉사를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등 한의학 세계화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운계 선생님의 학문의 맥을 잇고 있는 한의사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를 역임한 김현제 선생을 비롯하여 동양의학연구원 이사장을 역임한 김병운 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 학장과 경희의료원 한방병원장을 역임한 두호경 교수 등이 있다.



두호경 교수는 연구실과 자택에 운계 김정제 선생의 사진을 벽에 걸고 있다고 한다. “내가 오늘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했고, 제자들에게 성실했는가.” 두 교수는 매일 이 사진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많은 한의원을 방문하여 보았지만 院訓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운계 김정제 선생의 성제국한의원을 방문하여 보면 원장실에 院訓을 볼 수가 있다.



운계 김정제 선생 약력



1910년 8월16일 황해도 신계군 마서면

갈현리 623번지에서 출생

1924년 황해도 사립 대성학교 졸업

1929년 보명농업학교 졸업

1930년 평양기성의학 강습소 수료

1935년 황해도 동양의학원 수료

1935년 황해도 의생시험 합격

1956년 한의사국가시험 합격

1956년 성제국한의원 개설

1963년 대한한의사협회 제6대회장

1964년 학교 법인 행림학원(동양의과대학)

이사장

1965년 대한기독한의사회 초대회장

1965년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교육위원장

1966년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부속한방병원

제3대병원장

1973년 동양의학연구원 설립 이사장

1977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제5대학장

1978년 원광대학교 대학원 명예철학박사 학위

1980년 경희대학교 대학원 명예한의학박사 학위

1988년 12월 28일 서거

1993년 제3회 허준 의학상(공로부문)수상



저 서



동양의학 진료요감(상·1하)(1974년), 동의임상요람(1977년), 계간동양의학(1975년 창간)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