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윤 한의사/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박사과정
극한 직업-한의대 편
1년 중 각종 행사가 많이 있는 달은 아무래도 5월일 것이다. 가족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날도 있고 종교적으로 경건한 마음을 가지며 새로이 다짐을 하기도 하지만, 교육에 있어서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모두에게 의미 있는 날은 5월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약간은 들뜨면서도 훈훈한 모습이 관찰되는 날이기도 한데, 언젠가부터는 스승에게 감사를 표하며 스승을 공경하는 미덕을 잃어버리고 서로 부담스러운 날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교육은 전공을 막론하고 그 자체로 숭고한 일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의학이나 한의학이라는 학문을 가르친다는 것은 전공 특성상 교수에게 1인 다역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매우 힘든 일이라 생각한다.
의학을 전공하는 많은 학생들은 방대한 학업량과 성적, 혹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번 아웃(burn out)을 경험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러한 번 아웃은 학생들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대학 교수의 주 업무는 무엇보다 교육이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의과대학의 상당 수 교수들은 환자 진료와 함께 연구까지 수행해야 한다. 더군다나 점차 갈수록 의학 교육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증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 관리, 교육 여건 개선, 교육 과정 개편 등 교내외의 여러 변화와 그에 맞는 책임을 짊어진 의과대학의 교수들은 장기간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이나 탈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의료나 교육 분야처럼 불특정 다수를 상대해야 하는 전문직종의 사람들이 탈진을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탈진 현상은 개인의 신체와 정신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업무 수행의 완성도를 낮추며 의료 사고를 야기하기도 한다.
의과대학 교수의 탈진 현상은 해외에서도 매우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스트레스나 탈진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정서적 소진과 냉소주의, 성취감 저하 등의 3가지 하위척도로 구성된 탈진 검사 MBI-HSS를 이용한 설문에서 미국 의사들 중 30~60%가 탈진을 보였다는 보고가 있었다. 또한 미국의 26개 의과대학의 교수 4,57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자기 효능감의 저하, 고립감, 도덕적 스트레스, 기관의 문화적 변동, 직무 만족도 저하 등으로 인해 4분의 1가량의 교수들이 기관을 떠나 이직하거나 직업을 바꿀 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된 연구도 있었다.
국내에서는 의과대학 교수의 탈진에 대해 연구한 것이 많지는 않지만 2014년에 3개 대학의 교수를 대상으로 MBI-HSS 설문검사를 시행한 연구가 있다. 그에 따르면 정서적 소진 탈진은 11.8%, 냉소주의 탈진은 25.3%, 성취감 결여 탈진은 14.5%였는데 하나 이상의 탈진을 보이고 있는 교수는 37.1%에 달해 3분의 1 이상의 교수가 탈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탈진과 관련된 요인으로는 정서적 소진 탈진의 경우 주당 근무시간, 자신의 건강상태 등이 있었고 냉소주의 탈진은 근무 연한이 4~9년일 때 가장 많았다고 한다. 성취감 결여 탈진은 50대에서 가장 높은 빈도를 보였다. 정서적 소진 점수는 ‘진료’가 가장 힘든 일이라고 한 교수에서 높았고, 냉소주의 점수는 ‘교육’이 가장 힘든 일이라고 답한 교수들에서 높았다. 사직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교수들은 41.9% 였다. 연구자들은 근무시간이 많은 경우이거나 일과 개인생활의 불균형, 낮은 자기 효능감, 우울증, 동료나 환자와의 갈등 등으로 인해 탈진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아직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업 소진 연구나 대학 교원의 스트레스와 탈진 현상에 대해 한의계 내에서 연구된 바는 거의 없지만, 한의대의 경우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진료와 연구, 교육을 맡게 되는 교수의 주 업무는 비슷하기 때문이다.
보통 극한 직업이 가진 특징을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 예측할 수 없는 업무 흐름, 빠른 일정과 감당하기 힘든 책임 범위, 잦은 행사, 고객을 위한 대기, 멘토링과 인재 채용의 책임, 잦은 출장, 직장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10시간 이상 등으로 이야기되는데 의과대학의 교수를 생각하면 많은 부분이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소통의 방법이나 스트레스 조절법 등의 교육과 함께 교육 당사자의 이해와 협력의 분위기 조성, 효율적인 업무 수행과 교육 개선 등으로 대학에서의 탈진과 소진이 현격히 줄어들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