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
한약진흥재단 이사장
단국대학교 교수
“한의대의 교육이 정치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상향 혁신돼야만 한다. 그래야 미국서 정골의사가 의사와 동등하게 인정받는 것처럼 우리도 한국사회서 의사와 같은 지위와 권리를 보장받게 될 것이다.”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내렸다. 11월 8일, 국내 유일의 국립 한의학교육기관인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1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날 열렸던 ‘세계 전통의학 교육의 혁신’이라는 주제의 국제학술심포지엄에 참석했다.
해방되고 나서 한의대가 설립되기는 했었지만, 출범 당시 교육 과정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로 세월 지나 굳어지면서 국내 한의대 교육은 매우 안타까운 지경에 빠져들었다. 다행히도 부산대 한의전이 착실한 준비와 본격적인 실행과정을 거쳐 이제는 국내 한의학교육의 중심기관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의 교육 관련 국제학술심포지엄은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개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北京中醫藥大學의 리우젠핑(劉建平) 교수는 WHO/WPRO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지역 사무처)에서 임상진료지침을 개발할 당시 필자를 도와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전문가다. 비록 중의사는 아니지만 유창한 영어 실력과 성실하고 차분한 인품으로 국제적으로도 신망이 두텁다. 최근에는 ISCMR(International Society for Complementary Medicine Research)의 회장을 맡아 국제적으로 통합의학에 관련된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중의약 교육은 중국 헌법 정신을 그대로 반영
중국의 중의약 교육은 中醫學을 西醫學과 동등하게 발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中西醫學을 결합한다는 중국의 헌법 정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서의과대학에서 커리큘럼의 5% 정도 중의학을 교육함으로써 西醫師가 西藥과 中成藥을 처방할 수 있도록 하였고, 중의약대학에서는 40% 수준으로 서의학을 가르침으로써 졸업생들이 西藥과 中藥을 처방할 수 있도록 했다.
괄목할만한 내용으로, 2011년에 岐黃國醫班이라는 9년제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졸업 후 박사학위까지 주어진다. 2014년에는 그 과정의 재학생들이 아시아 최고 명문대학인 싱가포르 난양이공대학(南洋理工大學)에 가서 유전체학 등 생물과학 분야의 교육을 받기도 했다. 임상 교원 포함해 전 교직원이 4422명이고, 13개 단과대학에 재학생이 2만7833명으로 국내 한의과대학들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규모다. 동즈먼(東直門) 동팡(東方) 등 3개 부속병원과 전국적으로 34개 협력병원이 있다.
또한 ‘Journal of Traditional Chinese Medical Sciences’를 발간하고 있으며, 211 工程의 지원 아래 세계 대학 100위권 내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 明治國際醫療大學 (Meiji University of Integrative Medicine) 야노 다다시(矢野 忠) 총장은 돌아가신 구로스 선생과 함께 2003년 10월 WHO/WPRO의 ‘제1차 국제표준 침구경혈위치 전문가회의’에 참가했던 일본 침구학계의 거물이다. 동행했던 가와기타 겐지(川喜田 健司) 교수는 생리학 전공으로 일본 침구학계에서 기초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학자로 WHO회의에도 일본 대표로 여러 차례 참가했었다.
한의협, 일원화 모델로 미국식 정골의학 방향 선회
일본에는 한의사제도가 없고, 鍼灸大學이 12개가 있으며, 침구를 가르치는 81개 직업학교가 있다. 가와기타 교수의 발표내용에는 침구학 교육에 관한 내용도 있었지만, 자신의 전공분야인 침에 관한 연구내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대만 中國醫藥大學 中醫學院의 장헌홍(張恒鴻) 원장은 1989년 필자가 그 대학에 교환교수로 갔을 때 처음 만났다. 현 국제동양의학회 (ISOM) 회장인 린자오껀(林昭庚) 교수와 함께 당시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그런 인연으로 30년을 이어온 사이다. 그는 언제나 진지하고 또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할 줄 아는 인물이다.
한 때 창겅대학(長庚大學)으로 갔다가 현 총장이 다시 불러 모교의 학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중국의약대학은 1966년 설립된 이래 대만 중의학계를 주도해 왔다. 지금은 3개의 중의약대학이 더 있다. 중국의약대학은 여러 차례 변화를 거쳐 현재는 중의사와 서의사 이중 면허를 가질 수 있는 7년제, 중의사만 되는 7년제, 학사후 중의학계 5년제의 3가지 트랙을 운용하고 있다. 정규 강의 외에도 튜토리알, 문제중심학습(PBL), flipped classroom 등 다양한 교육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북경중의약대학은 규모면에서 또 제도적으로 우리와는 다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모범이 될 수 있는 대학은 중국의약대학이다.
현 한의협 집행부가 출범 당시에는 중국식 일원화를 주장했으나 최근에는 미국식 正骨醫師 (Doctor of Osteopathy: DO)가 가장 적합한 모델이라고 방향 선회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정골의학대학 Lawrence Prokop 교수의 발표에 특별한 관심이 갔다. 정골의학대학에서는 의과대학의 전 과정을 배우고 추가로 정골의학을 교육한다. 1910년 Flexner보고서가 나온 후로 155개에 달하던 미국내 의과대학이 31개로 줄었으며,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교육이 강조되었는데, 정골의학에서는 이를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일찌기 미국 전역에서 의사와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확보했다.
부산 한의전, 통합의학 교육 위해 더욱 분발바래
그의 발표를 듣자면, 정골의학이 마치 의학보다도 더 우월한 것처럼 보인다. 전인적인 접근을 하는 서양의학이다. 발표 후 우리나라 상황에 대한 질문에 그는 로비 등 정치적 노력을 하라고 강조했다. 아마도 한국 한의대의 실정을 잘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한의계가 정치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한의대의 교육이 정치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상향 혁신돼야만 한다. 그래야 미국에서 정골의사가 의사와 동등하게 인정받는 것처럼 우리도 한국사회에서 최소한 의사와 같은 지위와 권리를 보장받게 될 것이다.
한의계가 왜 오랫동안 국립대를 그토록 원했는지 부산대 한의전의 발전상을 보면 이해가 간다. 한의대 교육에 있어서는 이미 다른 대부분의 국내 한의대가 따라가기 불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앞서가는 통합의학 교육을 위해서 더욱 분발해야 함을 주문하고 싶다. 연구 분야 특히 임상연구에서도 조만간 국내 선두 주자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아침에 길을 떠나 자정이 되어서야 귀가하는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그다지 피곤하지 않았다. 세찬 비까지 뿌렸으나 잘 다녀왔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