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28년 전통 이어와...선후배간 온정으로 한의학 탐구에 매진
'기초 없이 학문 없다' 신념 아래 의료봉사·학술대회 지속 진행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올 해로 설립 28주년을 맞은 겸재학회의 창시자 겸재 정동주 전 교수와 학회 1기였던 이만희 원장에게 겸재학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한의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한의신문=민보영 기자]
"후배들 각오 밤새 묻고 잘 하는 분야 찾아주며 애정 쏟아"
겸재학회 30년 가까이 이끌어온 정동주 대전대 전 교수

정동주 대전대 전 교수
"제자들과 함께 MT를 자주 갔는데, 그것도 수업의 연장이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밤새 후배들에게 어떤 한의사가 되고 싶은지 묻고, 잘 하는 분야를 찾아주며 속 깊은 얘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한 번은 학교에서 수업을 마쳤는데 본과3학년 학생들이 나를 찾아오더니 나를 납치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때만 해도 자가용이 드물었습니다. 알고보니 학생들이 저와 함께 놀이공원에 가기 위해 부모님의 자가용 3대를 각각 빌려왔더라고요. 그런 기억을 돌이켜보면 저는 참 행복한 주변 사람들을 뒀다는 자부심이 들곤 합니다."
겸재학회에서 한의대 학생들에게 한의학의 세부 분야인 '맥파'를 사사해온 정동주 전 교수는 기억에 남는 학회 활동을 묻는 질문에 이런 경험을 떠올렸다. 정 전 교수가 폐계내과에 정통하다는 소문을 듣고 학생들이 나서 겸재학회를 꾸린 지 28년 만이다. 학회 명칭은 정동주 교수의 호를 따서 만들었다. 1964년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한 정 전 교수는 동양한의원, 정동주한의원을 개원하고 대전대 한의대, 원광대 한의대에서 각각 석박사를 지냈다. 현재는 병환으로 제중요양병원을 떠나 겸재학회 제자들과 교류해오고 있다.
정 전 교수가 후학을 양성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인성이었다. "의사가 사회에 나가서 유명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무엇보다 됨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뽑으면서도 인성을 가장 먼저 봤어요. 사회에 나가서 인술을 펼치고 의료봉사를 잘 할 것 같은 학생들 위주로 뽑았습니다. 저희 학회 출신 학생들의 주례를 제가 몇 번 서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신랑신부에게 제가 서로 보증하는 사이라는 얘기를 농처럼 하기도 했어요."
의사가 이익 추구에만 급급하면 안 된다고 보는 정 전 교수는 앞으로도 한의사가 많은 공부를 통해 한의학 발전과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기를 바랐다. "의학공부를 하려면 책이 기본입니다. 제가 어릴 때 아버지는 제게 책 속에 답이 있다고 하셨는데, 살아보니 그게 정말 맞는 말씀이었습니다. 지금 졸업하는 한의사들은 다들 똑똑하고 실력도 있는데, 이익 추구에 다소 쏠려 있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돼요. 한의학의 미래를 알기 위해서라도 책을 조금 더 읽고, 이익보다는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제자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겸재 학회서 쌓은 실력으로 사회 활동에 기여"
겸재 학회 1기생 이만희 소리청한의원 원장

이만희 소리청한의원 원장.
"정동주 교수님은 대전대 한의대에서 강의하실 때부터 다른 교수님들이 모르시는 전통적인 부분을 많이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한 번은 저의 진로를 논의하던 중 호흡기 분야의 대가이신 교수님의 도제식 교육을 직접 사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강의도 하고 진료도 보시려면 이런 부탁이 다소 당돌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교수님은 흔쾌히 제 요청을 들어주셨습니다. 내친 김에 이런 가르침을 여러 명이서 받자는 생각에 동기들을 모아 '겸재학회' 1기생이 됐죠."
정동주 교수에게 사사하기로 결심한 이만희 소리청한의원 원장은 이 이후 10여 년 동안 물심양면으로 겸재학회의 발전에 기여해 왔다. 겸재학회는 매해 경상남도 충청도 경기도 등으로 의료 봉사를 떠났고 정 교수의 생일, 스승의 날에는 한 데 모여 정 교수의 사사를 기념했다. 학술대회는 정 교수의 전문 영역인 비염 등 이비인후과 분야의 치험례를 주제로 진행됐다.
"정 교수님은 약주를 일절 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도 학회 제자 분들을 만나면 그렇게 술을 잘 주시곤 하시는데요. 한 번은 저희 모임을 의미 깊다고 본 시골의 한 마을 이장님이 저희를 자신의 지역으로 초대한 적이 있습니다. 개발제한구역인데 이장님 권한으로 함께 이 계곡에서 어울려 삼겹살을 구워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특히 학생들은 많이 취했는데도 실수 한 번 하지 않고, 교수님은 또 그런 학생들을 예뻐하시던 모습이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사제간에 놀이공원에 함께 갈 만큼 정을 나눴다던 정 교수의 기억과 일치한다.
이 원장은 겸재 학회에서 쌓은 실력이 한의사의 사회 참여 활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한의 진료가 양의와 구분되는 가장 큰 장점은 맥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의 진료는 청진기 등 다른 도구가 필요하지만, 한의 진료는 제 손만으로도 충분히 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겸재 학회에서 기본 수준을 뛰어넘는 맥법을 수학했습니다. 이 방법은 맥을 짚는 행위만으로 환자가 유산을 몇 번 했는지, 출산을 몇 번 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줄 정도입니다. 이 경험은 우리누리청소년회에서 청소년, 외국인 등을 진료할 때에도 큰 도움을 줬습니다." 겸재 학회에서 정 교수와 사제간의 정 이상을 쌓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