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1539〜1615)은 『동의보감』에서 ‘傷寒無補法’이라는 주장에 분명히 비판하고 있다. 傷寒無補法이란 “傷寒에는 補法이 없다”는 주장이다. 傷寒이라는 병은 외감성의 사기가 인체를 침범하여 생겨난 질병이기에 이러한 외부로부터 들어온 사기를 몰아내는 치료법을 위주로 치료해야 하며, 補法은 사용할 수 없고 瀉法을 사용해야 한다는 논리가 그 주장의 골자이다.
이러한 주장의 시작을 연 것은 宋代의 李子建이다. 李子建은 張仲景의 서적을 8년 동안 연구하여 傷寒에는 惡證이 없으며, 용의들이 가끔식 방제를 잘못 투여하여 병이 깊어지게 만든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저술 『傷寒十勸』에는 상한병에 대한 10가지 주목되는 주장을 하였다.
책의 이름이기도 하고 주장의 다발이기도 한 이 ‘傷寒十勸’의 하나로 “傷寒病은 마땅히 바로 毒氣를 공격해야지 補益해서는 안 된다(傷寒當直攻毒氣不可補益)”라는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 이 주장에 대해서 樓英, 王肯堂, 張介賓 등은 치우친 점이 있다는 것을 들어 맹렬히 비판하였다. 허준의 맥락도 같은 맥락이다.
상한무보법에 대한 비판론을 전개하고 있는 ‘동의보감’의 외감협내상증 해당 부분.
허준은 『東醫寶鑑』 寒門에서 ‘外感挾內傷證’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外感만 있고 內傷이 없으면 仲景의 法을 사용한다. <丹心>○傷寒에 內傷을 끼는 경우가 열 가운데 여덟, 아홉이다. 무릇 사기가 모이는 곳은 그 기운이 반드시 허한 것이니, 단지 補中益氣湯을 이리저리 加減해서 사용한다. 氣虛가 심한 경우는 附子를 조금 가해서 人蔘과 黃耆의 功이 행해지도록 한다. (方見內傷)<丹心>○傷寒에 丹溪는 補中益氣湯을 사용하였고, 海藏은 九味羌活湯을 사용하였는데, 모두 이것은 和解의 뜻으로 眞氣로 하여금 散失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綱目>○丹溪와 海藏 등 모든 현인들이 傷寒을 치료함에 모두 補養에 發散을 겸하는 법을 사용하였으니, 이것은 이에 風雨寒熱이 虛邪를 얻지 못하면 홀로 사람을 손상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俗醫들이 傷寒에는 補法이 없다(傷寒無補法)고 말하고는 虛實을 나누지 않고 一例로 땀을 내거나 사하시켜 夭橫에 이르게 하니 진실로 醫門의 罪人들이라 할 것이다. <綱目>○傷寒의 하나의 증상에 頭疼, 身熱, 惡寒, 微渴, 濈然汗出, 沈困, 身痛, 脚痠, 脈浮虛無力한 것을 勞力感寒이라고 이름하니, 잘못 正傷寒으로 여기고서 크게 發汗시켜서는 않된다. <回春>○外感에 內傷을 꼈으면 陶氏補中益氣湯, 十味和解散이 마땅하다.”
이 글은 王好古(海藏), 朱震亨(丹溪), 龔廷賢, 樓英 등 역대 의가들의 ‘傷寒無補法’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여기에 자신의 주장을 개진한 것이다. 『중의학술사』에 따르면 ‘傷寒無補法’에 비판적 견해를 피력한 의서는 樓英의 『醫學綱目』, 王肯堂의 『證治準繩』, 張介賓의 『景岳全書』 등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논쟁에 허준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이다.
허준은 ‘外感挾內傷證’이라는 “대부분의 外感病은 內傷을 끼고 나타난다”는 주장을 통해서 ‘傷寒無補法’ 주장의 치우친 점을 보정하고자 했다. 이것은 “外感만 있고 內傷이 없으면 仲景의 法을 사용한다”는 것과 “傷寒에 內傷을 끼는 경우가 열 가운데 여덟, 아홉이다”라는 ‘外感挾內傷證’ 글의 서두에서 전제로서 깔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