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희 연구원
한의학정신건강센터(KMMH)
경희대 한방신경정신과 박사과정
오늘날 ‘의과학’의 궁극적 사명은 인간을 질병으로부터 보호, 편안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데 두고 있으며 여기서 건강이란 ‘정신과 신체’의 사회적 안녕 질서를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미 수년째 겪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과 심각한 지구 온난화 현상은 무너지고 있는 정신건강의 ‘번아웃’과 폭염, 가뭄, 홍수, 폭우, 태풍 등 ‘기후재난 트라우마’로 나타나고 있어 인류가 처한 시급한 문제로 부상되고 있다.
여기서 한의학은 수 천 년을 두고 우주자연대사와 인간 상호관계를 전체적 생명 현상으로 관찰, 이를 분석하여 학리를 세워 임상 실험에서 실증해 왔다.
정신건강한의학은 정신의 기층부에서 오는 번아웃(정신적, 신체적 탈진) 정신장애에 대해 공감, 지지, 경청, 상생의 자기화요법으로 정신활동을 상생시키는 ‘혼신의백지 오신체계론’을 구축하여 실제 임상에 활용해왔다.
이처럼 정신건강한의학은 ‘롱-코비드’로 인한 정신적, 신체적 탈진에 대해 개별적 생명과 인격을 존중하는 ‘의과학’으로 사회적 임팩트 효과를 창출하며 인류건강 증진에 크게 기여해 오고 있다.
임상사례
폴란드에 거주하며 매 여름 방학마다 외갓집을 방문해왔던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가 이번 여름에는 엄마, 여동생과 함께 두통, 어지러움, 복통으로 내원했다.

엄마: 큰 애가 항상 아프다고 해요. 배 아프고, 머리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고... 폴란드 현지 소아과에서도 애가 우울증이 있다고 해요. 몇 년이나 됐는데 정말 속상해요.
한의사: (망문문절 진찰 후에) 아이가 힘든 일이 있나요?
엄마: 집에선 한국어로 말하고 학교에선 폴란드어, 영어로 공부하고 곧 스페인어를 배울건데... 그건 폴란드 학생들도 다 하는 거니까, 딱히 힘든 건 없을 거 같아요.
한의사: (큰 딸 아이와 눈을 맞추며) 엄마 말이 맞아? 예나 생각은 어때?
아이: ... 음...(엄마 눈치를 보며 망설인다).
엄마: 오히려 유치원 애들 가르치고 살림에, 얘들 공부 봐주고 남편 사업 챙겨주랴, 저야말로 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힘들게 살아요.
한의사: (눈을 맞추고 살짝 웃으며) 남편 뒷바라지에, 직장 생활에, 멀리 폴란드에서도 아이들을 잘 키우시고... 정말 훌륭한 엄마세요.
엄마: (갑자기 당황한 듯) 아. 네.
한의사: 단 둘이만 상담할게요.(나가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생에게) 너도 언니랑 같이 있으려고?
동생: (고개를 끄덕이며) 저도 레아 아는데...
한의사: (큰애를 보며) 예나는 영어, 폴란드어에 스페인어까지 정말 대단하다. 근데 도대체 레아가 누구야?
아이: (천천히, 영어발음이 섞인 한국어로) 레아는 우리 반 반장인데, 레아가 저랑 제일 친한 마리한테 제 험담을 많이 한 거 같아요. 마리가 절 피해요. 레아는 다른 애들에겐 인기 있는데, 저한테만 짜증내고 자꾸 뭐라 해요.
한의사: 그래서 예나는 어떻게 했어?
아이: 레아가 불공정하게 해서 억울했지만 늘 참았어요. 코로나로 오랜만에 학교 갔는데, 친구들 있는데 서도 여전히...
한의사: 그럼, 지금 선생님이 이제부터 레아 역할 해줄게. 그 상황에서 예나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한 번 해볼까? 실전 연습 삼아...
아이: 좋아요.
한의사: (레아 역할로) “예나! 너 지금 가만있어야지, 말하면 어떻게 해?”
아이: “다른 애들은 말했으니까 이번엔 내가 말할 차례잖아.”
동생: (큰 소리로) “우리 언니한테 왜 자꾸 그래?? 고만해”
한의사: 동생도 레아가 언니한테 못되게 굴어서 화났어?
동생: (울먹이며) 우리 언니 오랫동안 괴롭혔어요. 언니는 맨날 배 아프다고.
아이: (동생을 바라보며 용기를 내 또박또박 말한다.) “레아. 니가 그러는 건 옳지 않아. 내가 발표할 차례잖아. 앞으론 그러지 말았으면 해.”
한의사: (레아가 된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알았어.”
아이: (또렷한 눈빛으로) 음...마음이 많이 시원해져요.
필자는 5살 어린 나이에 폴란드로 이민 갔던 이 소아환자에게 학교에서의 따돌림으로 인해 생긴 ‘심담허겁, 경계증’으로 진단하여 정신발현 활동을 북돋울 가감사칠탕으로 방제하고 내관, 신문혈을 시침했다.
『동의보감』 「소아문」 小兒病難治에서 ‘소아의 병은 손으로 아픈 데를 가리키지 못하고 어디가 아픈지를 말로 표현 하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소아청소년의 특징을 지닌 신중한 성격의 소아환자에게 발생, 추진기능을 상생시키는 개인 맞춤식 ‘지지적 경자평지요법’으로 치료했고 아이의 전인적 뇌 발달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복약 1달 후 가족과 내원한 큰딸아이는 “다른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내려고요. 친구들이 빨리 돌아오라고 성화예요”라며 기쁜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 엄마는 “다음 주에 폴란드 돌아가면 가족 여행도 가려고요”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혼·신·의·백·지’는 구조역학적 정신건강한의학
위 임상사례에서 보듯 정신적, 신체적 활동은 오기능의 역학적 상관관계에 속하는 활동임을 알 수 있다. 이런 관계를 상생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일원적 존재의 양면성으로 보고 이를 구조역학적으로 분석, 환자 개개인의 우월기능을 강점으로 삼아 신명(神明)을 살리는 치료가 필요하다.
실제 한의과대학 한방병원 정신과병동에서는 내원하는 다양한 정신건강장애군 환자들에게 개개인 특성에 맞는 ‘상생의 지언고론요법, 공감의 이정변기요법, 지지의 오지상승요법, 단계적 경자평지요법, 겸손의 한방EFT요법, 경청의 정서상승요법’에 이르기까지 개인 맞춤식 한의정신요법으로 우수한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한의학정신건강센터가 한의학 특성의 오행치료 원리를 담아 ‘뇌 연구 개발사업’ 등 진료지침모델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