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필자가 1975년 중학교 2학년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갑자기 수업을 줄이고 가봉공화국 봉고 대통령이 방한하는 행사에 동원돼 길거리 환영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에 신촌로터리 근처까지 가서 봉고 대통령의 방한 차량 행렬을 열렬히 환영하며 국기를 흔들며 소리쳤던 추억이 있다.
당시 거리에 있는 우표 가게에 가서 방한 기념 우표도 몇 장 구입했던 것도 떠오른다. 필자의 소장 자료 안에 이때 샀던 우표가 보관돼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북한보다 외교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기획된 행사에 학생들을 동원하면서 선생님들은 저마다 그 의미를 학생들에게 설명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날이 1975년 7월5일이었다고 한다.
2019년 노정우 교수님(1975년 당시 경희대한방병원 원장)의 유품을 따님이신 노효신 선생께서 기증하였는데, 그 자료 안에 ‘가봉공화국 봉고 대통령 영접계획’이라는 제목의 자료가 포함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자료에는 봉고 대통령의 한방병원 방문 날이 1975년 7월7일로 기록돼 있었다. 한국 방문 후 이틀만에 전격 방문하는 일정이었던 것이었다. 매우 파격적인 방문이었다.
1975년 당시 경희의료원 원장이었던 김종렬 원장의 회고록 『경희의료원, 그 길을 닦다』(2011년 간행)에 따르면 봉고 대통령의 경희대한방병원 방문은 봉고 대통령 본인의 부탁으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특히 이 방문은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라 방문 전에 이미 계획된 것이라는 것이다. 특별히 프랑스에서 공부한 간호사 조카의 6개월 시한부 암 투병에 도움받기 위해 한의학의 치료를 받고자 방문한다는 것이었다.
‘가봉공화국 봉고 대통령 영접계획’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대통령 조카의 진단 검사를 위해 최용태, 이봉교, 강성길, 정우순, 최상순, 구혜숙, 이순자 등이 준비를 하고 대기하며 현관에서 의료원장, 부속병원장, 한방병원장, 치과병원장, 신상주 교수 등이 일렬로 정렬해 영접하는 것으로 예정되었다. 한방병원 진찰실에서 한방병원장 노정우, 신상주, 최상순 등이 조카를 탈의한 후 예진을 마치고, 경락측정, 전기맥진, 맥진, 복진, 배진 등을 마치고 진찰결과를 설명하도록 되어 있었다. 또 다른 한 장짜리 자료 ‘診療陣 名單’에 따르면, 주치의는 노정우 한방병원장, 침치료는 침구과장 최용태, 한의사 강성길, 지압요법실장 정우순, 한의사 이봉교 등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후 봉고 대통령 조카는 입원을 하고, 봉고 대통령은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갔고, 조카는 3개월 동안 의학적, 한의학적 치료를 마치고 돌아갔다. 애초에 완치는 바라지도 않았고, 6개월 시한부를 생명연장하는 것에 의미를 둔 치료였다. 그녀는 이후 가봉으로 돌아가서 3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이후 봉고 대통령은 한방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한방맥진계, 경락측정기와 한의사 한 명을 파견해달라고 요청한다. 조카가 호전되고 있는 것을 보고 한 결정이었다. 이 때 파견된 한의사는 홍성수 원장이다. 1984년 7월31일자 한의사협보(한의신문의 전신)에는 홍성수 원장이 잠시 귀국해 진행된 인터뷰가 게재돼 있는데, 이에 따르면 홍성수 원장은 봉고 대통령 주치의로 파견돼 수도인 리브레빌의 매런병원에 한방진료실을 차렸다가 다시 디스팡세 런던병원으로 진료실을 옮겼다고 한다. 고온다습한 기후 때문인지 관절염, 신경통 계통의 질환이 많아 하루에 50〜60명의 환자를 보았다고 기록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