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령의 나이에도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의사이자 소설가인 윤영근 원장(윤한의원·사진)이 최근 21편의 소설을 한데 모은 소설집 ‘세월을 등에 지고’를 출간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 소설집에는 월간문학 신인상을 안겨주면서 문단에 정식으로 데뷔할 수 있게 한 ‘상쇠’를 비롯해 △국창 이동백 △길 위의 소리꾼(국창 송만갑) △가왕 송흥록(판소리 동편제의 시조) △부처와 생쥐(독립지사 백용성 스님) △여정(가야금병창 인간문화재 강정렬) △오수경과 금토시(판소리 서편제 시조 박유전 명창) 등 주로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간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같은 소설가로써의 작품 활동에 대해 윤 원장은 ‘빙의(憑依)와 동행(同行)’이라는 말로 자신의 소설가의 인생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
윤 원장은 “나이 마흔이 넘어 늦깍이로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소설가가된 이후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소설가의 삶이란 자신이 창조해낸 소설 속의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에 빙의되어 함께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낮에는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한의사로서의 삶을, 또 밤이면 내 소설의 주인공에 빙의돼 그들의 삶을 이해하며 글을 쓰는 소설가로써의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가왕 송흥록을 쓸 때에는 송흥록을 살았고, 각설이 타령을 쓸 때에는 각설이로 살았다”며 “소설가의 삶이 자신의 삶보다는 타인의 삶에 더 많이 고뇌하는 삶이어야 한다고 봤을 때 ‘타인에게 빙의되어 타인과 동행’하는 소설가로서의 내 삶에 비교적 충실했다고 자부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어린 시절 윤 원장의 집 사랑방에는 많은 과객들이 오갔는데, 실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송만갑, 이화중선 같은 소리꾼의 얼굴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등 훗날 그들의 삶을 소설로 풀어내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윤 원장의 작품들은 인물 중심 이외에도 전통과 관련된 향토색이 깊게 담겨 있어 ‘향토작가’라는 별칭까지 붙어있다. 또한 소설의 자료가 될 만한 소재가 있다면 어디든지 달려가 꼼꼼한 취재를 시작으로 글을 쓰는 작가로도 명망이 높다.
실제 상쇠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소문난 상쇠를 찾기도 하고, 동편제와 관련된 소설을 쓸 때는 전남 고흥까지 찾아가 원로 명창을 만나 삶의 이야기를 듣는 등 소설의 등장하는 인물의 정체성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하나의 소설 작품을 완성해 왔다.
윤 원장은 “한명의 인물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인물의 살아왔던 환경은 물론 보았던 풍경, 품었던 자리 등에 대한 폭넓은 자료 수집을 통해 내가 그 인물로 빙의돼야만 진정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며 “그동안 이러한 생각으로 작품활동에 임했으며, 앞으로의 창작활동에도 이러한 작가로서의 정신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 작품은 주로 향토성이 짙은 작품들인데, 이는 사라져가는 조상들의 애잔한 삶을 더 잊혀지고 멀어져가기 전에 그 시대의 이야기들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특히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독립군이거나 문둥이, 각설이, 백정, 산지기 등으로 험한 인생을 살았던 민중들의 삶을 사실대로 남기고 싶어 주인공으로 선정한 부분이 있으며, 더불어 우리 민족이 살아왔던 한 시대의 길목을 되짚어 당시의 삶을 들춰내 현대에 조명해 보고자 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1938년 남원에서 출생한 윤영근 원장은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과 원광대학교 대학원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문단에 등단 이후 한국예총 남원지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한의사와 소설가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남원항일운동사’, 창작집 ‘상쇠’, 장편소설 ‘동편제’·‘의열 윤봉길’·‘각설이의 노래’·‘유자광전’·‘아름다운 삶’·‘독립지사 임철호’, 평설 ‘홍도전’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