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나 경희대 한의과대학 본과2학년
올해 6월 말, 학과 교수님의 추천으로 대구에서 열린 한 학회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학회에 참가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는데, 세계 각국의 지성이 한 데 모여 강의를 듣고 토론하며 아이디어를 나누는 모습이 매우 인상깊었다.
그때 학회의 매력에 반한 나는, 20회 국제동양의학학술대회(ICOM) 개최 소식과 서포터즈 모집 공고를 접하자마자 바로 서포터즈에 지원했다. 기왕 하는 거 열심히 해보자 싶어 학생 간사 지원도 했고, 감사하게도 선발돼 주최측과 학생 서포터즈 간의 소통을 맡는 간사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국제동양의학학술대회는 1976년 대한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학술대회로, 무려 4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제적 행사다. Covid-19으로 인해 지난 5년간 개최되지 못했다가 드디어 올해 다시 막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이번 학회의 주제는 ‘통합의학으로서의 전통의학’이었는데, 통합의학적 우수함을 지닌 전통의학의 향후 발전 방향을 대만, 호주, 그리스 등 다양한 국가로부터 참가한 전문가들과 의논하고 나눌 수 있는 귀중한 자리였다.
방학 기간인 8월부터 행사 준비에 참가했다. 나는 학회 당일 서포터즈들에게 할당된 업무를 각 서포터즈에게 분장하는 업무를 맡았다. 학교도, 학년도 모두 다른 서포터즈들과 소통하며 업무를 분장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학회 준비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생각에 고됨보다 큰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서포터즈는 예과 1학년부터 본과 4학년까지 다양한 일원으로 구성돼 있었다. 예과생은 아직 한의학에 대한 정보를 접한 적이 많이 없어 힘들지 않을까, 그리고 본과 4학년은 곧 국가고시도 있는데 시간이 빠듯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나의 그런 염려가 무색하게 모든 학년이 열정적으로 업무에 관심을 보이고 참여하는 모습에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 학회에서 나는 간사 역할 외에도 통증 관련 발표의 통역 보조 업무를 맡았다. 발표 강의는 한방재활의학과학회의 신우철 교수님의 ‘교통사고 부상에 대한 한의학적 접근’, 그리고 척추신경추나의학회 이현준 원장님의 ‘경추의 생리·구조학적 기전과 추나요법’이었다.
발표 당일의 매끄러운 진행에 혹시라도 누가 될까 싶어 마음 졸이며 교수님과 원장님이 주신 발표 자료를 열심히 번역하고 공부했다. 번역 중 헷갈리는 부분 때문에 몇 차례 연락드렸음에도 귀찮은 기색 없이 친절하게 답변 주신 교수님과 원장님께 지면을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드디어 학회 당일, 아침 일찍 도착한 서울대학교 글로벌공학교육센터는 이른 시간임에도 북적이는 사람들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메신저로만 소통하던 담당자님과 서포터즈들을 실제로 보게 돼 설레는 마음도 잠시, 등록을 위해 줄 서 있거나 복도에서 헤매는 참가자들을 돕기 위해 바로 업무에 투입됐다.

나는 개인적으로 학회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많이 만났다. 앞서 언급한 대구에서 열린 학회에서 처음 뵌 James Flowers 교수님을 학회장에서 딱 마주쳐 반가운 마음에 “Hi James!”하고 밝게 인사하며 다가가 한창 수다를 떨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Flowers 교수님은 국제동양의학회(ISOM) 이사직을 맡고 계셔서 이번 학술대회에 초대된 분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너무 허물없게 굴었나 걱정했지만, 그 이후로도 마주칠 때마다 오히려 교수님께서 먼저 반갑게 인사해 주신 덕분에 서포터즈 업무에 대한 긴장감도 한결 덜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대만의 의약식품회사에서 나온 부스를 보조하러 나오신 경희대학교의 대만 출신 박사님, 그리고 학과 교수님까지 마주쳐서 한달음에 달려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번 학술대회에 대해 막연히 ‘한의학 관련된 분들이 많이 찾으시겠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이렇게 다양한 분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니 국제동양의학학술대회가 실로 한의학계의 축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통역 보조를 위해 들어간 한방재활의과학회의 신우철 교수님의 ‘교통사고 부상에 대한 한의학적 접근’ 세션에서는 교수님께서 추나요법을 청중들에게 직접 보여 주시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때 도우미 역할이 필요해서 내가 직접 무대에 나가게 됐다.
그간 한의원 참관을 다니며 원장님들께서 보여주시는 추나 시범을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내가 한의원에 방문해서 추나를 받아본 적은 없어서 조금 긴장됐다. 그런데 막상 받아보니 정말 편안하고 시원해서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는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가 비추고 있는 데도 눈이 저절로 감겼다. 그래서 추나 시범이 끝났을 때는 조금 당황하며 무대를 내려온 기억이 난다. 나의 첫 추나 데뷔(?)를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게 되다니, 이것도 나름대로의 추억이 됐다.
모든 세션의 발표가 마무리 되고 학술대회의 마지막을 장식할 갈라 디너에 참석했다. 나는 통역을 위해 참석했지만, 모두가 즐겁게 건배사와 축배를 들며 인사를 나누던 그 자리에서는 통역이 없어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모든 테이블을 돌며 잔을 높이 들면서 “Next time, in Taiwan!”을 크게 외치시던 대만 출신 연사분들이 기억에 남는다. 비록 다음 ICOM은 우리나라가 아닌 대만에서 열리지만, 기회가 된다면 제21회 ICOM에도 꼭 참가하고 싶다.
그저 참관이 아닌 서포터즈로 참여해 더욱 감회가 새로웠던 제20회 국제동양의학학술대회. 내가 애정을 담고 있는 한의학계의 큰 행사에 나의 노력이 조금이라도 포함됐다는 사실이 뿌듯했고, 앞으로의 한의학이 나아갈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설레기도 했다. 그리고 한의학에 대한 수많은 관심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쏟고 있는 노력 덕분에 든든한 마음도 들었다.
학회가 어떤 것인지 궁금한 한의대생들이라면 이번 ICOM 서포터즈 선발과 같은 기회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권하고 싶고, 서포터즈로서가 아니더라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학회에 참가할 수 있는 학생 신분일 때 많은 학회를 경험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