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현민 대한한의사협회 기획이사
대한민국은 지금 건강보험 재정 고갈, 필수의료 공백, 고령화로 인한 만성질환 폭증이라는 삼중고 앞에 서 있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진국들도 의료비 급증과 인력 부족에 직면했지만 대응 방식은 다르다.
해외는 이미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국민을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전략적 전환을 실행하고 있다. 전통의학, 정밀의학, 디지털 트윈, 로봇 재활, 지역사회 돌봄 등 접근은 달라도, 공통된 목표는 저비용·고효율 모델을 국가 정책과 산업 전략의 중심에 두는 것이다.
◎ 대만: 전통의학을 전략 자원으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대만은 백신과 고가 치료제 대신 전통의학 기반 치료제 ‘청관1호’를 병행 투여해 백신 비용의 10분의 1 수준으로도 임상 효과를 거두었다. 이는 곧 의료비 절감으로 이어졌다.
또한 파인애플에서 추출한 단백질 분해 효소 ‘브로멜라인’을 현대 과학과 접목해 의약품·건강식품·화장품 산업으로 확장했다. 2023년 약 9억 달러 규모였던 시장은 2033년까지 연평균 5.2% 성장할 전망이다.
이 사례들은 전통의학이 단순한 문화유산이 아니라 재정과 산업을 동시에 살리는 전략 자원임을 보여준다. 우리 역시 풍부한 자원과 임상 경험을 갖고 있지만 제도적 뒷받침 부족으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 미국·유럽: 데이터 기반 정밀의학
미국은 GDP 대비 의료비 지출 1위 국가이고, 유럽도 고령화로 재정 압박이 크다. 이들의 해법은 ‘데이터 기반 선택과 집중’이다.
미국 국립보건원은 ‘All of Us’ 프로젝트로 100만 명 이상의 유전체·임상 데이터를 수집해 맞춤형 치료를 설계한다. 유럽연합은 ‘European Health Data Space’를 구축해 의료 데이터를 통합, 디지털 트윈으로 가상 환자 모델을 활용한다. 불필요한 검사·치료를 줄이고 꼭 필요한 자원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한국은 전통의학과 디지털 헬스를 모두 활용할 수 있는 강점이 있으나, 제도적 지원 부족으로 양쪽을 놓칠 위험이 있다.

◎ 일본: 로봇 재활과 지역사회 돌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은 병원 중심 체계만으로는 늘어나는 돌봄·재활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이에 의료의 중심을 지역사회로 옮기고 로봇을 적극 도입했다.
HAL 외골격 로봇은 뇌졸중 환자의 보행 훈련과 노인 재활에 활용되어 장기 입원과 간병 비용을 줄였다. 또한 로봇 스마트홈 프로젝트로 고령자가 가정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AI·IoT·로봇 장비를 결합했다.
일본의 사례는 초고령화 사회에서 ‘기술과 돌봄의 결합’이 비용 절감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 중국: 전통의학의 디지털 전환
중국은 전통의학을 국가 전략 자원으로 삼았다. 맥진은 압력센서와 AI로, 설진은 영상분석으로 표준화했고, 체질 분석은 유전체 데이터와 통합했다. 레이저 치료도 경혈 연구와 접목해 대규모 임상으로 확장했다.
실제 조사에서 국민 60% 이상이 AI 결합 전통의학을 선호한다고 답했으며, 이는 디지털 전환이 국민적 수요에 기반함을 보여준다. 중국은 전통의학을 저비용 자원에서 대규모·표준화·효율화된 국가 전략으로 승격시키고 있다.

◎ “데이터와 전통의 만남, 지속가능한 의료의 해법”
우리나라가 추진해야 할 개혁 과제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다.
① ‘국립대병원 설치법’ 개정으로 한의과 의무화
② 국립중앙의료원 한방진료부 확대 통한 다학제 협진
③보훈의료 개편 시 한의학 진료 포함
④ 첨단재생의료법 디지털화 시 전통의학 데이터 포함
건강보험 총 진료비(2022년 약 100조 원) 중 한의학 지출은 2%에 불과하지만 불면증·난임·만성통증 등 서양의학이 해결하기 어려운 환자군을 감당하고 있다.
예컨대 수면다원검사, IVF, 투석 등 고비용 치료와 비교하면 한의학은 훨씬 낮은 비용으로 환자를 돌본다.
세계는 전통의학, 디지털, 재생의학, 로봇을 결합해 비용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한국도 직역 갈등을 넘어 국민 중심, 데이터 중심의 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의학은 저비용·고효율 치료 자원이자 첨단의료와 결합 가능한 핵심 축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한의학을 국민 건강과 국가 재정의 전략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