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유상(생몰년대 미상)은 조선 숙종 때에 활동한 痘科專門醫다. ‘두과전문의’라고 표현한 것은 그가 천연두를 치료하는 데에 전문성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본관은 文化로, 進士로서 同參 벼슬을 하면서 의사를 했다. 그는 숙종 9년(1683년)에 왕이 천연두에 걸리자 柿蒂湯을 사용해 쾌유시켜 당시에 이름을 떨쳤다.
숙종년간 御醫인 柳瑺이 1711년(숙종 37년)에 궁중에서 마마(천연두)가 돌았을 때 치료행적이 기록돼 있다.
① “中宮殿이 마마를 앓게 되어 柳瑺에게 入診을 명하니, 약방에서 청하기를, ‘매번 유상이 입진할 때에 慶恩府院君 金柱臣도 함께 입시하게 하소서’하니, 허락하였다.”(숙종 37년. 1711년 12월4일)
② “柳瑺이 입진하였다.【이후로 연일 입진하였다.】 중궁전의 마마 빛깔이 毒氣가 없이 깨끗하여 붉은 윤기가 없으며, 顆根이 엷고 단단하지 않으므로 議藥廳에서 補虛의 약제를 조제해 올렸다.”(숙종 37년. 1711년 12월5일)
③ “議藥廳提調 趙泰耉의 어린 아들이 마마를 앓다가 죽으므로, 의약청에서 조태구의 병이 중하다고 말해 改差하기를 계청하여 李彦綱으로 대신하였다.”(숙종 37년. 1711년 12월7일)
④ “중궁전의 얼굴 顆粒이 이미 볼[頰]에는 모두 거두어졌고, 또한 몇 군데는 딱지가 떨어져 의약청에서 약을 정지하기를 계청하였다.”(숙종 37년. 1711년 12월14일)
⑤ “下敎하기를, ‘醫官 柳瑺에게는 우선 2계(階)를 超授하여 기쁜 뜻을 표하라’하였다.”(숙종 37년. 1711년 12월16일)
‘중궁전(中宮殿)’은 숙빈 최씨를 말하니 숙종이 가장 아꼈던 인물이다. ‘동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숙빈 최씨는 이 시기 천연두에 걸려 얼굴의 피부에 과립이 뭉쳐졌고 이것을 유상이 치료하고 있다. 유상은 치료의 공로로 품계가 상승했다.
천연두는 급성 발진성 전염병이다.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천행(天行)’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점이 생겼다가 불러 오르고 고름이 잡혀 마치 꽃봉오리가 피는 것 같아지고 7일이 지나서 딱지가 앉아 떨어지는 것이 마치 꽃이 시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천화(天花)’라고도 한다. 또는 부스럼의 모양이 콩과 같기 때문에 두창이라고도 한다. 병의 과정상의 특징은 발열(發熱), 현형(見形), 기창(起脹), 관장(灌漿), 수엽(收靨), 탈가(脫痂)의 6단계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숙빈 최씨의 천연두 증상은 10일 남짓 이어지고 있으며 그 기간 동안 유상의 노력으로 치료가 마무리되고 있다. 숙빈 최씨의 증상을 언급할 때 그 얼굴의 피부가 중심이 되고 있음이 특징이다.
12월14일의 “중궁전의 얼굴 과립(顆粒)이 이미 볼[頰]에는 모두 거두어졌고, 또한 몇 군데는 딱지가 떨어져 의약청에서 약을 정지하기를 계청하였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니, 얼굴에 생긴 과립을 진단학적 판단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이다.
숙빈 최씨의 얼굴에 마마자국이 남게 되었을 것이다.
천연두 치료에 의해 높아진 유상의 위상은 그를 문반직 벼슬에까지 오르게 하여 이후 가문을 부흥시키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의 가문에 속하는 후손으로 유중림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