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속초22.4℃
  • 구름많음27.1℃
  • 흐림철원21.3℃
  • 흐림동두천19.7℃
  • 흐림파주22.5℃
  • 맑음대관령20.7℃
  • 구름많음춘천27.5℃
  • 맑음백령도21.1℃
  • 구름많음북강릉22.3℃
  • 맑음강릉24.7℃
  • 구름많음동해23.4℃
  • 흐림서울26.4℃
  • 맑음인천26.6℃
  • 구름많음원주27.5℃
  • 흐림울릉도22.4℃
  • 맑음수원24.1℃
  • 흐림영월26.6℃
  • 구름많음충주31.0℃
  • 맑음서산26.8℃
  • 구름많음울진22.0℃
  • 천둥번개청주26.8℃
  • 흐림대전19.2℃
  • 구름많음추풍령28.7℃
  • 맑음안동29.2℃
  • 구름많음상주29.3℃
  • 맑음포항27.1℃
  • 흐림군산21.4℃
  • 맑음대구29.7℃
  • 비전주20.4℃
  • 맑음울산25.2℃
  • 맑음창원24.4℃
  • 구름많음광주26.8℃
  • 맑음부산25.1℃
  • 맑음통영26.3℃
  • 구름많음목포25.3℃
  • 맑음여수25.7℃
  • 흐림흑산도23.9℃
  • 구름많음완도25.5℃
  • 흐림고창24.8℃
  • 맑음순천25.3℃
  • 맑음홍성(예)28.5℃
  • 흐림23.1℃
  • 맑음제주27.3℃
  • 흐림고산23.6℃
  • 구름많음성산24.2℃
  • 흐림서귀포24.4℃
  • 맑음진주26.3℃
  • 맑음강화24.8℃
  • 구름많음양평27.8℃
  • 구름많음이천28.6℃
  • 흐림인제18.9℃
  • 구름많음홍천29.9℃
  • 구름많음태백23.1℃
  • 맑음정선군27.6℃
  • 구름많음제천26.2℃
  • 구름많음보은26.4℃
  • 구름많음천안29.1℃
  • 맑음보령26.7℃
  • 흐림부여18.9℃
  • 흐림금산22.9℃
  • 흐림18.4℃
  • 구름많음부안25.6℃
  • 구름많음임실24.2℃
  • 구름많음정읍25.7℃
  • 맑음남원28.4℃
  • 구름많음장수24.3℃
  • 흐림고창군20.0℃
  • 흐림영광군24.1℃
  • 맑음김해시27.1℃
  • 맑음순창군27.8℃
  • 맑음북창원27.9℃
  • 맑음양산시28.3℃
  • 맑음보성군27.4℃
  • 맑음강진군27.5℃
  • 맑음장흥25.7℃
  • 구름많음해남26.7℃
  • 맑음고흥26.3℃
  • 맑음의령군27.9℃
  • 맑음함양군30.5℃
  • 맑음광양시27.4℃
  • 구름많음진도군24.5℃
  • 맑음봉화26.4℃
  • 맑음영주23.3℃
  • 구름많음문경28.1℃
  • 맑음청송군28.7℃
  • 맑음영덕23.7℃
  • 맑음의성31.4℃
  • 구름많음구미30.7℃
  • 맑음영천28.4℃
  • 맑음경주시27.4℃
  • 맑음거창29.1℃
  • 구름많음합천28.4℃
  • 맑음밀양29.1℃
  • 맑음산청27.8℃
  • 맑음거제26.7℃
  • 맑음남해26.2℃
  • 맑음27.8℃
기상청 제공

2026년 06월 14일 (일)

김남일의 儒醫列傳 5

김남일의 儒醫列傳 5

金南一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 金 永 錫 (1079~1166)



高麗時代는 귀족이 지배한 시대로 佛敎가 국시인 관계로 儒學의 발전이 더딘 시대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제도가 확립된 후에 시험과목 가운데 많은 부분이 유학관련 경전들로 채워져 있어 儒學이 지식인들에게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江陵이 본관인 金永錫은 고려 중기에 유학을 중시하는 문벌귀족의 집안에서 태어나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하였다. 그가 당시 최고위직인 문하시중에 앉아 있었던 金仁存의 아들이었던 것을 감안할 때 그는 아마도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하였을 것이다.



과거에 급제하면서 첨사부주부를 거쳐 합문지후, 전중내급사가 등의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실력을 인정받았고 1133년에는 낭중으로 金나라에 까지 다녀오게 되었다. 그는 평소에 유학을 공부하는 여가로 의술을 연마하여 백성들의 질병의 치료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동로병마사를 세 번 역임하고 북로원수를 한번 역임하면서 백성들의 신망이 두터웠던 것은 이러한 그의 의학적 능력과도 관련이 깊다.

의학에 대해 천시하지 않는 고려시대 사회적 풍조도 의학적 능력을 배양하는 데에 크게 작용되었다. 光宗 때인 958년부터 실시된 醫學科擧制度에는 응시자격으로 品官, 吏屬(품관이 아닌 자로 중앙관직자), 鄕吏, 庶人 등으로 그 자격을 차별하지 않았고, 仁宗 3년인 1125년에는 兩大業은 5品, 醫·卜·地·律·算은 7品까지 허용하였으며 지조와 덕망이 있는 자는 4品까지 응시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 의학을 장려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成宗 6년(987년)에는 醫學搏士를 임명하여 12牧에 파견하여 쓸만한 자를 골라 가르치게 하여 의학연구를 활성화시키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김영석은 『濟衆立效方』이라는 醫書를 편찬하여 임상에 힘을 기울였는데, 이 책은 新羅와 宋나라의 醫書들을 참조하여 만든 것이다. 『鄕藥集成方』에 남아 있는 한 개의 조문으로 그 전모를 다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내용이 고려의 독자적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그 내용은 “偏風手足不遂, 疼痛을 치료한다. 松葉 다섯말 정도에다가 소금 두되를 쪄서 뜨겁게 하여 푸댓자루에 담아 다림질해준다. 차가워지면 다시 쪄주어 병이 나을 때까지 한다”이다. 이러한 치료법이 唐代 王燾의 『外臺秘要』에도 비슷한 내용이 보이기는 하지만 『外臺秘要』의 경우에는 內服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濟衆立效方』에서는 外用하는 것이기에 그 중국적 맥락이 아니라 한국적 맥락에서 치료법을 정리한 것이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