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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3일 (토)

김남일의 儒醫列傳 7

김남일의 儒醫列傳 7

道家的 醫學 조선서 자리잡는데 기여

金南一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조선 전기 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金時習은 어린 시절부터 儒學에 남다른 능력을 보였다. 생후 8개월에는 글뜻을 알기 시작하였고, 3세에는 능히 글을 지을 수 있었다. 이러한 소문은 조정에까지 알려져 5세가 되던 해에 세종의 총애를 받아 후일 중용하리란 약속과 함께 비단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과거 준비를 위해 삼각산 중흥사에서 공부하던 21세 때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중이 되어 방랑의 길을 떠났다. 그를 생육신으로 꼽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한 때 환속하여 농사를 짓고 결혼을 하기도 했지만, 이내 현실의 모순에 반대하여 관동지방에 은둔하여 충청도 무량사에서 생애를 마감하였다.



이렇듯 김시습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 속에서 기구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위정자들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면서 백성들을 중하게 여기는 왕도정치를 꿈꾸었다.



여기에 儒·佛·道 三敎의 회통이 자리잡게 된다. 불교의 마루가 되는 목적은 자비이며 이 자비는 만물을 이롭게 할 수 있고 마음을 밝혀 탐욕을 없앨 수 있다고 하였고, 도교에 대해서는 神仙術에 대해서는 부정하는 입장에서 氣를 다스려서 天命을 따르게 하는데 가치가 있다는 입장에서 氣를 중시하는 철학을 완성하였다. 그는 陰陽의 운동성을 중시하는 主氣論의 입장에서 佛敎와 道敎를 흡수하여 철학을 완성시켰다.



한국에서 수련을 중심으로 하는 道敎의 맥은 멀리 신라의 遊學人들로부터 시작된다. 그 시작에는 鍾離權이라는 인물이 있고 그 뒤를 이어 崔承祐, 金可紀, 僧慈惠 등이 계승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僧慈惠의 道脈은 金時習에 이어진다. 金時習은 그의 문집 ‘梅月堂集’에서 龍虎에 대한 해설을 달았다. 여기에서 鉛과 水銀을 龍과 虎에 비기어 인체의 一呼一吸하는 呼吸에 빗대어 논하고 있다. 이것은 본래 金丹을 제조하는 방법으로 논의되었던 龍虎의 논을 인체에 적용시켜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정기가 인체의 몸으로서 머리가 乾, 배가 坤으로 배꼽 밑 일촌오푼의 丹田이 그 중심이 되므로 丹田을 잘 보전하여 몸을 안정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더 나아가 神仙을 養性服氣하고 龍虎를 수련하여 늙음을 물리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수련론은 정렴에게까지 이어져 정렴의 아우인 정작(1533~1603)이 ‘東醫寶鑑’의 편찬에 참여하여 道家的 醫學을 한국에서 중심으로 자리잡게 하는 데에 이어지게 되었다. 金時習의 수련적 도교가 백여년 후에 의학으로 꽃피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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