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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3일 (토)

김남일의 儒醫列傳 11

김남일의 儒醫列傳 11

金南一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博物學 知識을 醫學에 접목한 儒醫



조선 후기의 徐命膺(1716~1787)은 당대의 지식인 사회의 유명한 논객이었다. 그는 博物學의 대가로서 그의 저술을 모아놓은 ‘保晩齋叢書’는 농업, 수리, 천문, 양생, 의학 등 분야를 총망라하는 명저이다. 서명응의 학문은 손자인 서유구에게도 전수되었고, 박지원(1737~1809), 이덕번(1741~1793), 성대중(1732~1812), 유득공(1749~1807), 박제가(1750~1805) 등 北學派의 학자들과도 학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조선 후기 학문의 황금기인 영조·정조 년간에 활약한 徐命膺은 호가 保晩齋, 澹翁이며,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宗玉이고, 영의정 命善이 동생이다. 본래 문과에 급제하여 대제학에 이르는 등 학자이며 정치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北學派의 비조로 利用厚生을 축으로 하는 학문정신으로 유명하였다. 특히 의학과 관련 깊은 易學에도 뛰어나 ‘易學啓蒙集箋’, ‘皇極一元圖’, ‘啓蒙圖說’ 등 서적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博學强記로도 이름을 떨쳐 정조가 동궁으로 있을 때 賓客으로 부름을 받아 정조의 학문수련에도 도움을 주었고, 정조가 즉위하여 규장각을 세웠을 때에도 초대 제학이 되었고, 이후에도 규장각 운영에도 깊은 영향력을 미쳤다.

그는 太極, 陰陽五行 등의 易學과 四端七情 등 理氣에 조예가 깊었고, 自然科學, 音律·農業 등 다방면에 걸쳐 학문적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는 특히, 농업과 의학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였다. 그는 박제가의 ‘북학의’의 서문에서 조선의 농법을 비판하고 자연과학을 발전시킬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의 학식은 의학연구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그의 의학에 관한 서적으로는 ‘고사신서(攷事新書)’가 있다. 이 책은 魚叔權의 ‘攷事撮要’를 증보한 것으로써 영조 47년(1771)에 예문관 提學으로 있을 때 編한 것이다. 본서는 天道, 地理, 紀年, 典章, 儀禮, 行人, 文藝, 武備, 農圃, 牧養, 日用, 醫藥 등 12門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 가운데 本草學에 관한 記事가 주로 農圃, 牧養, 日用, 醫藥 등 4門에 수록되어 있고, 各 道郡의 토산품목은 地理門의 “八道路程”아래에 기입되어 있다. ‘고사신서’는 그의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이용후생의 학문정신을 반영하고 있는 서적이면서 그의 박물학적인 지식을 의학에 유감없이 발휘한 서적이다. 갈수록 의학외적 지식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요즘시대에 서명응의 넓은 견문은 이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귀감이 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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