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속초24.2℃
  • 맑음15.1℃
  • 맑음철원14.8℃
  • 맑음동두천16.1℃
  • 맑음파주15.0℃
  • 맑음대관령16.8℃
  • 맑음춘천15.3℃
  • 흐림백령도17.2℃
  • 맑음북강릉22.3℃
  • 맑음강릉23.9℃
  • 맑음동해23.8℃
  • 맑음서울18.4℃
  • 맑음인천18.9℃
  • 맑음원주17.0℃
  • 맑음울릉도22.7℃
  • 맑음수원18.5℃
  • 맑음영월15.4℃
  • 맑음충주16.8℃
  • 맑음서산18.6℃
  • 맑음울진19.8℃
  • 맑음청주19.6℃
  • 맑음대전17.7℃
  • 맑음추풍령14.8℃
  • 맑음안동17.2℃
  • 맑음상주17.2℃
  • 맑음포항21.4℃
  • 맑음군산17.5℃
  • 맑음대구20.2℃
  • 맑음전주19.5℃
  • 맑음울산20.7℃
  • 맑음창원21.3℃
  • 맑음광주18.8℃
  • 맑음부산21.6℃
  • 맑음통영18.7℃
  • 맑음목포19.7℃
  • 맑음여수19.9℃
  • 안개흑산도19.4℃
  • 맑음완도19.8℃
  • 맑음고창16.8℃
  • 맑음순천15.4℃
  • 맑음홍성(예)17.4℃
  • 맑음17.0℃
  • 흐림제주21.2℃
  • 구름많음고산20.7℃
  • 구름많음성산21.2℃
  • 흐림서귀포22.6℃
  • 맑음진주17.7℃
  • 맑음강화17.6℃
  • 맑음양평16.1℃
  • 맑음이천17.0℃
  • 맑음인제14.6℃
  • 맑음홍천14.7℃
  • 맑음태백17.9℃
  • 맑음정선군11.7℃
  • 맑음제천15.7℃
  • 맑음보은14.5℃
  • 맑음천안15.8℃
  • 맑음보령19.1℃
  • 맑음부여15.3℃
  • 맑음금산15.3℃
  • 맑음17.4℃
  • 맑음부안18.2℃
  • 맑음임실14.6℃
  • 맑음정읍18.9℃
  • 맑음남원16.9℃
  • 맑음장수13.3℃
  • 맑음고창군18.4℃
  • 맑음영광군18.7℃
  • 맑음김해시20.3℃
  • 맑음순창군16.4℃
  • 맑음북창원21.1℃
  • 맑음양산시20.0℃
  • 맑음보성군18.1℃
  • 맑음강진군17.7℃
  • 맑음장흥17.5℃
  • 맑음해남18.3℃
  • 맑음고흥17.3℃
  • 맑음의령군17.2℃
  • 맑음함양군16.2℃
  • 맑음광양시19.3℃
  • 맑음진도군21.0℃
  • 맑음봉화13.8℃
  • 맑음영주16.8℃
  • 맑음문경17.4℃
  • 맑음청송군15.7℃
  • 맑음영덕22.1℃
  • 맑음의성15.7℃
  • 맑음구미18.9℃
  • 맑음영천16.8℃
  • 맑음경주시19.3℃
  • 맑음거창16.0℃
  • 맑음합천16.7℃
  • 맑음밀양18.8℃
  • 맑음산청15.9℃
  • 맑음거제19.9℃
  • 맑음남해19.9℃
  • 맑음21.3℃
기상청 제공

2026년 06월 13일 (토)

김남일의 儒醫列傳 13

김남일의 儒醫列傳 13

B0112006042138823-1.jpg

金南一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조선 최고 전염병치료전문 儒醫



조선시대의 학자들은 기본적으로 醫學에 조예가 깊었다. 당시 통치이념이었던 성리학은 조선 식자층들의 관념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특히 의학이 성리학적 이념상 아버지인 군주가 자식인 백성들을 건강한 삶으로 이끌어주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도구라고 생각하였기에 널리 권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金安國은 본래 趙光祖, 奇遵 등과 함께 金宏弼의 문인이었으므로 사림파의 선도자였다. 그는 1501년에 생진과에 합격하고 2년 후에는 별시문과에 합격하여 승정원의 박사, 부수찬, 부교리 등을 역임하면서 관료로서의 길을 달렸다. 그가 일반 백성들의 경제생활과 교양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실천적인 성리학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것은 1517년 경상도관찰사로 파견되면서부터이다.



그는 이 때에 각 향교에 ‘小學’을 권하고, ‘農書諺解’, ‘蠶書諺解’, ‘二倫行實圖諺解’, ‘呂氏鄕約諺解’, ‘正俗諺解’ 등 백성들의 경제생활과 교양을 위한 한글판 언해서를 출간하고, 백성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에 도움을 줄 ‘벽온방’, ‘瘡疹方’ 등의 醫書들을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였다. 비록 그가 기묘사화로 파직되어 잠시 경기도 이천으로 가서 후진양성에 힘쓰기도 하였지만, 1532년에 다시 등용되어 중앙 요직을 두루 섭렵하였다.



그는 1542년에 함경도에서 瘟疫이 크게 유행하자 왕명을 받아 朴世擧, 文世璉, 柳之蕃, 李倜, 鄭樞, 洪世河 등과 함께 瘟疫에 대해 나온 여러 醫書 내용 가운데 이용하기 쉬운 처방들과 상비약들을 중심으로 ‘分門瘟疫易解方’을 편찬하였다. ‘分門瘟疫易解方’은 1525년에 편찬된 ‘簡易·瘟方’의 60여개의 처방에 40여개의 처방을 첨가하고 이를 鎭禳, 不相傳染, 服藥, 勞服 등 4門으로 나누고, 여기에 藥名과 採取法을 첨가하고 언해를 붙여 간행한 것이다.



이렇듯 金安國은 당시 사회문제였던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해 醫書를 편찬하고 이를 보급하는 데에 힘썼다. ‘分門瘟疫易解方’은 조선중기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해 조정에서 간행하여 전국으로 유포시킨 의서이다. 한글로 언해를 단 것은 일반인들이 쉽게 응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이것은 전염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것이 매우 실제적일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醫師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만만치 않은 요즘 시기에 金安國과 같은 儒醫가 했던 전염병 퇴치를 위한 노력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할 것이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 오늘 인기기사
  • 주간 인기기사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