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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3일 (토)

김남일의 儒醫列傳 16

김남일의 儒醫列傳 16

약물보다 양생법 이용한 치료 주장한 儒醫



曺倬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창령, 자는 大而, 호는 二養堂이다. 그는 1588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599년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는 등 문관으로써 성공한 전형적인 조선의 양반이었다. 그는 예조·호조·병조의 좌랑·정랑과 사간원정언·시강원사서 등을 거쳐 황해도관찰사·형조참판·경기도관찰사 등을 거쳤고, 1612년에는 공조참판에 이어 한성부윤·우윤에까지 이르게 될 만큼 출세의 가도를 달렸다.



그는 임진왜란 때는 왕을 호종하면서 당시 피폐한 사회상을 적어 時務十策을 올리기도 하였고, 강원도암행어사를 거쳐 侍讀官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1610년에는 우승지로 있으면서 집에서 간직하고 있던 ‘國朝寶鑑’을 바쳐 임금으로부터 豹皮를 하사받기도 하였다.



이렇듯 그는 당시 정부 요직에 있으면서 국가의 중심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후에 어떤 이유에서 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관직을 떠나 두문불출하면서 독서에 파묻혀 학문연구에 힘쓰게 되는데, 이 때 특히 의학연구에 정진하게 되었다.



그가 연구한 의학내용은 자서인 ‘二養編’에 집약되어 있다. 1617년에 간행된 이 책은 특히 養生을 중심으로 의학적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이른바 二養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涵養과 攝養의 두 가지를 이 책에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에 따라 上篇 六卷은 立敎, 明倫, 格致, 誠正, 修齊, 治平 등 涵養에 관한 것들을, 下篇 三卷은 恥忘, 恥徇, 無恥 등 攝養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下篇 중에서 恥忘에는 ‘東醫寶鑑’의 內景篇, 外形篇을 순서에 따라 정리하고 있고, 恥徇, 無恥의 부분에서는 여러 文集에 나오는 養生과 관련된 내용들을 싣고 있다. 이 책은 특히 어떤 질병현상에 대한 설명은 상세히 하고 있지만 처방에 대한 내용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그 치료에 있어서도 되도록 약물보다는 양생법을 권하고 있다는 면에서 특징적이라 하겠다.



우리는 ‘東醫寶鑑’이 1610년 간행된 이후에 養生醫學과 관련된 부분이 치료중심의 의학영역으로부터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발전해 나가기 시작하는 학술적 추세를 曺倬의 ‘二養編’이라는 醫書를 통해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東醫寶鑑’이 나오면서 養生醫學은 만개하게 되었고 그 정보의 효과적인 활용을 모색하게 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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