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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3일 (토)

김남일의 儒醫列傳 21

김남일의 儒醫列傳 21

金南一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정치가로 이름 떨친 儒醫





정유악(鄭維嶽: 1632~?)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면서 醫人으로 자는 吉甫, 호는 구계이다. 아버지는 이조참판 雷卿이었고, 어머니는 윤상형의 딸이었다.

그는 1652년(효종 3년)에 진사가 된 후에 166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면서 문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숙종 때 환관이 인사와 상벌에 간여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왕에게 간언하여 파직되기도 하였지만 영의정 허적 등의 상소로 다시 기용되기도 하였다.

그는 특히 의술에 뛰어나 儒醫로 이름을 드날렸다. 기록에 따르면 현종 원년인 1660년에 醫官으로 入診하였다. 參奉을 역임하면서 의술로 군직에 나가기도 하였다.

1662년에는 대왕대비의 병환으로 치료를 논의한 내용이 나오고, 1674년에는 왕후의 병환이 심해져 入侍하여 議藥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숙종이 즉위한 후에는 더욱 승진하여 藥房副提調를 거쳐 藥房提調로 승진하여 책임자가 되기도 하였다.

그는 학술적으로도 뛰어나 윤선도와 편지로 학술적 문답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정유악은 윤선도에게 “大學問目”이라는 질문을 던졌고 편지로 질문하여 윤선도로 하여금 유명한 格物物格說을 짓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의사로서의 길을 버리고 정치에 깊이 관여하면서부터 정치적 소용돌이에 깊이 휩싸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680년 남인일파가 대거 실각되게 된 경신대출척 때 가장 먼저 변경에 안치되었고, 1689년에 기사환국 때 다시 경기도관찰사로 등용되고 이듬해에 도승지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694년에 갑술옥사로 다시 진도에 안치되었다가 1699년에 사면되게 되었다.

이렇듯 그는 젊은 시절 의원으로서의 삶을 살다가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藥房提調까지 승진하여 醫學으로 출세가도를 달렸지만, 정치에 깊이 간여하여 모진 풍파를 겪게 된다.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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