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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3일 (토)

김남일의 儒醫列傳 27

김남일의 儒醫列傳 27

조선 초기 세종은 法醫學的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받기 위해 法醫學에 대한 정리에 노력하였다. 1438년 간행된 ‘新註無寃錄’이 그것이다.



이 서적이 나오게 됨에 따라 형사사건에 대한 법의학적 판단의 객관성이 제고되어 국가의 권위는 날로 상승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이 중국 元나라의 의서를 참고로 하고 있기에 조선의 실정에 맞지 않는 점들이 발견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계속 이어져 오다가 영조 때에 이르러 ‘續大典’이 편찬될 무렵에 왕명에 의하여 구택규로 하여금 ‘增修無寃錄’을 편찬하게 하였다.



구택규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綾城, 자는 性五, 호는 存齋였다. 그의 아버지가 鄭齊斗의 문인이었다는 점을 볼 때 그는 陽明學에도 조예가 깊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는 1714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된 후에 삼사의 요직을 역임하였고, 영조 때부터는 진주목사, 동래부사, 승지 등을 거쳤다. 그가 의학과 관련된 일을 시작한 것은 1744년 무렵 ‘속대전’의 편찬에 관여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이 때 ‘增修無寃錄’ 편찬사업을 담당할 것을 명령받는데, 이것은 아마도 그가 당시 문신 가운데 의학에 가장 조예가 깊었기 때문일 것이다.



‘增修無 錄’은 세종 때 간행된 ‘新註無寃錄’을 기본으로 하고는 있지만, 그 체제를 많이 새로 고치고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내용을 삭제하고 우리 실정에 맞는 내용을 증보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전들이나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吏讀로 口訣을 붙여 놓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책은 우리의 독자적인 법의학적 영역을 개척한 의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구택규의 ‘增修無·錄’은 1792년에 한글로 토를 달고 주석을 첨가하여 ‘增修無·錄諺解’라는 이름으로 간행되어 구한말까지 살인사건에 대한 지침서이자 법률과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던 책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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