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의 한의학은 다양한 학설들로 학술적 분위기가 만개하고 있다. 학술적 근거가 부족한 것들도 많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어 점차 큰 세력을 형성해나가면서 발전하는 학설들도 많이 있다. 이 가운데 素問學會를 중심으로 이어가고 있는 扶陽學說은 한국의 한의학을 수놓고 있는 정통학설이라고 할 것이다. 扶陽學說은 일제시대에 활동한 儒醫인 李圭晙에 의해 제기된 한국의 한의학을 대표하는 학설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경상북도 연일군 동해면 임곡리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성리학을 연구하여 제자백가에 달통하였는데, 宋儒들의 六經注疏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毛詩’, ‘尙書’, ‘周易’, ‘春秋’, ‘周禮’, ‘儀禮’ 등과 ‘大學’, ‘中庸’, ‘禮運’, ‘典禮’, ‘論語’, ‘孝經’, ‘唐宋古詩’, ‘後千字’ 등을 刪正하였다. 그의 학문은 程朱의 注疏를 무비판적으로 신봉하지 않고 漢唐의 儒說로 돌아가고자 하는 복고적 사상으로서, 옛 것을 찾아서 새 것을 마련한다는 혁신적 사상의 원리를 근간으로 하는 復古創新의 사상인 것이었다.
그는 서양의 曆法을 논한 ‘浦上奇聞’, 당파의 시비를 논한 ‘石谷心書’, 數學을 논한 ‘九章要訣’, ‘神敎術世文’, ‘石谷散稿’ 등의 저술도 하였는데, 이것은 그가 ‘復古’뿐 아니라 ‘創新’에도 힘썼음을 말한다.
그는 儒學的 원리를 의학이론에 적용시켜 독창적인 扶陽學說을 창립하였다. 그의 저술 ‘黃帝素問節要’(일명, ‘素問大要’)와 ‘醫鑑重磨’에는 그의 醫論들과 處方들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주장은 扶陽論, 氣血論, 腎有兩藏辨 등의 세 논문에 집약되어 있다.
扶陽論은 陽氣를 기르는 것이 인체의 생명활동을 영위하는데 기초라는 주장이 근간이다. 그는 火가 氣가 되어 知覺運動, 呼吸, 笑語 등 일체의 활동을 비롯하여 피부를 윤택하게 하고 풍한을 방어하는 등의 생리작용을 하여 일신을 주류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相火에 대해서 心은 君火라 하고 腎을 相火라 하지만 별개의 火가 아니라 君火가 水에서 행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나이가 듦에 따라 陽氣가 사그라들고 陰氣가 점차 자라나 결국에는 죽게 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소아가 겨울에 다리를 드러내도 추위를 모르지만 노인은 여름에도 무릎이 시리다는 사실에서 증험된다고 하였다.
즉 이것이 인체에 陽氣가 많으면 건강하게 되는 증거라는 것이다. 氣血論에서는 생명의 근원은 火라고 정의내린 후 음양이 相交하고 기혈이 소통되면 건강을 얻고 한기가 침범하면 질병을 얻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질병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眞火를 잘 보전하는 扶陽降陰의 治方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腎有兩臟辨에서는 ‘難經’의 “左腎水右命門火說”을 반박하고 腎은 北方水이므로 腎火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君火를 제외한 다른 네 장기가 모두 相火를 얻어 그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腎도 또한, “水得火則精生, 水勝火則精亡”한다고 하여, 火로서 병을 발생케 한다는 종래의 설을 논박하고 있다.
그는 치료의 대원칙을 “淸上通中溫下”로 정리하고 있는데, 이것은 몸을 관통하고 있는 生氣를 다스리기 위해 上中下를 함께 고르게 하는 것이 꼭 필요한 것으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陽氣가 위로 올라가고 탁한 陰氣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陰陽의 性情이므로 淸上通中溫下의 治法은 양기가 제대로 올라가게 해주는 扶陽의 기본적 치법인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心身이 완연히 하나되는 “陰平陽秘”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