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속초7.6℃
  • 눈-0.6℃
  • 흐림철원-0.8℃
  • 흐림동두천0.1℃
  • 흐림파주0.0℃
  • 흐림대관령3.2℃
  • 흐림춘천-0.1℃
  • 비백령도3.8℃
  • 흐림북강릉10.0℃
  • 흐림강릉10.0℃
  • 흐림동해8.3℃
  • 비서울2.4℃
  • 비인천2.1℃
  • 흐림원주3.1℃
  • 흐림울릉도9.4℃
  • 비수원3.9℃
  • 흐림영월1.7℃
  • 흐림충주2.2℃
  • 흐림서산5.3℃
  • 흐림울진11.7℃
  • 흐림청주3.9℃
  • 흐림대전5.5℃
  • 흐림추풍령3.2℃
  • 흐림안동2.7℃
  • 흐림상주2.0℃
  • 흐림포항10.5℃
  • 흐림군산8.9℃
  • 흐림대구7.3℃
  • 흐림전주11.4℃
  • 흐림울산11.5℃
  • 구름많음창원8.5℃
  • 흐림광주10.8℃
  • 흐림부산13.4℃
  • 구름많음통영11.9℃
  • 흐림목포11.6℃
  • 흐림여수10.1℃
  • 비흑산도11.3℃
  • 흐림완도13.6℃
  • 흐림고창11.0℃
  • 흐림순천10.3℃
  • 비홍성(예)4.7℃
  • 흐림2.6℃
  • 흐림제주17.3℃
  • 구름많음고산16.9℃
  • 흐림성산16.6℃
  • 흐림서귀포17.0℃
  • 흐림진주8.3℃
  • 흐림강화0.5℃
  • 흐림양평2.8℃
  • 흐림이천2.1℃
  • 흐림인제0.1℃
  • 흐림홍천0.2℃
  • 흐림태백5.8℃
  • 흐림정선군1.2℃
  • 흐림제천2.3℃
  • 흐림보은4.2℃
  • 흐림천안4.8℃
  • 흐림보령10.0℃
  • 흐림부여5.5℃
  • 흐림금산5.1℃
  • 흐림5.6℃
  • 흐림부안10.3℃
  • 흐림임실9.0℃
  • 흐림정읍12.4℃
  • 흐림남원8.7℃
  • 흐림장수9.4℃
  • 흐림고창군12.1℃
  • 흐림영광군10.1℃
  • 흐림김해시8.7℃
  • 흐림순창군8.8℃
  • 흐림북창원9.2℃
  • 흐림양산시10.9℃
  • 흐림보성군10.7℃
  • 흐림강진군12.4℃
  • 흐림장흥12.7℃
  • 흐림해남12.9℃
  • 흐림고흥12.0℃
  • 흐림의령군5.1℃
  • 구름많음함양군7.6℃
  • 흐림광양시11.3℃
  • 흐림진도군13.3℃
  • 흐림봉화4.7℃
  • 흐림영주3.0℃
  • 흐림문경2.4℃
  • 흐림청송군5.1℃
  • 흐림영덕11.6℃
  • 흐림의성4.3℃
  • 흐림구미3.9℃
  • 흐림영천6.6℃
  • 흐림경주시9.9℃
  • 구름많음거창7.4℃
  • 흐림합천7.4℃
  • 흐림밀양8.2℃
  • 흐림산청5.0℃
  • 구름많음거제10.2℃
  • 흐림남해8.5℃
  • 흐림9.9℃
기상청 제공

2025년 12월 23일 (화)

김남일의 儒醫列傳 29

김남일의 儒醫列傳 29

朝鮮 脈學의 시작을 연 儒醫



여말선초의 변혁기에 활동한 鄭道傳은 어머니쪽이 노비의 피가 섞인 향리 집안에서 자라난 조선의 개국공신이다.

그는 趙浚, 윤소종 등과 함께 전국의 토지를 民口數에 따라 지급할 개혁책을 주장하였고, 1389년 11월에는 이성계, 조준 등과 협의하여 우왕과 창왕을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즉위시키기도 하였다.



조선 개국 후에는 17조목의 태조의 敎旨를 지어 새 왕조의 국정방향을 제시했다. 이어 개국공신 1등으로 여러 관직을 겸직하면서 정권을 장악했다. 性理學을 正學으로 보고 佛敎를 비난하면서, 性理學者인 士는 도덕적으로 완전해야 하며 天文, 醫學, 地理, 卜筮 등 학문에도 능통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의 저술 가운데 醫書라 할 수 있는 ‘診脈圖訣’이라는 서적이 있다. 이 책에 대해서 동시대인물인 李崇仁은 ‘診脈圖誌’라는 글에서 “나라에서 10학과(學科)를 설치하여 인재를 양성하게 하니, 의과가 그 중의 하나였다. 提調官 三峯 鄭藝文(鄭道傳을 말함)이 이르기를, ‘의원은 마땅히 진맥에 착오가 없어야 처방에 효험이 있다’하고, ‘諸家의 說을 詳考하여서 그림을 만들고, 그 범례를 해석하며, 요결을 하여 그 曲折을 극진히 하여 診脈圖라 이름 짓고, 부족한 나에게 그 아래에 기록하기를 명하였다’라 하니, 내가 의학에 꽤 많은 연구가 있었다. 이제 이 책은 상세하고 번잡하지 않으며 간요하고도 소략하지 않으니, 배우는 자는 읽어보면, 응당 긴요한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이 醫書는 현재 그 실물이 존재하지 않기에 내용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조선 중기 허준의 ‘纂圖方論脈訣集成’이라는 脈學專門書의 바탕이 된 醫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선비로서 당연히 醫學과 같은 응용학문에도 능통해야 治國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의 뜻이 조선 후기까지 이어져 脈學의 전통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 오늘 인기기사
  • 주간 인기기사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