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한의계는 비참한 시대를 감루해야 했을까?
관련 의제인 진료소를 한의원으로 고치자는 김익기 의원의 수정안에 대하여도 공방 끝에 수정안 제안자인 김익기 의원이 “한의사가 있으면 한의원이라 하는 것이 정당한 법문이며, 왜놈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그냥 둔다는 것은 한의사를 모독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여 각의원의 공감을 얻어내고 표결에 붙인 끝에 수정안이 통과되었다.
마지막으로 이날 심의과정중 가장 중요한 문제인 이원제 국민의료법에 관한 의결이 남아 있었는데 김익기 의원이 먼저 ‘전통있는 한의학을 보다 발전시켜가지고 국민보건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의사, 치과의사와 같은 제도하에서 한의사의 자격을 부여하여야 한다’고 제안설명을 하였다.
이에 대해 류홍 의원이 한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시대역행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나 임영신 의원은 ‘우리 한국에서는 외국의 흉내만 내지 말고 한의학이 과학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김익기 의원안에 찬동했다. 마침내 이원제 국민의료법안은 표결에 붙여지고 거수표결 결과 제석 116석 가운데 가 61, 부 18로 김익기 의원이 제안한 이원제 국민의료법안이 통과되었다.
이로써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원제 국민의료법은 1951년 9월25일 법률 제221호로 공포되었다. 이 법률은 일제의 조선의료령에서 허용된 양방 의료계의 권리를 기득권으로 인정하면서 의료업자라는 호칭하에 제1종 의사, 치과의사, 제2종 한의사, 제3종 보건원, 조산원, 간호원 등 모두 3종으로 구분 규정하고 있다. 1951년 12월25일에는 국민의료법 시행세칙이 보건부령 제11호로 공포되었다.
이어 1952년 1월15일 의사·치과의사·한의사국가시험령이 마련되었고 1952년 1월30일에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 국가시험 응시자격 검정시험 규정이 갖춰졌다.
그러나 이후에도 5·16 군사혁명후 국가제건최고회의의 1961년 10월 한의사제도 삭제 의료법개정안의 통과, 1962년의 의료법개정안에 의한 한의학교육기관의 폐쇄, 1968년 한의사 청진기 사용에 대한 보건소의 의료법 위반 단속과 고발, 1974년 복지부의 약사의 한약취급 합법화 유권해석, 한의계에서 노력하여 1975년 8월20일 각고 끝에 출범한 보사부내에 한방전담과 ‘의정3과’가 설치되었으나 이듬해 폐지, 1993년 약국의 한약장 설치 합법화에 관한 약사법 개정, 1995년 보건복지부의 약대내 한약학과 설치 발표 등 90년대 후반 한약분쟁의 산물인 한방정책관실 설치 이후에도 정권교체시마다 한방정책관실의 폐지가 재론 되는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의사제도 폐지는 단골메뉴로 등장하였고 국민의 한의학 선호도 증가와 11개 한의과대학으로의 증설 확대, 그리고 중국의 개방화 정책에 따라 중의제도가 알려지고 WHO의 전통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등 국민여론과 외부적 요인에 의해 한의학이 오히려 보호받기 시작하였다.
첫째, 초창기 한의계 인사의 대부분이 사회적 신분이 낮았다. 대부분 한의사들이 일제가 만들어 놓은 천민급의 의생출신들로서 사회경제적 기반이 약하여 해방된 이후에도 공무원이나 국회 등의 진출기반이나 기득권 차원의 법적 신분이 보장되어 있지 않았으며 개인적 자립기반을 갖추는데 급급한 상황이었고 더군다나 한의약 관련 제반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치적 능력이 없었다.
심지어는 대학설치 기준령에 미달하는 한의과 대학의 조건의 개선을 위한 전 한의계의 총력적인 모금운동조차 실패하여 한의과대학이 폐지되는 정도로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계층 이었다.
6·25동난까지 겹쳐 피난시절의 더욱 악화된 상황은 더욱 한의계의 경제적 상황을 어렵게 하였다. 이에 비하여 서양의약계는 일제하에서도 사회경제적 법적 신분이 보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양위주 정부조직의 수뇌부에도 해방후 일본인에서 한국인으로 자연스럽게 승계 교체되어 정부 요직과 국회에 별 어려움이 없이 진출되는 기득권 계층이었다.
둘째, 해방 후 과도기 정부인 미군정과 우리나라 임시정부의 서양의약 보건위생행정체제의 일관된 한의정책의 배제였다.
한의학은 미신이며 비과학이라는 사고의 팽배는 일제 압제하의 36년간 말살정책의 세뇌에서 비롯되었고 더군다나 전쟁과 더불어 도입된 서양의학의 위상은 크게 확대되어 보건위생관련 제도정책의 핵심부분으로 정착되었고 위정자들이 한의학을 정책수단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창피하며 나라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표현을 국회와 정부의견으로 거리낌없이 사용하였다.
이는 한·양방의료단체간의 갈등으로 비화되어 중국과는 달리 끝없는 국력 소모와 국제사회에서의 자기비하로 오늘날까지 우리나라 스스로의 양·한방의료의 공존과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하겠다.
셋째, 한의계의 한의제도 육성과 발전의지의 결여이다. 한의사단체가 결성되고 비록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었지만 해방 후 1990년에 이르기 까지 한의학 발전을 위한 중·장기적 총체적 마스터플랜이 한번도 나온 적이 없었고 투쟁과 임기응변적 대응으로 40년 세월을 보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1년과 1992년 두차례 서울시한의사회가 발간한 한방의료정책백서가 한의사단체의 최초의 공식적인 정책자료집이다.
경제적 안정에 안주하고 타성에 젖은 한방의료기관 운영 행태와 한의사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은 80년대 초부터 한의학에 대한 높은 국민적 관심과 전국적으로 최고의 한의과대학 입시실력수준에 의한 우수인력 확보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국제경쟁에서 밀리고 국내적으로도 아직까지 목전의 이익에만 주력해온 나머지 WTO 등 국제화물결속에 뒷감당을 못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넷째, 한의제도 정책실현을 위한 절대인력 배출의 부족이었다. 1979년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의 제1기 졸업생이 배출될 때까지 약 30여년 동안 한의과대학은 입학정원 40명에서 100여명 남짓한 단 1개의 한의과대학으로 한의인력을 배출하여 왔다. 1년에 40명 내지 100명의 졸업생 중에 대부분이 개업의로서 진출하고 남은 인력으로 연구인력, 행정인력, 군의관, 공중보건의 등 무엇 하나 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인적자원 집단이 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어려운 여건 때문에 해방후부터 2000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한의사협회는 한의학의 재건보다는 한의학과 한의사제도의 존립을 위한 생존투쟁으로 일관된 비운의 역사로 점철되어 온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같은 반세기동안 한의학의 뿌리가 같은 중국은 무엇을 했나?
당초 한국과 중국은 일제의 침략에 의해 강점과 민족문화말살정책에 의해 한의사제도와 중의사제도가 같이 억압되고 지위가 격하되는 등 폐지와 침체의 고통의 시기를 겪은 것은 동일하게 겪었다. 다만 해방과 건국후 한·중 전통의학의 부활과 성장의 배경은 판이하게 다르다. 앞에서 기술한 바 대로 우리나라에서의 한의학의 재건이란 몇몇의 뜻있는 인사를 중심으로 민간차원에서 출발되었다.
1990년대초 중국의 개방과 함께 중의학의 실체가 서구에 알려지고 우리나라에도 그 영향이 파급되면서 한의학에 대한 국민적 관심사도 아울러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한의학 정책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중국에 비하여 반세기정도 뒤 떨어져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의학 관련 정부조직, 독립법제정, 연구기관설립년도가 중국보다는 50여년 정도 늦은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중의약 관련법만 해도 150여개이상 되는 등 조직이나 규모면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한 정부와 국가의 최고 지도자들의 한의학에 대한 인식은 근본부터가 달랐다.
중국은 건국후 중의제도의 출범은 우리와는 정반대였다. 1950년 모택동의 중의학에 대한 민족문화유산으로서의 위대한 보물론과 보호지시 그리고 위생부의 중의학 경시풍조의 배재지시를 필두로 하여 중의학의 계승발전에 대한 의지는 정부조직내에 중의행정부서의 설치와 중의인력양성을 위한 대학설립 그리고 각종제도의 개선에 이어 1982년의 헌법에 중의약발전에 관한 명문화, 1985년 중서의의 동등적지위 지시, 1986년 국가중의관리국 설립등은 우리나라 경우와는 비교하기가 되지 않는 사건들이었다.
이러한 과정에는 한결같이 모택동, 주은래, 유소기, 등소평, 조자양, 강택민 등 국가최고 지도자들의 중의학에 대한 보호와 육성의지가 중의학 발전역사의 장마다 확인되고 있고 그것이 바탕이 되고 있다.
초대 국가중의약관리국장과 위생부부장, 중화전국중의학회 회장을 겸임하여 역임하였던 당시 홍십자총재(적십자총재) 최월리를 1991년 필자와 면담하는 자리에서 최월리 총재는 자신의 위생부부장시절 1982년 헌법제정과 1986년 국가중의관리국 설치 등 정부차원의 중의약 육성발전시기를 회상하면서 “전 세계에 6종류의 전통의학이 있었는데 국가가 보호하지 않은 전통의학은 전부 소멸되고 없어졌다고 하고 전통의학은 국가의 보호육성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한낮 민간의학으로 전락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소멸되어 갈 뿐”이라고 했다. 중의학은 중국정부주도에 의해 건국후부터 보호육성 의지하에 발전된 것이 우리나라와 전통의학정책에서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하겠다.
대외협력부문에 있어서도 양국이 똑같이 세계화의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우리나라 한의학 세계화는 주로 민간차원에서 수행되고 있으며 중국은 국가정부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 하겠다. 따라서 한국은 주로 의료봉사, 국제학술교류를 중심으로 한의학 홍보에 의한 세계화 추진이며 중국은 정부주도에 의한 정부간 협력과 합작사업 법률제정지원, WHO 전통의학관련사업주도 등 정부의 전략과 정책수행으로 중의학을 세계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한국한의학연구원은 몽고의 몽의학연구원, 중국중의연구원, 일본의 기다사토연구원, 월남의 월의학연구원, 필리핀 전통대체의학연구소 등과 학술교류협력을 체결하였으나 실질적인 연구개발교류는 없는 실정이다.
이외에 민간차원에서 경희대와 한의사협회 주관으로 세계침술대회를 유치하거나 대한한의사협회는 대한한의학회를 통하여 1993년부터 한·중전통의학 학술대회를 정례화하여 한·중전통의학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정도에 그쳐 있다. 또한 각 한의과대학은 중국 또는 해외의 전통의학 관련기구와 자매결연 또는 학술교류 및 교환교수 등을 개별적 수준에서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대한한의사협회가 주도하여 우리나라가 본부국이 되는 국제동양의학학회는 한의학 세계화를 위한 나름대로의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하겠다. 또한 NGO단체로서 한방해외의료봉사단 역시 한의학 세계화 홍보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1993년 네팔의 한방의료봉사를 필두로 하여 2005년 까지 60차례 이상의 해외의료봉사를 수행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칼라칼팍스탄, 몽골 등에 친선한방병원을 설립하고 국제협력의를 파견하여 현재까지 한방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중국은 해외봉사와 외국인의 연수교육과 각종 중의약 제도정책의 해외수출의 국가적 프로그램 수행은 물론 1978년 구소련 알마타에서 개최된 ‘세계1차보건의료대회’에서 각국의 1차보건의료사업에 전통의료도입권장선언을 주도하였으며 세계각국은 중국전통의료인 중의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미 1978년에 WHO와 기술협력비망록을 체결한 중국정부는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다른 WHO를 매개로 하여 중의학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중의학 세계화의 주역인 세침연과 세중연의 모든 기획과 세부사업마저 WHO의 동의하에 추진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는 한의학에 대한 학문적 정체성의 확립이다.
이를 위하여 가장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한의학의 정통성에 대한 겸허한 학문적 자세이다. 수천년 맥을 이어온 한의학 이론을 학식과 임상경험조차 반세기도 되지않는 일부 후학들이 학문적 연구와 검증도 없이 한의학 이론을 송두리채 부정하거나 일부 서양의학적 사고에 의해 한의학 이론을 왜곡하고 그것을 제도정책에 관련시켜 한의학관련 제도정책이 왜곡시행 되거나 타의약 단체에 한의학이 그런 것인양 한의학 관련 제도정책과 학문적 오류의 빌미를 제공하고 이는 학문적 전문성과 정통성은 뒤로하고 업권과 영역의 시비로 말미암아 단체간 갈등구조를 조장하고 있다.
그 결과 정부당국 또한 한의학 한방의료와 한의제도정책의 이상적 모형과 비젼을 갖추지 못하고 근본적 발전방향에 대한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있으며 혼돈 속에 오히려 현재의 문제적 상황을 거듭 야기시키고 있고 말초적 해결방안 찾기에 급급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현행 한방의료보험제도의 급여내용에서 전일개념에서 비롯되는 한방임상 고유이론인 유기능체계의 생리병리론이 존중되지 않고 있고 한방 약물이론에서 주된 이론인 기미론과 귀경론은 온데간데 없이 화학성분 이론인 독성학차원에서 한의약이 평가 검증되고 그것이 한의학·한방의료의 위축과 가치의 폄하제도정책의 결과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제도정책에서 방향의 오류로 인하여 타의약단체와의 갈등구조를 야기하거나 정책차체가 법적차원에서부터 근본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도 비일 비재하고 있다. 이제 앞으로 한의학 백년역사의 후반세기의 전망은 한의계 구성원들의 한의학 정체성의 확립과 그 확립의지에 달려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기성 한의학도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현시대의 모든 한의인들이 학문적인 성찰과 겸허한 연구노력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하겠다.
둘째는 현재 한의제도의 위기에 대한 책임은 나와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자각과 스스로를 버려 한의학 발전을 위한 백년대계의 제물이 되겠다는 각오와 동지애로서 하나로 뭉쳐야 위기의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한의학발전을 위하여 나의 이익과 자존심과 주장을 버리는 자세가 요구 된다 하겠다. 우리 한번 다 버려보자. 임진왜란이나 일제하의 위기에서 우리국민 남녀노소 모두가 자기보다는 나라사랑이 먼저인 애국자의 길을 택하여 국권을 회복하였듯이 우리도 한의학발전을 위해 나를 버려보자.
한의학의 역사는 수천년 우리민족의 역사와 함께 하였듯이 앞으로도 우리민족과 영원히 함께 할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한 장구한 역사기간 속에 겨우 수십년 정도 점유하면서 우리들만을 위해 한의학의 백년, 천년대계를 그르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자신 보다는 우리 후손과 후학들을 위하여 우리의 기득권을 버려보자. 그것을 버리는 순간 한의학의 미래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전격적인 국면전환의 극적인 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별것도 아닌 전문의제도, 전문의제도는 의료기술의 발전과 관련하여 나름대로의 필요성과 역할론이 있지만 경제적측면에서는 정말 별것이 아닌 시장경제에 맡겨진 제도다. 정말 별것이 아닌 제도란 것은 자연히 알게 될 날이 오리라고 보지만 그러한 하잘것 없는 제도를 갖고 일부 한의학전문지는 전문의제도의 본질파악에는 접근조차도 하지 못한채 회원들간의 갈등만 부추기고 있고 한의계 전체가 전문의제도가 무엇인지 인식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서로에게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 주고 받으며 눈앞의 눈먼이익에 분열을 감내하고 있다.
한의계에서 한사람에 의한 의료기술의 개발과 발전이 한의계 전체의 발전으로 귀결되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수 없이 보아오지 않았던가?
허준과 이제마, 사암도인 등 그 몇몇 인사의 노력으로 우리 한의학의 역사적 명맥이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을 누가 감히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우리는 서로서로 성공은 격려해주고 아픔은 위로해주자.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두뇌집단이라는 집단에서 한의학의 우수성과 획기적인 인류건강에 기여할 방법론이 수없이 개발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며 한가지 한가지가 개발될 때마다 항의계의 영역이 확대 발전되어 우리 한의계 모두가 그 수준으로 평가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나나 우리가 멀리 내다보지 못하며 윈-윈의 지혜 보다는 나자신에게 지나치게 집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현시대 한의계의 모든 한의사 동지들은 나를 버리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한의학 발전을 위한 순교자가 되겠다는 시대적 소명에 함께하는 길만이 한의계의 모든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셋째는 한의계의 이상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고 범한의계가 각자의 위치에서 이상적인 목표에 합목적적으로 무한히 접근하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혹자는 이상이라는 것은 현재시점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하기도 하고 자포자기와 패배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중요한 사실은 현시점에서 불가능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의 목표라면 이상 실현을 위한 무한한 접근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당장 힘들다하여 학문을 왜곡하고 진리의 길을 외면 한다면 우리는 역사의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제도정책은 결국 우리의 발목을 잡고 우리 스스로 옥죄어 지는 결과를 야기하며 현시점에도 그러한 결과들을 숱하게 경험 하고 있다. 한의학 발전에서의 이상적인 목표라는 것은 몇 가지로 집약 될 수 있다.
그 하나는 의학이라는 학문에 하나의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물질과 인체해부 및 동물실험에 기초한 서양의학이아니라 인간의 살아있는 생명현상을 대상으로 체계화된 한의학이며 그 의철학적 가치를 인류건강 유지증진의 최후의 수단과 방법론으로 규명하여 WHO를 통한 인류사회의 보편적 가치로 정립하여 세계화하고 바로 잡는 것이다.
그 둘은 보건의료 제도정책에서 한의약학적 전통적 이론인 통합적 사고에 의한 유기능체계의 생리 병리론과 한약학이론인 기미론, 귀경론이 의료제도 정책속에 주도적으로 존중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려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약의 귀경과 기미는 한약속에 들어 있는 서양의학적 시각의 화학성분같은 구조적 성분이 아니라 그 한약이 인체에 투약되었을 때 반드시 인체에서 발현되는 현상의학적 관찰결과로서 규정되어지고 체계화 된 기능적 성분론이므로 인체를 한의임상학적으로 대상할 수 없는 타 의약인들은 한약의 취급은 물론이고 기미·귀경의 실체조차 파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약관련 제도 정책이 잘못 시행되어 분쟁의 빌미가 되어 온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이를 법률적으로 바로 잡는 것과 의료보험제도와 한약관련제도에서 재정립 시키는 것도 목표의 하나이다. 이러한 한의학의 학문적 근본가치가 지켜지지 않는 법률과 제도 정책은 잘못된 것일 수밖에 없다.
그 셋은 앞서의 한의학발전을 위한 총체적 목표에 합목적적으로 인식 공유하고 무한히 접근노력 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정부와 대학과 연구기관, 임상의료기관에서 통합적으로 구축하고 재정립해가는 일이다.
정부는 관리기구조직과 법률정비 차원에서 중국의 경우를 벤치마킹해서라도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한의약이론이 존중되고 주도되는 독자적 한의약법체계의 제정, 한의약청 등 전담조직의 설립과 기능확대, 의료보험제도의 개선, 한의약 이론에 의한 한의약 산업의 진흥육성체계 정립과 세계화를 위한 WHO 등 주도적 위상 강화 등이 인프라구축을 위한 세부적 목표가 될 것이다.
한의과대학은 한국의 한의사 양성기관이 아니라 세계의 한의사 양성기관으로 혁명적 변신을 하여야 한다. WTO, FTA 등 국제경쟁력을 능가하도록 교육프로그램의 강화와 외국어능력의 강화, 기초학 교육인력과 연구인력의 10배정도의 증원과 수용을 위한 교육 연구 및 해외 연수와 지자체등과 협력하여 산학연구 등의 프로그램 개발 과 육성지원, 외국의 유학생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교육인력 양성과 교육·수용시설의 확대와 교육프로그램의 개발, 국내외적 현시점의 첨단과학적 수준에 걸 맞는 역학, 의공학과 의료환경의 급변하는 사회경제적 시각과 제도정책에 선도할 수있는 의료보험학, 보건경제학 등의 교과과정의 도입과 개선이 되어야 한다.
한의학연구원은 가능한 빨리 자체의 임상센터를 확보하고 당장 어려운 경우 차선책으로 국립의료원 한방진료부, 전국의 한의과대학 부속병원의 기능 일부를 임상센터기능으로 활용가능 토록 추진하고 암, 에이즈, 고혈압, 치매 등 국가전략적 임상한의학 연구사업의 대열에 올라설 수 있도록 추진되어야 한다.
병원급 한방의료기관은 현재 전무한 실정인 1·2·3차 의료기관의 진료기능적 특성과 차별화를 위한 입원환자 중심의 진료체계를 구축하고 1차진료기능의 몫은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전문의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 전문의가 있는 한방병원에서 일반 전과의수준인 한의원의 1차진료기능 까지 한다는 것은 가장 잘못된 일이다.
환자 이송체계의 확립은 전문의제도 도입정착과 반드시 병행되어 시행되어야하며 일선 한의원에서의 한방병원인 2·3차 진료기관 진료의뢰서발급에 의한 한방병원 진료가 되어야 한다. 의료전달시스템도입은 국민의료비 적정화와도 관계가 있으며 반드시 이루어 져야 한다.
특히 현재의 전문의제도를 둘러싼 회원들간의 갈등은 기존의 한방병원이 전문의제도를 입원환자 중심의 특정전문 의료기술의 개발과 시혜보다는 영리추구를 위한 1차진료기능인 일반환자 유치수단으로 인식, 홍보하고 있고 일선 개원의들은 그에 따른 피해의식에 젖어 있어 갈등의 악순환의 고리를 풀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한의과대학의 부속한방병원이 교육병원과 2·3차진료기관의 특성과 정체성을 갖추지 못고 일반 개업의수준의 현재와 같은 역할과 기능을 고수 한다면 한의학의 미래는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이유로 일선 개업의 의료기관에서는 전문의가 필요없고 전과의 또는 일반 가정의수준의 인력이면 된다는 것이다.
일반한의사는 이미 전과의나 일반 가정의 기능과 역할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다만 취향에 따라 특정전문의 진료만을 고집하는 경우 병원에 취업해서 하던지 일반 한의원에서 하고 싶은 경우 전문의표방을 하지말고 수가 또한 전문의자격에 따른 인센티브를 배제시키고 제도적으로 일반수가만을 적용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과 기치관이 존중된 제도정책은 국민의료질서 확립에 또 하나의 이상목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대한한의사협회의 목표접근 노력에서 가장먼저 해야 할 일은 한의약관련 모든 법적 제도적 정책상황을 한의약학적 의철학적 잣대와 가치기준으로 평가하고 문제점과 그 원인을 파악하는 일이다. 문제점과 원인이 파악 된다면 그에 따른 대책이 자연스럽게 연구 검토 될 것이며 우선순위별로 장·중·단기 대책수립이 가능케 될 것이다. 당장 힘들더라도 한의약학적 방법론이 왜곡되고 훼손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절대절명의 원칙이다.
또한 대학과 한방병원과 일선개원의간에 지식과 기술이전을 위한 보수교육시스템의 개선, 국제동양의학회의 위상강화, 한의학 세계화를 위한 사회경제, 정치외교적 차원에서의 입지강화노력 등을 하여야 될 것이다.
이상으로 현시점에서 범한의계가 공유하고 인식해야할 총체적 목표와 정부, 대학, 한의학연구원, 한방병의원, 협회 등 각자의 위치에서 새롭게 혁신 되어야 할 부문에 대하여 나름대로 피력하여 보았다. 그러나 이원고의 대전제는 한의학발전을 위한 나와 우리자신이 스스로를 버리고 제물이 되고 순교자가 되어야 한다는 혁명적 정신과 사고의 일깨움에 있다. 2007년은 우리 한의계의 모든 동지들이 스스로를 버리고 잘못된 모든 것을 하나하나 고쳐가는 원년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대한한의사협회 명예회장 최 환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