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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16일 (화)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5)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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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南 一 /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中西醫匯通學派는 근대에 中醫와 西醫 두 의학의 장단점을 비교분석하여 中醫學의 발전을 기하고자 노력한 學術流派이다. 중국의 전통의학은 외국의학 가운데 받아들일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흡수하여 온 전통을 갖고 있다. 고대로부터 인도의학과 중동의학의 일부 내용을 흡수하여 왔지만, 대체로 주체가 되는 것은 중국의 고유의학이었고, 대부분의 외국의학이 이론적인 바탕이 박약한 경험의학에 속하였으므로 중국의 전통의학에 미친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문예부흥 이후 서구의 경험의학은 자연과학의 영향을 깊이 받아 근대의 실험의학으로 발전해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치료술은 외과적 측면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고 전체적인 치료 능력면에서 중국의 전통의학보다 우위에 서 있지 못하였다. 19세기 중엽 이후 서양의학은 서방제국주의의 식민지 개척을 위해 그 전초적 문화침략의 수단으로 선교의사들에 의해 중국에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선교의사가 중국에 들어와서 서양의학 서적을 번역하여 소개하기 시작하였고, 전국에 서양의학을 교육하는 醫學校와 病院이 건립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흐름은 전통의학에 많은 변화를 야기시켰다. 서양의학은 일찍이 明末淸初에 이미 1차로 중국에 전해졌지만, 서양의학이 본격적으로 중국에 대량으로 전입된 ‘제2차 서양의학의 전입’과는 그 규모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천연두를 예방하는 牛痘接種術이 점차 중국 전래의 人痘接種術을 대치하게 된 것이 그 한 예이다.



明末淸初에 方以智, 徐光啓, 汪昻 등 학자들은 西醫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方以智 같은 사람은 이미 西洋醫學의 生理解剖知識을 많이 흡수하여 자신의 저작 ‘脈考’, ‘物理小識’, ‘古方解’ 등에 반영시켜 ‘匯通中西醫’의 경향을 나타내었다. 中醫學을 깊이 연구하고 西醫知識을 섭렵한 후 그는 西醫는 “質測에는 자세하나 通幾에는 서투르다”고 생각하였다. 質測은 生理解剖知識을 뜻하고, 通幾는 氣化學說을 가리킨다. 즉 中西醫는 각기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제일 먼저 ‘中西醫匯通’을 주장한 이는 洋務派의 우두머리인 李鴻章일 것이다. 戊戌變法전후 改良派의 “科擧廢止, 學校復興”의 주장과 이를 따라 나타난 “國粹保存” 등의 사상도 中西醫匯通思潮에 모두 반영되었다.



中醫學만을 고수하자는 주장은 중국 고유의 전통의학이 이미 더할 수 없이 잘 되어 있어서 다른 어떠한 것도 학습할 필요가 없으므로 서양의학을 거부하자는 입장이고, 또 다른 반대편의 주장은 확실하게 서양의학을 받아들여 전통의학을 없애버리자는 외국 숭배사상이다. 이 두 사상을 절충하여 西洋醫學과 中醫學 각각의 장단점을 잘 흡수하여 우리에게 쓸모있는 의학을 만들어내자는 것이 中西醫匯通思想이다. 中西醫匯通思想은 그 목표에 따라 다양한 방법과 형식이 있다. 그 하나는 전통의학이 西醫보다 뛰어나므로 西醫의 내용 가운데 장점에 속하는 것을 학습하고 흡수하는 것은 中醫 고유의 것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조는 唐容川을 대표로 한다.



그는 설사 西醫의 生理解剖學이 독특한 특장이 있더라도 ‘內經’, ‘難經’의 범위를 뛰어넘을 만큼 우수하지 못하며 게다가 中醫는 일찍부터 解剖의 단계를 초월하여 더욱 뛰어난 ‘氣化’의 단계에 들어가 있었다고 생각하였다. 때문에 그가 “西醫 역시 장점이 있으며, 中醫 또한 어찌 단점이 없겠는가”, “中醫와 西醫의 학설을 겸비하여 풀이하면서 자신의 확고히 구분되는 견해는 존재하지 않고 단지 하나로 절충하려고만 든다”고 中西醫結合的 사고에 대해서 비판적인 견해를 견지하였다. 그의 匯通中西醫의 최종 목적은 ‘內經’ 그대로의 정신을 보존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尊經復古思想은 그의 대표작 ‘中西匯通醫書五種’에 확실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런 西醫에 대한 비판적 사상은 中醫가 제국주의의 문화침략과 국내 관료계급의 거듭된 압박으로 인하여 위축되고 왜곡되게 된 것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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