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재 기원의 지식 습득이 정확한 처방 구성 관건
학명 요약한 고유명사 사용 등 처방의 기초 다지자
한방에서의 치료수단으로 침과 약침, 뜸, 추나, 한약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한약이 수입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임상에서 한약과 한의사를 분리하기는 어렵다. 필자는 한약의 대중화 측면에서는 우수한 품질의 韓藥製劑가 貼藥을 대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개체를 중시하는 한방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첩약이 여전히 그 중요성을 지켜나가리라 생각한다.
한약은 한의사의 손을 떠나서는 한약이 가진 고유의 효용성을 극대화하기가 곤란하다. 그래서 한약은 의약분업이 불합리한 측면이 많다. 주로 顆粒劑를 처방하는 일본만 하더라도 다양한 처방 구성과 가감의 제한 때문에 顆粒劑 사용에 불편함과 아쉬움을 가지는 의사들이 많다고 한다. 한약에 대한 의약분업이 시행 중인 중국에서도 중의사들 사이에서는 한약의 조제를 담당하는 중약사에 대한 불신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시중에서 같은 명칭의 약재라 하더라도 다양한 種, 다른 科의 약재가 유통되고 있으며, 同一種이라 하더라도 각각 다른 재배지역과 재배환경, 재배기법, 기후의 차이로 말미암아 다양한 등급의 약재가 혼재하는 현실과 아직도 요원한 製의 표준화, 전탕법의 차이를 감안하면 이런 지적이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정확한 한방처방의 구성을 위해서는 제일 먼저 한의사 본인이 약재 基源에 관한 정밀한 지식의 습득이 반드시 필요하다. 즉 어떤 약재가 그 본초의 기원에 합당한지 알아야 한다. 단순히 가격이 적당하거나 약재의 외형이 깨끗하다거나 냄새, 또는 맛, 촉감이 좋다고 해서 바람직한 약재라고 말할 수 없다.
본초의 기원이란 한약재로 쓰이는 대상물이 분류학적 기준에 비추어 어떤 종류의 동식물, 광물, 동식물의 대사물인지의 여부와 아울러 대상물의 약용부위가 어떤 것인지 언제 생겨난 것인지에 대해 올바른 자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종이나 잘못된 부위를 쓰는 경우 기원에 맞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한의사들이 정확한 기원의 약재를 사용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공신력 있는 제약회사의 규격품 한약재를 구입해서 사용하면 된다. 이런 회사들은 대한약전과 한약규격집의 기준에 적합한 한약재를 수입·제조·유통시킨다. 여기에 하나의 함정이 있다.
규격품으로 유통되는 약재가 단일 종만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한약공정서에는 한의사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기원의 약재가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한의사 본인이 사용하는 처방에 다양한 기원의 약재 중에 어떤 것을 사용해야 할지는 본인이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이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동의보감이나 방약합편 등의 고서에 수록된 본초의 분류학적 정보는 백사장의 모래알 정도의 단편적인 지식만 제공해줄 뿐이다. 당시에는 분류학이란 개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초의 기원학적 개념의 정립을 위해서는 당시 시대의 배경과 역사까지 추리해나가는 탐구가 필요하다.
명칭은 같으면서 기원이 다른 약재는 그동안 많이 알려졌다. 예를 들어 후박이나 당귀 같은 약재가 그런 경우이다. 그러나 時代나 醫書, 醫家에 따라 다양한 種과 科의 약재가 처방에 달리 사용된 것이 基源學에 있어서의 딜레마이다. 고서에서 같은 약재라 하더라도 異名의 약재인 것도 많으며, 다른 이름의 약재가 알고 보니 같은 약재인 경우도 드물지 않다.
또 시대의 대세를 이룬 약재라 하더라도 처방의 本旨에 어긋나는 약재가 섞여있는 것도 문제이다. 예를 들어,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千金廣濟丸이나 立效濟衆丹에서의 紫檀香은 향나무가 사용되어 왔다. 자단향이 향나무임은 맞다. 그러나 향나무는 ‘圓栢’으로 불리며 약간의 독성을 가지고 있다. 주로 祛風散寒·活血·冷血·止血·解毒消腫의 공효가 있어 創傷이나 癰腫에 쓰여 왔다.
따라서 상기 消食之劑 처방에는 이 원백이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理氣散寒·止痛의 공효가 있어 복통이나 협심증 등에 주로 쓰이는 白檀香이 위 처방에 어울리는 본초이다. 실제로 중국약전에는 자단향이란 약재가 없으며 백단향만이 ‘檀香’이란 본초명으로 약전에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사상의학에서의 본초도 따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상의학에서의 본초이론은 전통적인 본초학의 이론체계와는 많이 다르다. 따라서 전통적인 본초와는 따로 분리해서 사용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사상의학에서는 전통적으로 강호리와 땃두릅을 강활과 독활로 사용해 왔으므로, 요즘 수입되고 있는 중국의 蠶羌活과 重齒毛當歸를 사상처방의 강활과 독활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사상의학의 原方 하나하나는 독립적인 약효를 가진 처방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처방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본초도 한국과 중국과는 기원이 다른 것이 사용되어온 것이 있다. 대표적으로 당귀나 강활, 독활, 방풍, 후박, 화피 등이 그것이다. 일본 처방에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본초를 사용하면 원방이 노리는 약효를 보기 어렵다. 따라서 정확한 처방의 구성을 위해서는 본초 하나하나마다의 기원 파악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이런 작업은 관련 학계에서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한의사마다 각각 다른 의서를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어서, 이런 작업을 구체적으로 진행하기가 어려운 면도 있다.
혹자는 말한다. 그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효과도 좋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냐고. 그러나 복합처방의 약재 하나가 잘못 들어갔다고 해서 임상에서 그 오류를 검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이 분야에 조금만 노력하면 더 좋은 처방을 구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확한 기원에 입각한 본초를 약용해야 함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하겠다.
이를 위해서 처방에서도 전통적인 한자명을 사용하기보다는 학명을 요약한 고유명사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동시에 한약장의 약재명이나 유통되는 약재의 포장도 이런 고유명사를 사용해야 한다. 학계에서도 기존 처방의 분석을 거쳐 이러한 작업을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한다. 한의사가 임상에서 더 이상 이런 기초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본인의 생각이다.
그때까지는 처방전의 기록에 있어서도 본인이 쓰는 약재의 명칭뿐 아니라 약재의 부위, 약재별 포제법, 각각 약재의 전탕법, 심지어 복용법을 구체적으로 정확히 적는 습관이 필요하다. 처방전은 한의사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가 공유하는 것이고, 후학들이 보고 배우는 중요한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경희장수한의원장 윤성중(한의학박사, 본초학전공)